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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메리카나의 ''불편한 진실'' 관타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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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착한 이는 신념을 잃고 악한 자는 열정에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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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쿠바의 관타나모는 산과 열대우림으로 둘러싸인 바닷가 도시이다. 여기에 유명한 미 해군기지가 있다. 미국이 갖고 있는 해외기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관타나모 해군기지.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하던 중 이곳에 자리를 잡고 눌러 앉았다. 5년 뒤인 1903년 쿠바와 매년 금화 2천 개(약 4,000달러)를 내기로 계약하고 땅을 빌렸다. 2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지 임대료는 연간 4,000달러.

콜럼부스가 처음 발견해 서구 제국들에게 알려진 관타나모는 대서양을 통해 아메리카로 접근하는 데 있어 군사적 요충지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노리는 열강도 아메리카에서 대양으로 뻗어 나가려는 열강도 쿠바의 아바나와 관타나모가 필요하다. 영국이 그랬고 그 다음은 스페인, 그리고 미국이 그러했다.

19세기 말 미국 정부와 미국 언론은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쿠바를 도우려는 척하며 쿠바에 미국 군함이 드나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미국 군함 한 척이 쿠바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을 일으켜 침몰했는데 미국은 이것이 스페인 짓이라며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했다. 나중에 미국이 전쟁 핑계거리를 만들려고 셀프(?)로 폭파시킨 것이 드러났지만 소용없는 일.

미국은 이 때 스페인을 이기면서 스페인 식민지이던 쿠바와 필리핀을 접수한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필리핀을 접수할 테니 일본은 조선을 접수하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배경이다. 그러다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게릴라전을 벌여 쿠바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나서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쿠바인 출입이 금지된다. 그러나 미국과 쿠바의 국교 단절 이후에도 미 해군은 떠나지 않아 관타나모는 적국 안에 세워진 미군 기지가 되어 버린다.

(※관타나모 기지: 수도 아바나에서 동남쪽으로 90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콴타나모만에 위치해 있다. 전체 면적은 160㎢이며 미 해병대가 관할하고 미군과 군인가족 약 3천 명이 거주하고 있다. 쿠바는 1959년 1월 1일 카스트로 주도의 혁명이후 영토 무단 점거라며 임차료를 거부하고 있지만, 미국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이겨 쿠바를 독립시킨 댓가로 관타나모 영구임차 협정을 체결하였고 쿠바혁명 이전까지 매년 임차료 금 2천개(약 4천달러)를 받아왔으며 혁명 이후에도 한 차례 받았기 때문에 정당한 협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쿠바는 미국과 1961년 1월 국교단절을 선언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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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구아나가 보호받고 인간은 버려진다

냉전이 끝난 뒤엔 관타나모 기지의 효용 가치가 떨어져 사격훈련장으로 주로 쓰였다. 그러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로잡은 탈레반, 알카에다 포로들을 2002년 1월부터 이곳에 가둠으로써 관타나모 수용소의 역사가 시작된다. 테러용의자들을 미국에 들여오지 않고 처리할 수 있고 인권유린과 학대에 대한 감시도 느슨해 여러모로 이점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여기 수용된 포로들은 ''최악 중의 최악인 자들''이라고 국제사회에 선전했다. 물론 9.11 테러의 주범들이 여기 갇혀 있다. 그러나 관타나모의 비리를 폭로한 사람들은 "수용소에는 세계 곳곳에서 잡혀 온 전혀 테러리스트일 수 없는 사람들이 가득했다"고 폭로했다.

미국 여대생 마비쉬 룩사나 칸(마이애미 법대 로스쿨 학생으로 무료변론과 통역 자원봉사 활동)이 쓴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라는 수용소 체험수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15년 째 중풍을 앓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80세 노인, 사촌하고 싸우다 체포된 염소 치던 목동, 미국 정부에게 찍힌 알자지라 방송 기자, 테러리스트들이 차는 시계로 알려진 카시오 시계를 차고 있다고 붙잡힌 과학 교사….

