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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 지구의 ''검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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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초콜릿에 얹힌 하나 뿐인 지구, 하나인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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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밸런타인 데이이다. 초콜릿 이야기가 아닌 초콜릿 포장을 살펴보자. 환경부는 과자의 포장 기준을 바꾸려고 계획 중이다. 과자봉지나 과자 포장 등이 이른바 너무 과다해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과자를 산거야? 봉지를 산거야? 공기를 산거야?

봉지를 빵빵하게 하고 봉지가 빵빵하니 종이 상자도 큼지막해진다. 이런 질소충전 과자의 포장에 새로운 부피 측정방법을 도입해 과대포장을 시정한다는 게 환경부의 목표이다.

과자가 부서지지 않게 약간의 공기를 넣어 봉지를 부풀리게 되어 있지만 너무 심하다. 거기에다 개별 포장도 심하다. 핑계는 포장을 뜯고 먹다 남긴 걸 다시 먹으면 맛이 없어지니 개별 포장을 한다고 하지만 필요 이상이다. 그리고 봉지 안에 플라스틱 지지대가 따로 들어 있는 경우도 많다. 과자 포장을 뜯으면 소비자들은 속은 기분이다. 그리고 그 허황된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밸런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추석, 설, 크리스마스에 겪는 과대·화려·공갈 포장은 아예 지갑을 강탈당하는 기분이다. 그 엄청난 자원 낭비와 오염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미국의 식품 포장 예를 살펴보자.

미국인이 해마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병이 400 억개, 한 사람당 130개 꼴이다. 맥도널드 빅맥 포장이 5억5천만개에 이른다. 샌프란시스코 가게에서 물건 싸주는 비닐봉지만도 해마다 1억8천만 개. 유로 환산하면 78만 갤런이다.

사람들이 먹을거리로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게 되는데 먹을거리 환경오염 중 종이, 플라스틱, 마분지, 병, 캔, 스티로폼 등 음식 용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2002년 아일랜드는 비닐봉지에 세금을 물려 사용량 대폭 줄였다. 1/10로 줄었다 한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가 비닐봉지 금지 시켰다. 2009년 유엔환경계획은 비닐봉지를 전 세계적으로 금지해 줄 것을 촉구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는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음식 용기 사용 금지 지역으로 바뀌었다.

◇ 대한민국, 우리가 제일 잘 나가!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미국의 환경운동가 애나 라페의 책 <지구를 위한="" 다이어트="" 혁명="">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 서울로 갔다. 2008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다. 수만 명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잡혀가고 조계사라는 절에 피신한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때문이다. 한국은 중요한 미국 쇠고기 수출시장이었으나 2003년 수입을 중단했다. 그러다 정부가 미국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한 것이 분노를 불러왔다. 식탁에 올라가는 식품을 국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식품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였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식품이 곧 정치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도 생협회원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생활협동조합의 회원이다. 회원이 1만4천 명이나 된다. 나는 내가 생협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다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들의 생활협동조합은 겨우 10년 전에 생겨 회원이 5만 가구라고 한다. 이건 약과다. 다음날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한 살림 운영자를 만났는데 가족회원은 15만이었다. 한국의 생활협동조합은 정교하게 발달돼 있었다. 이들은 생활협동조합의 기원을 수십 년 간 이어져 온 민주화 운동의 전통에서 찾았다."

ss

 

◇ 민주주의는 지금 바로 이 자리에

우리 협동조합 운동의 시작은 소비자협동조합이다. 농촌이나 강원도 광산 지역에서 생필품이 귀하고 비싸게 사서 써야 하니 강원도 원주에서부터 소비자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돼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후 신용협동조합이라는 것도 생겨나고 이 두 운동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일본의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연구해 한국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운동이 본격화됐다.

유기농산물과 그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생산자와 계약을 맺고 소비자가 안심하고 구매함으로써 도시 농촌 공동체 모두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 목표이다.

강원도 원주의 한 살림 생협이 뿌리가 된다. 왜 원주 이야기가 거푸 등장하고 민주화 운동이 이야기되는지 역사를 더듬어 찾아가 보자.

원주를 대표하는 두 사람과 한 사람이 있다. 7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권의 멘토이자 큰 스승이었고 생명운동을 시작한 청강 장일순 선생, 가톨릭의 정신적 지주였던 지학순 주교, 그리고 역시 민주화 운동을 하다 붙잡혀 감옥생활을 마치고 청강 장일순 선생을 따라 원주로 간 인농 박재일 선생(생협 한 살림의 명예회장).

1972년 남한강 대홍수로 엄청난 수재민이 발생하고 정부가 손을 쓰지 못할 때 가톨릭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 박재일 회장이 재해대책본부를 꾸렸다. 그리고 수재민들이 우리 힘으로 해내겠다며 자발적으로 나서 재해대책사업을 벌였다. 거기서 시작된 사회개발사업이 협동조합 운동의 뿌리가 된다. 곧 이어 지학순 주교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받자 장일순 선생 등의 호소로 결성된 것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다.

그 후로 많은 생활협동조합이 전국에서 생겨나고 오해와 어려움을 헤치고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주에서 처음 생협 운동을 하며 내놓은 한 살림선언문을 읽어보자. "산업문명이 온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면서 생명을 파괴하는 오늘,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가 요청된다. 이 모임은 이런 죽임에 맞서는 생명의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창립되었다..."

그런 철학적 기반 위에서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것이 생활협동조합의 약속이다.

인농 박재일 회장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쌀을 길러내는 농민은 소비자의 생명 뿐 아니라 논에 사는 숱한 생물들도 지키면서 지구를 살려내고 있다. 이걸 생각하면 매일의 밥상에서 마주치는 쌀 한 톨 앞에서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마음을 조금씩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생명운동, 살림 운동이다"라고 말한다.

한 살림 선언은 폭력은 독재권력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더 크고 위험한 폭력이 우리 밥상 위에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농민이 농약 중독으로 쓰러지고 땅과 물도 병들고, 다시 거기 사는 사람들이 병드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간절함을 갖되 시민 스스로가 자기 자리에서 해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것은 농촌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온 우주의 생명이 이어져 있고 지구촌 모두가 한집살이인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며 오가다 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창강 장일순 선생은 그래서 ''개문류하(開門流下)'',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오늘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커피를 마시며 생명과 환경, 공정한 초콜릿과 커피, 정의로운 삶, 내가 선 자리에서의 실천을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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