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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과 대나무의 향연이다.깊은 산 아득한 골짜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은히 향기를 퍼뜨리는 난.겨울 찬바람에 눈이 날려도 중심을 잃지 않고 푸르른 잎을 단 채 꼿꼿히 서있는 대나무.난의 고아함과 대나무의 강직함을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선보인다. 학고재갤러리의 ''소호와 해강의 난죽''전이 그것이다. 소호 김응원( 1855-1921)의 난그림과 해강 김규진(1868-1933)의 대나무 그림으로만 학고재 본관의 넓다란 전시관을 꾸몄다. 전시 작품들을 대하며 발길을 옮기노라면 마치 관객 자신이 심산유곡에 홀로 들어서서 은은히 풍겨오는 난향기를 코끝에서 맡고 있는 듯하고,담양 소쇄원을 거닐때 느끼는 대나무숲의 소쇄한 바람소리와 서늘한 기상이 전해오는 듯하다. 난죽 그림의 숲에서 고아함과 강직함이 어우러진 그 정취는 기품있는 남녀의 고상한 연애담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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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들머리의 첫 작품은 소호의 난과 해강의 죽이 함께 그려진 작품(맨 위 작품)이다. 이어 소호의 여섯폭 병풍으로 된 난그림이 들어온다. 이 병풍작품에서는 각기 방향과 자태를 달리하며 묘사된 소호 난화의 유려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난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중앙의 벽면에는 해강의 큰 글씨 ''장생무극(長生無極)''이 자리잡고 있다. 두텁고 힘이 느껴지는 그 글씨 작품은 액자 주변 벽면에 여백이 많음에도 오히려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듯한 힘을 발산한다. 본관 가장 안쪽 정면의 넓다란 벽면에는 해강의 열폭 대나무그림(바로 위 작품)이 웅장한 기상을 드러낸다. 굵은 왕대의 마디마디에서 꺾이지 않는 강인한 기상을 품어내고, 대숲 아래 봉긋 솟은 죽순들에서 미래 세대의 힘찬 기상을 드러낸다. 대 숲 위의 하얗게 빛나는 둥근 달은 자연을 즐기는 여유와 앞으로의 풍성함을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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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난화의 난줄기는 음악이 흐르는 듯하다. 유장한 가락이 흐르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가늘어졌다가 굵어지고, 강약과 완급이 춤을 추듯이 펼쳐진다. 그래서 난그림을 ''소리있는 시구''라고 했던가. "외로운 난초를 구하여 이곳 저곳에 심고/그것을 붓으로 그려본다/소리있는 시구 소리없는 그림/이것은 모두 마음 속으로 그려낸 것이라네"소호는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으로부터 난화를 배웠다. 석파는 그의 기구한 인생을 반영하듯 난줄기의 선에서 대쪽같은 강인함이 느껴진지면, 소호의 그것에서는 버들가지처럼 낭창낭창하고 유려함이 배어난다.
난화 제시를 음미하는 맛이 좋다. "그윽한 난초는 얼굴을 꾸미지 않는다." "깊은 골짜기 따뜻한 구름 흩날리고/첩첩한 바위 속에 꽃이 피었네/나물 캐거나 땔감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어찌 외부사람에게 알려지겠는가" "산은 깊고 해는 긴데,/사람 자취 고요하고 향기만 퍼져가네" "이것은 그윽하고 곧은 한 종류의 꽃/ 알려지지 않고 그저 고요한 산속에/땔 나무하러 가는 길에 뵐까 두려워/ 다만 높은 산 하나를 그려서 막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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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강의 대줄기는 다양하게 표현된다. 풍죽, 노죽(서리맞은 대), 일반죽 세 종류의 가는 대를 그린 작품이 나란히 배치되어 각기 다른 느낌을 준다.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가늘지만 굳센 대나무 줄기의 특성이 잘 드러나있다. 특히 대 이파리가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을 묘사한 풍죽화는 바람결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난다.
죽화 제시는 어떤 게 있을까 "맑은 바람/곧은 절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니 맑은 그림자 흔들리고/온종일 일이 없어 베게베고 한가로이 노래부르는데/가을비 내리는 소리와 같아 사람의 속됨을 치료해주네"
이번 전시작품 중 해강의 난화 두 작품이 이채로웠다. 해강의 난그림중 ''석란도:괴석 위의 난화''(바로 아래 작품)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그 괴석은 용의 몸통을, 난은 용머리를 닮았다. 진취성을 상징하는 용의 해에 난의 고아함을 지닌 용머리를 상상해본다. 해강의 또 다른 난화. 이 작품은 대바구니에 난줄기가 굵고 풍성하게 뻗쳐 있다. 그 난줄기는 곡선이면서도 대나무 줄기처럼 강하고 거침이 없다. 고아하면서도 강직한 이미지의 해강 난화가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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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와 해강의 난죽''전이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소호 작품 20점과 해강작품 13점, 합작품1점이 선보인다. 우찬규 대표는 "난은 깊은 숲속에 피어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향기를 뿜는다. 난은 곤궁한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 군자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예부터 선비의 사랑을 받았다. 사철 푸르름을 유지하여 군자의 절개에 비유되는 대나무는 요즈음처럼 세한의 계절에 그 변하지 않는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 같다.학고재의 난죽전과 함께 난향처럼 향기롭게, 대바람처럼 평안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기간:1.11-2.19
전시장소:학고재갤러리 본관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