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묻는다, 이 모진 목숨들이 불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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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한진중공업이 껍데기만 남기고 필리핀으로 ''먹튀''한 사건

ss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주말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된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마치 회사 측이 지키고 있는 공장에 멀리서 버스를 타고 간 노동단체 행동대원들이 들이닥쳐 공격한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후를 살피면 유쾌하고 즐거운 나들이로 기획 된 것일 뿐, 보도내용과는 다르다.

◈ 희망버스에 탄 예술인들의 격려방문 전 들이닥친 용역 구사대

최근 수도권에서는 한진 해고 노동자들과 크레인 고공농성 김진숙 씨를 격려하려 부산에 가고자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자발적인 격려방문 모임의 이름이 희망버스. 희망버스를 탈 사람들은 한진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손수건을 선물로 준비했고, 한진 해고노동자 가족들은 손님들 오면 주려고 양말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희망버스에 탄 사람들은 시인, 소설가, 화가, 동화작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사진작가, 가수, 무용가, 노동단체 회원 등이었고 군산에서 문정현 신부가 국밥을 마련해 합류하는 것 정도가 희망버스 계획이었다. 그런데 희망버스가 도착하기 전 먼저 도착한 버스들이 있었고, 여기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 용역경비업체 구사대.

사측은 구사대를 풀어 희망버스가 도착하기 전 농성장에 진입해 노조원들을 해산시키고 김진숙 씨를 끌어내리려고 한 모양이다. 대외적으로는 출입문 보강작업을 하려 하는데 노조원들이 기를 쓰며 막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뒤집어 해석하면 격려 방문단이 들어가지 못하게 문을 확실히 봉쇄한다는 의미인 듯 했다.

희망버스를 타려던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받고 국밥 먹으며 얘기나 하고 노래라도 불러주자고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임하다 갑작스레 부산 영도 현장에서 구사대와 노조원들이 충돌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뜻 있는 사람들은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달려 와 줄 것을 트윗과 문자메시지로 호소했다.

결국 수도권 한 곳에서 출발했어야 할 희망버스는 전국 곳곳에서 희망승용차, 희망승합차, 희망열차로 확대됐고, 평범한 시민, 학생, 철거민,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야당 정치인들까지 달려 내려가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이들을 못 만나게 하려는 구사대와 들어가 만나려는 격려단, 들어올 수 있게 안에서 사다리를 내려주는 노조원들과 멀리서 쳐다만 본 경찰, 이것이 그날 한진 영도조선소의 상황이었다.

◈ 한진중공업이 껍데기만 남기고 필리핀으로 ''먹튀''한 사건

한진중공업은 2010년에 비정규직을 포함해 3,000명을 정리해고 했다. 이어서 300명이 강제휴직을 당했고 울산공장이 폐쇄됐다. 2011년 올해 270명을 희망퇴직으로 정리했고 다시 172명을 정리해고 했다. 이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 1월6일부터 정리해고 계획을 철회하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여왔다.

그러나 회사 측이 지난 2월 14일 생산직 172명을 정리해고했고 다른 노조 간부 2명이 2월 14일부터 17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합류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광장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왔다. 노조 측이 위법적인 정리해고라며 노동당국에 호소했으나 판정을 미뤄 오던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5월6일, "한진중공업의 해고는 2년 간 수주를 하지 못하는 등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인정된다, 해고 절차에도 하자가 없다"고 판정했다. 이를 기화로 사측은 노조원들을 공장에서 몰아내고 사태를 종결시키고자 용역 경비원들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중공업과 조선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뛰어난 노동력 보유로 세계 1위부터 5위까지가 모두 한국 기업이라 할 만큼 경쟁력 있는 분야이다. 조선업은 몇 년 전 최대 호황기를 맞아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왜 한진중공업에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을까.

그것은 한진중공업 측이 동남아시아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조선소를 필리핀 수빅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필리핀 이전 전까지 엄청나게 밀려들어오는 수주에 맞춰 작업하느라 노동자들은 죽도록 일했지만, 더 큰 이익을 위해 그 돈은 필리핀으로 빠져나갔고 껍데기만 남은 공장에는 정리해고와 헐벗은 노동자, 그리고 그 가족들이 남은 것이다. 그 사정이 이러니 해외에서 선박건조 수주를 따올 리 없다, 그건 필리핀으로 가져갔으니까.

