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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3일부터 22일까지 제1회 인스브루크 동계 청소년올림픽이 열린다. 청소년올림픽은 경쟁을 넘어 스포츠, 교육, 문화 세 분야가 어우러지는 국제 청소년 스포츠이벤트다. 노컷뉴스는 동계스포츠인 멘토들의 인터뷰를 연재한다<편집자 주>편집자>"큰 꿈을 품어라. 온통 스키만 파라. 라이벌을 압도하라. 새 역사를 써라."(허승욱이 동계 청소년올림픽 출전선수들에게) 그가 운영하는 스키용품샵 ''허승욱 With Bhs'' 출입문 옆에는 ''동계체전 금메달 43개 획득, 동계올림픽 5회 연속 출전, 99년 동계아시안게임 2관왕'' 같은 문구가 빼곡하다. 그의 이름을 딴 스키 국제대회 ''허승욱 극동컵''은 올해 5회째를 맞았다. 한국에서는 ''알파인스키=허승욱''이다. 2006년, 22년간의 화려한 선수생활을 접은 그는 현재 지산리조트에서 레이싱 스키스쿨(강습인원 150~200명)을 운영 중이다. 3년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남 7, 여 3) 총감독도 맡고 있다.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이 매력적인 허승욱(39) 총감독. ''최고 스키선수'' 허 총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그가 청소년 선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자연스레 녹아있다.
◈ 허승욱을 넘어라 ''한국 알파인스키 간판'' 정동현(23, 한체대)은 지난 2월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슈퍼복합(슈퍼대회전+회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남자 알파인스키에서는 허 총감독 이후 12년 만의 쾌거였다. 한국은 국제스키연맹(FIS) 등록선수가 130명에 불과하다. 일본 1500명, 미국 2500명에 비하면 선수층이 턱없이 엷다. 허 총감독은 "일본을 이기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건 잘한 것"이라면서도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제가 99년에 이미 했던 거에요. 11년 후 금메달? 솔직히 별로에요. 앞으로 ''월드컵 30위내 진입, 유럽컵 메달'' 같이 저보다 한 단계 위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어요?" 그의 쓴소리는 계속됐다. "그래야 스타가 될 수 있어요. 스타가 없으니까 아이들이 알파인스키를 안하는 거죠. 지금도 ''정동현''보다 ''허승욱''이 유명하잖아요. 후배들에게 ''허승욱을 넘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난 7월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됐을 때 허 총감독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종목편식이 심하잖아요. 메달을 바라볼 수 있는 건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 같은 빙상종목밖에 없으니까요." 한국이 딴 역대 동계올림픽 메달 45개 중 37개는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6개도 모두 빙상종목에서 수확했다. 한국이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에서 거둔 최고성적은 98년 나가노 대회에서 허 총감독이 기록한 21위다.
그는 "2018년 펑창 동계올림픽 전까지 세계랭킹 30위권 안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했다. "30위내 선수들은 1초 안에서 승부가 갈려요. 10~15위권을 유지하면 메달도 바라볼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려면 월드컵 같은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선수들과 많이 부딪혀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이 없다는 얘기다.
"매년 월드컵이 23차례 열려요. 저때만 해도 1년에 월드컵 3~4번은 나갔는데 요즈음은 1~2개도 못나가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협회 예산은 그대로인데 스키점프, 스노보드, 모굴스키 등 지원하는 종목은 늘었기 때문이죠." 이어 그는 "나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이 1년에 1억원씩 지원해주셨지만 후배들은 협회 예산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기량을 향상시키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올림픽 개최국이 예산 부족으로 월드컵에 못나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 꿈을 크게 가져라 허 총감독은 국내에서 적수가 없었다. 지난 85년(수원 남창초등학교 5학년) 동계체전에 처음 출전한 이후 이 대회에서만 금메달 43개를 땄다. 87년(연무중 2학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로는 동계아시안게임(90, 96, 99, 2003년)에 네 차례 출전해 금2, 은2, 동1개를 수확했다.
어느 종목이나 라이벌이 존재해야 기량 향상이 빠른 법. 경쟁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중고교 때는 ''1등 못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경쟁자들과 격차가 벌어져 라이벌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했다. 마라톤에서 독주하면 여럿이 뛸 때만큼 기록이 안나오는 것처럼 ''군계일학''이어서 손해본 점도 있지 않을까.
"국내대회가 목표였다면 나태해졌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재팬시리즈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목표였어요." 당시 아시아 무대에서 기량이 비슷한 선수가 10명 남짓 됐다. ''일본선수는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덕분에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게을러질 틈이 없었다. 오로지 훈련에만 매달렸다.
