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적 다문화지대 ''버번 스트리트''…부르봉의 영욕 서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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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미국 누비기 28] 보헤미안의 이상향 버번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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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의 중심도시이자 남부 데카당스, 퇴폐문화의 본거지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를(New Orleans) 찾아간 것은 2010년 3월.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한다는 버번 스트리트(Bourbon Street)는 어떤 곳일까? 무엇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끄는 것일까?

구름 처럼 피어오르는 궁금증이 뉴올리언즈에 대한 기대를 한껏 키웠다. 봄기운이 찾아 온다는 춘삼월이었지만 남부의 봄은 벌써 무르익고 있었다. 화창한 하늘로 강렬한 햇살이 부서지고 도로가에 짙게 드리워진 녹음은 계절을 잊은 듯 싱그러운 기운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차창으로 밀려드는 습기 머금은 봄바람에는 이름 모를 꽃향기가 스며들어 나그네의 춘정을 자극한다.

처음 가보는 뉴올리언즈는 적어도 우리에겐 미지의 도시였다. 또, 남부 평야 위를 가득 메운 숲의 풍성함에 처녀여행의 기대도 덩달아 부풀어 올랐다. 텍사스에서 출발해 주간고속도로(interstate) 10번을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루이지애나의 주도 베튼 루지(Baton Rouge)가 나오고 그곳에서 다시 한 시간가량 달리면 뉴올리언즈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살포시 속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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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실망도 컸다. GPS가 ''버번 스트리트''라고 우리를 데려간 곳은 뉴올리언즈의 변두리 흑인밀집지역이었다. 아무리 버번 스트리트 같은 곳을 찾아봐도 따닥따닥 밀집된 낡고 초라한 주택들 뿐 버번 스트리트는 없었다. 수 십년은 됐을 것 같은 빛바래고 허름한 집들, 어지럽게 그려진 그래피티(낙서), 대낮인데도 주택가 이면도로에는 양쪽 옆으로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어 교행을 하기도 어려웠다.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은 대부분 흑인이나 혼혈인들. 전체적인 마을의 구조는 뉴욕의 할렘과 비슷하다는 느낌이지만 건물들이 훨씬 낡은 것이 달랐다. 뉴올리언즈는 압도적으로 많은 흑인인구의 숫자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흑인도시임을 실감했다.

어렵게 찾아간 버번 스트리트는 대하(大河) 미시시피가 흘러가는 뉴올리언즈의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미국 중부의 평원에서 비교적 곧게 흐르던 미시시피강 줄기는 뉴올리언즈에 이르러 뱀이 기어가는 것 처럼 구불구불한 사행천을 이루고 있다.

뉴올리언즈 최대 관광포인트인 프렌치쿼터는 강이 동쪽으로 휘었다가 다시 남쪽으로 트는 만곡부의 꼭지점 바로 북쪽, 폰차트레인(pontchartrain) 호수와 10번 고속도로 남쪽에 있는 구 도심이다. 이 곳은 프랑스어 ''비유 카레''(Vieux Carré)로도 잘 알려진 곳으로 오래된 장방형의 도심 시가지란 뜻. 프렌치쿼터의 북쪽에는 루이 암스트롱 공원, 서쪽에는 다운타운, 남쪽에는 잭슨 광장, 미시시피강과 접해 있다. 프렌치쿼터의 중심거리가 바로 버번 스트리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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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에는 건물의 양식도 그렇고 지명도 그렇고 프랑스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버번 스트리트란 이름은 부르봉의 영어식 발음이 어원이다. 루이지애나를 식민지로 건설한 총독이 왕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거리에다 부르봉이란 이름을 붙였음직하다. 부르봉 왕가는 1830년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퇴위할 때까지 16세기부터 3세기에 걸쳐 루이 14세와 16세 같은 전제군주들이 절대왕정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1718년 프랑스인들이 뉴올리언즈에 정착할 당시 미시시피 강변에 조성한 프렌치쿼터는 이 도시 최초의 도심이었다. 뉴올리언즈가 확장되고 다운타운은 프렌치쿼터에서 가까운 서쪽으로 옮겨갔지만 여전히 뉴올리언즈 문화의 허브이자 관광의 중심지이다. 프렌치 쿼터에서도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 바로 버번 스트리트다. 이 거리는 뉴올리언즈 중심상업지구 커넬 스트리트(Canal Street)에서 시작해 미시시피강과 평행한 방향으로 강하류 방면 남서쪽 포부어 마리니 지역의(Faubourg Marigny) 포져 스트리트까지(Pauger Street)대략 1Km가량 되는 2차선길이다. 그 중에서도 도심에서 가까운 8개 블록은 ''Upper Bourbon Street''로 불리는데 이곳이 버번 스트리트의 핵심이다.