그 배경에는 미군의 마구잡이 연행과 현상금을 타내기 위한 약소국 경찰과 주민들의 거짓 고발 등이 얽혀 있다. 실례로 파키스탄 경찰이 터키계 독일인을 용의자로 몰아 3,000달러에 미군에게 넘겼다 5년 만에 석방되기도 했다. 얼마를 갇혀 있어야 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랍 적십자(적신월사)에 근무하다 잡혀 들어갔던 알제리인은 ''뉴욕 타임즈'' 기고문에서 "테러를 생각해 본 건 1초도 없었는데 관타나모에서 7년을 썩어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고문과 인권침해가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것도 잇따라 폭로됐다. 지난 4월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자료에도 무고한 소년과 노인, 평범한 주민들이 붙잡혀 가혹행위 속에 고통당하고 있음이 드러나 있다. 목에 가죽 끈을 묶어 개처럼 끌고 다니고 전기고문, 물고문, 무산소 독방에 가두기, 성적 학대, 굶긴 뒤 음식을 앞에 놓고 고문하기, 얼굴에 고춧가루 붓기, 짐승을 동원한 고문 등이 밝혀졌다. 이 모든 것을 미 국방부가 묵인하며 관리하고 있음도 밝혀졌다.

도마뱀처럼 생긴 ''이구아나''를 잘 아실 것이다. 쿠바 관타나모의 이구아나는 미군 수용소 철조망을 넘어 밖으로 나가면 쿠바 사람들에게 잡혀 바비큐 구이가 된다. 얼른 도망쳐 관타나모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면 ''멸종위기 동물 및 식물법''이라는 미국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관타나모에 갇힌 아프간 포로(탈레반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테러리스트인지 모르는)들은 이구아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살한 수감자가 6명으로 보고돼 있지만 자살을 시도했던 수감자는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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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이는 신념을 잃고, 악한 자들은 열정이 넘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 과정에서 붙잡힌 모든 용의자를 이곳에 가두고 빈 라덴에 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캤다. 10년에 걸친 고문을 통해 빈 라덴 은신처의 실마리를 찾아 내 추적 끝에 사살한 것이 최대의 수확이다. 10년 동안 고문당한 사람 중 알카에다 조직원이 몇 명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 무기한 감금 대상자 46명을 포함해 170 여명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체포됐는지 알카에다 조직원인지 아닌지 심리나 재판이 이뤄진 적은 없다. 국제법과 전쟁 포로에 관한 제네바 협약, 전쟁 포로도 아닌 민간인 용의자에 대한 인권 관련법, 용의자가 속한 나라의 주권, 인간 사회의 윤리와 상식이 모두 무시된 채 수상하면 잡아다 가두고 고문하는 것이 ''미국식 테러와의 전쟁 규칙''이다. 미국이 체포했으면 미국 법에 따라 미국인처럼 재판받아야 하나 부시 정부는 급히 관타나모 수용소에 특별군사법정을 설치하고 별도로 처리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들은 전쟁 포로가 아니라 그냥 불법적인 미국과 지구촌의 적일뿐이며, 따라서 미국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처리하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더욱 기막힌 현실은 죄 없이 잡혀와 관타나모에서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미국을 증오하며 풀려 난 뒤 반미 투쟁이나 전투에 자진 합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것. 또한 관타나모는 반미 투쟁 테러단체의 가장 확실한 투쟁 명분이 되고 있다.

2008년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버락 오바마가 취임하면서 문제가 많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고 수감자들을 미국 민간법정의 재판에 의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보수 진영의 반격으로 포기하고 물러섰다. 이후로도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이란 초강대국의 야만성을 상징하며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이게 그토록 부르짖던 자유민주진영의 정의인가 생각하면 씁쓸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뭐 어쩌겠는가. 미국이 하겠다는데….

야만스런 지구 문명의 종말과 새 문명의 탄생을 기원했던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착한 이들은 신념을 잃어 주저주저 하고 악한 자들은 열정에 가득 차 날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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