''한진중공업의 해고는 2년 간 수주를 한 건도 하지 못하는 등 회사가 몹시 어려워 어쩔 수 없었다''는 부산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이란 결국 노동 당국이 누구 편에 서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172명 정리해고를 통보한 다음 날, 조남호 사주 일가와 주주들은 174억 원의 고배당을 챙겨갔다고 한다. 한국에서 질 좋은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해 큰 돈을 벌다 임금이 동남아시아보다 더 비싸졌다고 껍데기만 남기고 필리핀으로 옮긴 것이야 말로 ''먹튀''가 아니고 무엇인가. 회사 측은 "부산 영도조선소는 고부가가치의 특별한 선박을 만드는 조선소로 바꿔나가겠다"고 하지만 믿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부동산 개발로 손쉽게 돈 버는 방법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ss

 



◈ 투쟁할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

2003년 9월 한진중공업의 한 노동자가 쓴 편지를 인용해 보겠다.

<내일 모레가 추석이라고 달은 둥글어 가는데 내가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라 온 지 벌써 90일 째이다. 파업이 50일이 지났는데 회사는 교섭 한 번 하지 않고 있다 …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와 썩어 빠진 정치인들은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 1년 당기 순이익의 1.5배~2.5배를 주주들에게 배당한다. 그토록 어렵다면서도 회장은 알 수도 없을 만큼의 연봉을 가져가고 50억 원의 자기 배당금도 챙겨간다. 1년에 3천5백억 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런 회사에서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 이 회사에 들어 온 지 만 21년, 한 달 기본급 105만원, 세금 공제하고 나면 남는 건 팔십 몇 만원 … 날이 갈수록 쪼들리고 앞날은 막막하다 ….> -85호 크레인에서 129일 간 고공농성 끝에 목을 매 자살한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 분회장의 유서 중에서

이번엔 10년이 지난 2011년 올해 해고된 한 노동자의 사연을 들어보자.

<나이 60이 다 된 용대 아저씨, 한진중공업에서 26년을 일하다 해고당했다. 얼마 전 막내가 맹장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퇴원하고 돌아 온 막내가 아빠에게 던진 첫 마디, "아빠 수술비는 있나?" 용대 아저씨는 그 이야기를 꺼내고는 모두의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1월 6일 새벽 3시30분,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문을 봉쇄한 쇠사슬을 절단기로 1시간 30분 간 끊고 올랐다. 왜 거길 올라야 했을까? 김진숙 씨의 트위터 대문에 올린 자기소개 글을 읽어보자.

<열 여덟살. 옷공장, 신발공장, 가방공장, 조선소용접공, 대공분실, 해고, 징역, 수배 다시 징역, 장례 치르고 추모사 하다 보니 쉰 둘, 20년 지기가 정리해고 반대하며 129일 매달려 있다 목을 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다시 정리해고 반대하며 올라와 울다가 웃다가….>

이 트윗의 자기소개 글을 부연설명하면 이러하다.

18살부터 옷 공장 시다로 노동자가 되어 신발공장, 가방공장, 조선소 용접공(이 때 21살이었고 바로 한진중공업), 대공분실, 해고, 징역, 수배, 다시 징역(노동운동 하다 26살에 해고당했고 대공분실에 3번 끌려갔고 징역 생활 2번, 수배자 도망생활 5년, 부산지역의 경찰서란 경찰서는 죄다 훑으며 살았다) 장례 치르고 추모사 하다 보니 나이 쉰 둘 (2002년 한진 중공업이 50세 이상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하자 55세로 대기발령을 받은 유 모씨의 노모와 딸이 동반자살을 기도해 딸이 숨졌다. 2003년 김주익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다가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2010년 말 구조조정 소식에 두려워 떨던 박범수 씨, 손규열 씨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돌연사로 숨졌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추도사를 낭독하다 오늘에 이르러 스스로 크레인에 오른다). 20년 지기가 정리해고 반대하며 129일 매달려 있다 목을 맨 85호 크레인 (앞에서 설명한 김주익 지회장) 다시 정리해고 반대하며 올라와 울다가 웃다가….

김진숙 씨는 희망버스를 배웅하며 이렇게 물었다. "대한민국 법에게 묻습니다. 과연 이 마음들이 불법인가?"

다시 물어보자, 2002년 한진 중공업이 50세 이상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하자 55세로 대기발령을 받은 유 모씨의 노모와 딸이 동반자살을 기도해 딸이 숨졌다. 2003년 김주익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다가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2010년 말 구조조정 소식에 두려워 떨던 박범수 씨, 손규열 씨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돌연사로 숨졌다. 그리고 숱한 산재사고들….

"대한민국 법에게 묻는다, 이 힘없고 모진 목숨들이 과연 불법인가?"

[변상욱의 기자수첩 다시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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