프렌치쿼터 북쪽의 유료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두고 버번 스트리트로 갔다. 유명세 만큼 관광객들로 넘쳐났고 거리 전체가 조금은 들뜬 듯한 분위기였다. 도로와 인도는 비좁고 건물도 하나같이 오래된데다 낡아 조금은 우중충하면서도 전통미를 풍기는 곳이었다. 버번 스트리트를 가득 메운 상가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바(bar)와 레스토랑이다. Johnny White''s, The Famous Door, Razzoo and The Cat''s Meow 등은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바들이다.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바에서는 비트 강한 음악이나 재즈 같은 라이브 음악이 흐르고 음악 소리가 거리로 흘러 나와 복잡하고 소란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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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per Bourbon Street의 호객행위는 아주 극성스럽다. 술집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싸구려 목걸이를 쥐어주거나 던져주며 손님끌기에 분주하다. 일부 여성들은 반나 상태로 가게 앞이나 발코니에서 육감적인 춤을 추기도 한다. 커낼스트리트 쪽 버번 스트리트의 초입부는 Rick''s Cabaret, Temptations 같은 대규모 게이 나이트클럽을 비롯해 게이 스트립클럽들이 몰려 있다. 세인트 앤 거리에서 버번 스트리트까지 대여섯 블록에는 버번 펍(The Bourbon Pub) 같은 대규모 게이 나이트클럽을 비롯해 게이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그래서 이 일대는 ''벨벳라인''(the Velvet Line)이라고 불린다.

남부 데카당스의 본거지 답게 버번 스트리트에는 여자와 술, 게이 커뮤니티, 스트립 나이트가 있고 아무데서나 흡연이 허용되는 자유분방한 곳인데 여느 주점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술집마다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한국식으로 얘기하자면 미성년자나 청소년 출입제한지역이다. 노골적인 호객행위에 매케한 담배연기, 음습한 분위기는 이곳이 어른들만을 위한 공간이란 사실을 알려 준다. 아이들이 신경쓰여 돌아보니 오히려 더 민망스러워한다. 준석이는 버번스트리트를 ''저질도시''라고 불렀다. 봄방학을 위한 가족여행이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동행했지만 사실은 청소년들이 가기엔 부적절한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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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스트리트가 데카당스의 본거지로 불리는 것은 한 곳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고 자유분방함이 허용되는 문화적 풍토 때문이다. 뉴올리언즈가 있는 루이지애나주는 스페인에서 프랑스 다시 미국으로 지배권이 바뀌었고 미국 남부의 플랜테이션농업의 필요성 때문에 아프리카로부터 흑인들이 유입되면서 흑인 문화가 더해졌다.

이 뿐이 아니다. 프랑스 지배기에 유럽인과 흑인간 혼혈, 프렌치 크레올(French Creoles)이 출현했고 19세기에는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이민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 1905년 기준 프렌치 쿼터 인구의 1/3~1/2이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다. 19세기 말 프렌치쿼터는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도심의 슬럼으로 인식됐지만 이것이 예술인사회를 유인하는 모티브로 작용했다. 쿼터 일대의 값싼 주택 임대료와 쇠락한 분위기가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예술인들을 끌어 들인 것이다.

오늘날 버번 스트리트에서 퇴폐문화 뿐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뉴올리언즈가 퇴폐문화지대란 오명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다양한 인종들이 얽혀 사는 문화 해방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 관계와 규율, 속박으로부터 한 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보헤미안의 기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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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쿼터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흔적은 곳곳에 널려 있다. 프렌치쿼터내 수많은 기념품점에 전시된 부두교의 상징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부두교는(Voodoo) 서인도제도와 미국의 흑인들 사이에 행해지는 일종의 악마 숭배교로 해골이나 인물상 같은 종교적 상징들이 하나같이 기괴하고 무시무시하다.

