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스포츠무대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행정가가 되는 게 꿈이랍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목동실내링크. 한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얼음판 위를 한무리의 선수들이 줄지어 돌고 있는 가운데 벽안의 쇼트트랙 선수들 사이에서 키가 작고 허벅지가 두툼한 동양 선수가 바로 눈에 띈다.
가슴에 프랑스 국기를 달고 있는 이 선수는 바로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여자계주 3,000m 금메달리스트 최민경(23)이었다.
지난 2002년 4월 프랑스에 관광을 갔다가 프랑스빙상연맹으로부터 코치겸 선수 제의를 받았던 최민경은 이듬해 이화여대를 자퇴하고 프랑스에 정착해 지난해부터 프랑스 쇼트트랙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최민경은 "당시 프랑스 쇼트트랙이 존폐위기에 놓여 있던 상황이었고 다급해진 프랑스 빙상연맹에서 코치 겸 선수로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는 좋은 조건을 제시해 받아들였다"고 프랑스대표가 된 사연을 풀어 놓았다.
그는 이어 "그 뿐만 아니라 올림픽 계주종목을 뛰어주면 국제빙상연맹(ISU) 직원으로 체용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최민경의 귀를 가장 솔깃하게 했던 것은 바로 ISU 채용 기회. 빙상종목의 국제 스포츠행정가를 꿈꿔왔던 최민경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됐던 것.
하지만 최민경의 ''프랑스 살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배우기 어려운 프랑스어와 현지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따돌림'' 때문이었다.
최민경은 "프랑스 여자선수들이 어찌나 샘을 내던지 오히려 남자 선수들이 저를 더 많이 챙겨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결국 특유의 낙천적 성격을 앞세워 선수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동료로 인정받고 덩달아 프랑스어 실력까지 부쩍 늘어 이제는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 국제대회에서 최민경이 보여준 실력은 ''기대 이하''. 금메달리스트로서 한국에 있는 동기들과 비교할 때 자존심을 상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최민경은 "프랑스 선수들은 하루에 1시간밖에 운동을 하지 않을 정도로 초저강도(?)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최민경은 "프랑스 선수들은 취미로 대표선수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원래 직업도 엔지니어에서 에어로빅 강사까지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최민경 역시 훈련을 제대로 못해 지난 6월과 9월에 한국에서 특별훈련을 하고 돌아갔을 정도다.
현재 최민경에게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는 국적. 프랑스대표팀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선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최민경은 "프랑스빙상연맹에서 국적 변경에 대한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지만 솔직히 프랑스의 실력으로 올림픽 쇼트트랙 종목에 제대로 출전할 수 있을 지 걱정스럽다"고 설명했다.
프랑스가 계주종목까지 올림픽에 나가게 되면 국적을 바꿀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한국 국적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
최민경은 "일단 프랑스의 올림픽 참가를 위해 남은 월드컵대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라며 "올림픽이 끝난 뒤 한국에 다시 돌아와 남은 학업을 마친 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민경은 "앞으로 프랑스어를 더 확실히 공부해서 ISU에 꼭 들어가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한국의 입지를 더욱 넓히는 데 노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