"아시안게임은 신경을 많이 썼어요. 대회 앞두고 2~3년은 거기에 ''올인''했죠. 그렇게 했는데도 아시안게임 금메달 꿈은 27살이 되어서야 이뤘어요. 90년(수성고 2학년) 삿포로 아시안게임 때는 회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죠. 96년 하얼빈 아사인게임에서는 메달이 유력했는데 슬로프에 난입한 관중이랑 부딪혀서 넘어진 적도 있어요. 그러니 99년 강원도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회전, 슈퍼대회전)이 됐을 때 기분은 말로 표현못하죠."
허 총감독은 후배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강조한다. "현재 국내 정상급 알파인스키 선수는 5~6명이 비슷한 레벨이에요. 올림픽 1~5등 하는 선수들이 5명이면 모를까 100등 이하 선수로 평준화되어 있으면 뭐해요. 일단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러면 시선을 세계로 돌려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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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기를 품어라 허 총감독은 22년간 현역으로 뛰었다. 출전한 대회를 일일이 셀 수 없다. 거둬들인 메달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가 오랜시간 ''최고''를 유지한 비결은 뭘까. "재능을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노력을 많이 해서겠죠. 저뿐만 아니라 어느 종목이건 1등하는 선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동을 많이 했을 거에요."
덕분에 큰 부상 없이 마음껏 설원을 누볐다. 부상에 발목 잡혀 경기를 그르치는 난감한 상황과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까지 수술을 한 번도 받은 적 없어요. 운동을 강하게 해서 그렇겠죠. 근육량은 운동량에 비례해서 느니까 근육이 부상 입는 걸 막아준 거에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독기를 품으라''고 채찍질한다. "한국에서 스키선수가 됐다는 건 가시밭길로 접어들었다는 거죠. 악조건 속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한눈 팔 틈이 어딨어요? 온통 스키만 파야죠. ''쉬라''고 해도 훈련하고 ''걸으라''고 해도 뛰면서 운동에만 전념해야 돼요."
그러면서 자기주도적으로 운동하라고 주문한다. "저는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해요. 옆에서 아무리 ''운동하라''고 다그쳐도 자기가 싫으면 안돼요. 본인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그의 말에서 후배들을 ''셀프리더십''을 갖춘 선수로 키우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독기''는 그가 선수였을 때 공항의 동계올림픽 귀국행사장에서 겪었던 ''씁쓸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메달 못딴 우리는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김)기훈이 형, (이)준호 형 짐 들고…. (김)동성이는 자가용 타고 가는데 우리는 버스 타고. 이건 당연한 거죠. 운동선수는 1등 아니면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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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를 진심으로 사랑해라
허 총감독은 지난 2006년 동계체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고별무대에서 은 2(회전, 복합) 동(슈퍼대회전) 1개를 따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는 ''선수생활에 아쉬운 점은 없느냐''는 물음에 "은퇴하던 날 많이 울었다"며 살짝 미소지었다. 긴 세월, 흔들림없이 현역으로 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속상한 일이 있어도 금방 털어버린다. 걱정하고 사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본인 말처럼 대화를 나눠보면 그가 얼마나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혹시 낙천적인 성격 덕이었을까. 그러나 "선수생활이 지속될수록 체감하는 스트레스는 더 많았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나이를 먹어도 20대 전성기 때 생각하면 계속 뛰어도 될 것 같았죠. 그러다가 30대 중반쯤 되면서 ''은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30대가 된 후로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아, 점점 은퇴시기가 다가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지금도 해외로 전지훈련 가면 몰래 시합에 나간다. 스키가 지겹지 않다. 내 인생의 전부이니까"라며 웃었다.
허 총감독은 인생을 살면서 ''내가 아는 것만 하자''는 주의다. 스키스쿨, 스키용품샵, 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 총감독 등 현재 하는 일도 모두 스키와 관련된 일이다.
"내년에 ''허승욱 With Bhs'' 2호점을 부산에 오픈할 예정이에요. 샵이 잘 되어야 후배들 뒷바라지를 더 잘 해줄텐데…. 스스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스키스쿨 규모를 늘려서 후배들도 더 많이 키우고 싶고요. 20년 후 저를 ''스키 분야 발전을 위해 힘쓴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알고보니 허 총감독 집안은 동계스포츠 가족이다. 그의 부모는 스케이트 선수 출신이고, 여동생 허승은(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 코치) 씨는 90년대 스키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또래보다 스키를 잘 탄다"는 도현(7살), 석현(4살) 두 아들을 선수로 키울 의향이 있을까. "운동은 본인이 하고 싶어야 잘할 수 있어요. 자기들이 하고 싶어 하면 시켜야죠." 순간 ''아빠미소''가 작렬했다.
* 청년대사 신원종의 인스브루크 동계 청소년올림픽 이야기(www.innsbruck2012.co.kr) 블로그에 가시면 대회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