대지진이 발생했던 아이티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이티에 부두교를 퍼트린 사람들은 아프리카 서부에서 서인도제도로 팔려온 흑인 노예들. 부두교는 아프리카 문화의 일부분인데 노예들을 따라 아메리카로 이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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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스퀘어는 버번 스트리트와 함께 뉴올리언즈 관광의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버번 스트리트에서 미시시피강 쪽으로 꺾어 3블록 정도 가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광장은 프렌치쿼터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고 광장 바로 앞으로 미시시피강이 흐른다.

광장의 이름은 플라세 드 아르매스(Place d'' Armes)였지만 1815년 뉴올리언즈 전쟁 후에 미군 소속 앤드류 잭슨 장군의 이름을 따서 잭슨 스퀘어로 변경했다. 1~2만평쯤 되는 광장의 중심에는 잭슨 장군의 기마상이 있고 한쪽 가장자리 부분에 세인트루이스(St. Louis)대성당과 좌우로 카빌도(cabildo)와 프레스비테르(Presbytère)가 있다. 성당은 교황 바울4세가 바실리카로 지정했고 주위의 건물은 과거 시청사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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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빌도는 역사적 사건이 이뤄졌던 유서깊은 건물이다. 본래 미국 중부의 대평원을 포함하는 광대한 땅은 루이지애나란 이름의 프랑스 식민지였지만 나폴레옹과 제퍼슨 대통령이 매매에 합의하고 1803년 양국간 매매계약이 체결되는데 그 장소가 이 곳이다.

광장은 과거 주인에게 반감을 품거나 순종적이지 못한 노예들을 공개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수 많은 화가와 거리의 악사들이 몰려들고 축제가 벌어지는 문화의 공간이 됐다.

광장에서 디카투어 스트리트 너머 미시시피강의 물길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반복되는 수해를 막기 위해 높은 제방을 쌓는 바람에 강과 광장은 한 때 단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Moon Walk"란 보행로가 설치돼 잭슨 스퀘어에서 미시시피강으로 나갈 수 있다. 미시시피는 보기 드문 대하로 강의 폭이 넓고 사시사철 수량도 풍부해 강둑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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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지대인 만큼 음식문화도 다양하다. 프렌치쿼터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많다. 비번 스트리트의 갤러토어즈(Galatoire''s)는 늘 그 곳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오랜 역사 만큼(1905년 개업) 프랑스 요리를 잘하는 것도 이유지만 절대로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세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라고 한다. 이 식당은 아무리 힘있는 거물들이 전화를 걸어와도 자리를 내주지 않는 나름의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뉴올리언즈 출신의 흑인 가운데 가장 먼저 백인주류사회에 진입한 사람이 바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일 것이다. 아버지가 팽개친 가정에서 우울하게 자란 그는 유년시절 생계를 잇기 위해 어머니의 매춘까지 목도하는 불행을 겪었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과 열정은 그에게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이라는 명성을 가져다 줬다. 특유의 걸걸한 쉰 듯한 목소리와 스캣 창법, 카리스마 넘치는 스테이지 메너는 음악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20세기초 재즈밴드 ''핫 파이브''와 ''레드 어니언 재즈 베이비즈''(red onion jazz babies)에서 활동하며 재즈 트럼펫 연주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 "Stardust", "What a Wonderful World",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Dream a Little Dream of Me",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같은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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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대부 암스트롱의 걸출한 역량은 당시 뿌리깊던 미국사회의 인종적 편견까지 뛰어넘을 정도로 놀랍고 경이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 암스트롱을 기념한 공원 역시 프렌치쿼터 바로 북쪽에 있다.

뉴올리언즈의 프렌치쿼터와 버번 스트리트에는 눈에 확 들어오는 멋진 건축물이나 구경거리가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문화와 다양성이 도시의 곳곳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이유는 아마도 문화에 빠지고 분위기에 젖어들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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