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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난개발 ''토건 마피아 동맹'', 그들만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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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ㄷㄷ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지역축제가 돈만 허비하고 요란만 하지 축제성이 부족하고 호응도 적어 과감히 구조조정하자는 지적이 많다.

실패의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이다. 서울의 축제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간 71개, 2005년부터 올해까지 90개가 신설됐다. 2005년 이후 축제에 대한 서울 시민의 인지도는 36%에 불과하다. 외국관광객에게 한국의 축제 아는 것을 대보라고 해 순위를 뽑았는데 서울시와 서울시 자치구 축제는 20위 권 내에 한 개도 들지 못했다.

서울의 축제가 160 개, 뭐가 살아남았고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서울을 대표하는 축제는 뭔가? 서울이 왜 이 모양일까? 이것은 축제의 문제 이전에 서울이란 도시의 구조와 도시 경영의 철학 문제라고 본다.

◇ 서울이란 도시만 남고 마을은 사라졌다

서울은 너무 넓고 행동반경도 수도권 전역으로 퍼져 있다. 그러니 자동차용 도시로 만들 수밖에 없다. 서울의 거리를 걸으며 즐긴다는 것은 보통 내공으로는 힘들다. 거닐만한 멋도 풍경도 없다. 대형 백화점, 쇼핑몰, 관공서, 기업 빌딩이 빼곡하고 그 주변은 점포들로 채워져 있다. 큰 도로에도 차가 가득한 채 매연이 뿜어져 나오지만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도 자가용과 마을버스 피해 다녀야 한다.

곳곳에 세워진 방음벽들, 시민을 위해 세워진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바람도 막고 풍경도 막아 버린다. 지나는 사람과 마을 사이의 마주침을 가로 막아 끊어 버린다.

마을이 마을로 되어 있지 않고 아파트 단지로 되어 있다. 아파트 단지는 거기 사는 사람은 편리해도 자기들만의 공간이다.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놀아도 찜질방, 노래방에 틀어 박혀 논다. 서울은 마을을 없앤 도시이다. 마을이 없으니 문화가 없고 축제도 없다.

서울은 하나의 커다란 마을이자 거대한 이야기책이었다. 거리마다 고개와 개천마다 역사와 전설이 그득한 곳이다. 그러나 모두 파내고 아스팔트로 메우고 콘크리트 건물로 채우면서 큰 도시는 만들었지만 수도 서울은 사라지고 없다. 왜 이런 식으로 서울을 만들어갔을까?

 

◇ 토건 마피아 동맹 - 그들만의 축제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를 꾸미고 개발하는 건 공공개발이다. 대도시를 개발하려면 그런 공공성의 철학이 있어야 하고 모두의 미래를 위한 비전이 담겨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도시개발을 책임지고 기획하는 ''''디벨로퍼''''(developer)라는 전문기업에게 맡기기도 한다.

''''디벨로퍼''''라는 기업이 도시의 역사와 기능, 시민의 삶과 미래를 조합해 도시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전문기업이 없다면 서울시가 도시계획심의위원회라는 전문가 집단을 활용해 직접 ''''디벨로퍼''''가 되어 도시 개발을 통제하면 된다. 그렇게 도시개발에 철학과 공공성을 심어 시장의 소속이 어디로 바뀌어도 지속적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특징은 ''''디벨로퍼''''라는 전문기업은 없는 대신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담당하는 투자전문회사만 즐비하다. 어떻게 돈을 끌어 모을까, 개발을 빨리 끝마치고 수익을 챙겨 떠날까만 고민하는 회사들이다. 저축은행도 그 역할을 맡았다. 정치적 치적에 골몰하는 시장과 시장 눈치 보느라 제구실 못하는 전문가 집단, 개발투자 전문회사만 존재하니 도시 개발의 공공성 책임은 공중에 붕 떠버린다.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먹이사슬 구조이다. 고층빌딩으로 도시를 채우면서 개발 이익을 챙기는 서울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뒤 더 높은 자리로 옮기려는 시장, 단기 이익을 챙기고 빠져 나가는 건설 회사, 돈 놓고 돈 먹으면 그만인 파이낸셜 프로젝트 담당 투자자들, 건설업체 분양광고를 노리고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언론사들, 이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뭉쳐 힘을 합하면 그게 바로 <토건 마피아="" 동맹="">이다.

공공성이란 대규모 건설을 하면서 지역의 균형발전, 문화와 역사의 보전, 시민 삶의 보호가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대규모 개발 과정에서 시민, 특히 소외당하기 쉬운 서민들의 삶과 도시의 문화가 침해당하진 않을까 감시하고 개입해 통제하는 것이 시 당국과 정부의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태는 그게 아니다. 도심에 아파트 재개발을 할 때마다 가난하게라도 살아가고 있던 판자촌 주민들은 내쫓긴다. 뉴타운 개발하면 그 지역 서민과 영세상인은 뿌리가 뽑혀 떠나야 한다. 지켜줘야 할 정부와 서울시 등 시당국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뛰어다니고 경찰 특공대가 최루액을 뿌리고 잡아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다. 코레일이 적자에 시달리다 손실을 보전하고자 철도기지창 부지를 비싸게 팔아 이득을 챙기고, 동시에 그 개발에 투자를 하며 시작됐다. 오세훈 시장은 그러는 김에 한강 르네상스에 걸 맞는 강변 명품도시를 만든다고 주변 마을을 수용해 버렸다. 주민들은 반발하고 경찰과 용역이 나서 막아낸다.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은 훗날 시민과 상인들이 세금과 비싼 입주금으로 메워야 한다.

◇ 마을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마을은 집과 거리 같은 공간의 개념으로만 보아선 안 된다. 마을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이자 지역의 역사이다. 시간 속에서 관계가 쌓여 이뤄지는 것이 마을이다. 마을을 집 들어서고 길을 낼 공간으로만 인식하고 시간적 개념이 없으니 무작정 재개발이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관계가 상실된 채 공간 속에 토목건설만 남은 마을에서 무슨 축제가 가능하겠는가. 저들만의 축제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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