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ㅊ
가로 190cm, 세로 80cm... 요양병원 5인실 작은 침대가 이석현(51)씨에게는 삶의 공간이다. 침대 위에서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라디오를 듣는다. 침대 밖 세상은 엄두도 못 낸다.
기저귀 아래로 드러난 앙상한 다리는 제멋대로 비틀어진다. 명치 아래로는 모든 신경이 마비됐다. "다리를 도끼로 찍어가도" 모른다. 대소변도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온다.
1급 지체장애인으로 살아 온지도 벌써 3년 째. 야윈 손가락에 걸려있는 알 굵은 장교반지만이 그의 과거는 이렇게 초라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육군 대위로 전역한 그는 1986년 미국으로 건너가 기계관련 일을 했다.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날로 발전하는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15년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건너온 이 씨는 재산을 털어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은 곧 망하고 말았다. 사업할 체질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2006년 마침 늦둥이 딸이 태어났다. 어렵게 얻은 딸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47살에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06년 11월, 수소문 끝에 구한 일터는 이마트 물류창고였다. 5톤 냉장트럭에 물건을 싣고 물류창고를 출발해 마트까지 갖다 주는 일이었다.
이마트와 운수계약을 맺은 업체에다 화물차 지입비 7천6백만 원을 내고 취업하는 조건이었지만, 대기업에서 일하는데다 월급이 320만 원씩 꼬박꼬박 나와서 꽤나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사업자 등록을 내야 하는 등 여러 절차가 있었지만 모두 운수회사에서 처리해줬다. 소득세 등 각종 세금도 모두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정리했다. 일하는 입장에서는 월급만 받으면 됐다.
이마트 직원 유니폼과 명찰이 지급됐고, 이마트 간부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전자카드로 출퇴근 도장도 찍었다. 트럭도 이 씨가 돈을 내고 샀지만, 이마트 업무에만 사용 가능했고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집에 가져가는 것은 금지됐다. 누가 봐도 이마트 직원이었다. 이 씨 자신도 "이마트에 100% 종속됐다"고 말했다.
그나마 대기업 직장에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데 감사하며 두살바기 늦둥이 딸의 재롱을 보는 재미로 살았지만, 입사 2년 만에 그의 인생은 침몰했다.
물건을 창고에서 적재함으로 옮기던 중 대차에 실려 있던 물건 더미가 앞서가던 그를 덮친 것이었다. 1톤에 가까운 무게에 깔려 그의 상반신은 "코가 땅에 닿도록" 반으로 접혔고, 척추 뼈 두 개는 완전히 부서졌다.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네 시간이나 받았지만, 결과는 하반신 마비였다. 신체감정서에는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영구적 장애"라고 씌어 있었다.
대소변도 가릴 수 없게 된 그를 이마트는 전혀 회사와 상관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마트에서는) 100% 당신 책임이다 우리와 관계없다. 정식근로자도 아니고 운수회사에 고용된 지입차주인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러더군요." 이 씨가 목이 탄다며 물을 들이켰다.
법적으로 마트는 운수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고, 이 운수업체는 다시 화물차를 소유한 개인사업자 이 씨와 계약을 맺었다. 일은 직원처럼 하지만 지위는 사업자인 ''특고(특수고용근로자)''계약이었다.
일을 시작할 때는 사업자 지위로 계약을 맺는다는 것의 의미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를 당하고 보니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근로자라면 기본으로 가입하는 산재보험도 그에게는 예외였다.
이 씨는 "산재만 가입돼 있었어도 월급의 70%가 나오고 치료비와 간병비까지 지원된다고 들었는데, 국가에서 (산재)가입 자격 자체를 안 줬다"고 말했다.
개인보험도 들어 놓은게 있었는데 보험비가 부담돼서 해약했다. 사고가 나기 불과 15일 전이었다. 결국 병원비는 고스란히 개인 부담이었다. 사고 직후 지금까지 들어간 병원비만 1억2천만 원에 가깝다. 가족들 생활비 때문에 상속받은 재산도 다 날리고 8천만 원 빚도 졌다.
이 씨는 자신을 "침몰한 배"라고 표현했다. 사고를 당하던 그 순간 "내가 통증 아프고 그런 걱정보다 나 때문에 연관된 가족이...애 엄마나 애나 나 때문에 막막해진 것이 가장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책임있는 가장으로 행동을 못하고 있는게 서럽다"고 말하는 순간, 새어나오는 울음을 막으려 그는 어금니를 물었다.
회사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몰리자 이 씨는 결국 물류창고의 구조적인 점을 문제 삼아 이마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씨는 "물류창고 바닥과 적재함의 높이 차이로 경사가 생겨 물건이 쉽게 전복되도록 돼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사고 당시 창고 직원들이 파업으로 거의 출근하지 않아 혼자 무리하게 짐을 운반하도록 지시한 점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씨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고 있는 민사소송도 2010년 5월에 시작돼 1년 8개월째 비정상적으로 늘어지고만 있다. 근로자가 아닌 특고라는 지위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를 특수고용해 놓고 사고가 나자 뒷짐만 지고 있는 이마트의 모기업 신세계는 지난해 고용노동부에의해 고용창출 우수기업에 선정됐다.
하반신 마비의 몸으로 대기업과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이 씨의 현재는 사회 안전망이 전혀 없는 우리나라 250만 특고들의 원치 않는 미래의 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