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노컷뉴스는 산림청 녹색사업단과 공동 기획으로 ''2011 소통의 숲, 동행!''이라는 주제로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은 숲의 생태·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소통과 치유의 장(場)''으로서 숲이 가지는 뛰어난 사회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오늘은 노숙인을 위해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씨와 국수집 손님들이 인천 계양산으로 봄 소풍을 떠난 소식을 다뤘습니다. 이들은 숲 속에서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편집자 주]유난히 오후의 햇살이 눈부셨던 지난 13일 민들레 국수집 주인장과 손님들이 모여 소풍을 떠났다. 국수집 근처 동인천역에서 전철로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계양산''이 목적지다.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주산(主山)이다. 경인여대 옆 공원관리사무소를 출발지로 삼았다. 평일인데도 제법 등산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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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봐도 안돼….
산을 오르면서 국수집 아저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도 인천에서 산 지 꽤 오래됐는데, 인천에 이렇게 좋은 산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네요. 찬시 씨는 등산해 본 적 있어요."
박찬시(가명·58) 씨는 지방에서 배관설비일을 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 때 회사가 부도나면서 먹고 살 길이 막히자 무작정 상경해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아니요. 등산은 처음이에요. 노숙자들에게 가장 급한 일은 우선 한 끼의 식사를 때우는 것이죠. 밥도 부지런해야 얻어먹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시간은 많지만, 늘 마음은 쫓기죠."
이용팔(가명·37) 씨도 노숙자 신세가 된 사연을 털어놨다. 용팔 씨는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할머니마저 스무 살 때 돌아가시자 지금껏 혼자 살아왔다.
"그동안 중국집 배달부터 술집 서빙, 막노동 등 안 해 본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일을 해도 돈을 제대로 주는 곳이 없었죠. 아마 제가 부모·형제도 없는 고아다 보니까 만만해서 이용 만 하고 돈을 주기는 싫었나 봐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국수집 아저씨는 김지하 시인의 ''비어(蜚語)''라는 시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이들이 노숙자로 전락한 것은 개인의 나태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큰 요인이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밤낮으로 그저 뛰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있것느냐?/ 되는 것은 개코도 쥐뿔도 까치뱃바닥도 없이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가로 뛰고 세로 뛰고 치닫고 내닫고 물구나무까지 서고 용때마저 쓰고/ 생똥을 뿌락뿌락 내싸지르면서 기신기신 기어 올라가 보아도 안돼…"
어느새 쉼터인 ''하느재''에 도착했다. 앙증맞게 핀 보라색 제비꽃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한 20분쯤 걸렸을까? 공원관리사무소에서 하느재(쉼터)까지는 300m밖에 안 된다. 나무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국수집 아저씨가 이번에는 유영인(가명·47) 씨에게 물었다. "영인 씨는 며칠까지 굶어 봤어요?"
유 씨는 서울 종로3가에서 한 때 금 세공업을 했다. 한창 사업이 번창할 때는 직원이 15명이나 됐단다. 하지만, IMF 한파로 직격탄을 맞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그 후 아내와는 이혼하고 어린 딸과도 헤어지는 아픔을 겪으며 노숙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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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착해서 가난하고 노숙하는 거예요" "처음 노숙생활을 시작할 때 한 열흘 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적이 있어요. 굶으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더군요. 결국은 남이 가게 앞에 내다 놓은 그릇에 담긴 음식찌꺼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화장실에 가서 먹었어요. 다 지난 이야기죠. 지금은 민들레 국수집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행복한 줄 몰라요."
안타까운 표정으로 노숙자들의 얼굴을 살피던 국수집 아저씨가 말을 이어 갔다.
"노숙자분들을 보면 하나같이 치아상태가 엉망이에요.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래요. 영양상태가 안 좋으면 제일 먼저 이부터 빠지거든요."
하느재에서 계양산 정상까지는 790m 거리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민들레 국수집 식구들은 "녹색을 보니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가슴도 탁 트이는 느낌"이라며 입을 모았다.
서영남 씨가 배고픈 이를 섬기기 위해 ''민들레 국수집''을 연 지도 올해로 만 8년이 됐다. 열 사람이 앉으면 꽉 차버리는 작은 뷔페식당이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하루에 두세 번 와도 괜찮다.
벽에 십자가는 걸려 있지만, ''기도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 그는 미국 워싱턴의 미리암스 키친(Miriam''s Kitchen)''처럼 노숙자들에게 최고의 호텔식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꿈이다.
"여러분은 너무 착해서 가난하고 노숙을 했던 거에요. 너무 착하니까 일을 해도 돈을 못 받고, 누가 괴롭혀도 저항을 못하는 거죠. 또 너무 착하니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을 해치거나 남의 것을 빼앗지 못하죠. 그러니까 너무도 착한 여러분은 동냥의 대상이 아니라 환대를 받을 만한 특별한 존재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영인 씨가 지난해 자신의 딸을 찾아가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유난히도 가족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10여 년 만에 처음 만난 딸은 몰라볼 정도로 예쁘게 컸더군요. 정말 기뻤어요. 충남 보령의 한 양계장에서 석 달 동안 일하고 받은 300만 원을 고스란히 손에 쥐여 줬어요. 저에게는 전 재산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죠. 올해 부산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얼마 전 장학금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더군요.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아 딸 아이에게 MP3를 선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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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궁한 이는 하느님의 대사!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시야!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응어리가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산 아래쪽에 빽빽이 늘어선 아파트들이 성냥갑처럼 보인다. 한동안 아파트촌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찬시 씨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탁 트인 김포 쪽보다는 아파트가 많은 계양구와 부평구 쪽으로 자꾸 눈길이 가네요. 아마 집에 한이 맺혀서 그런가 봐요. 어쨌든 저 많은 집 중에 내 몫으로 된 쪽방 하나가 없네요!"
용팔 씨의 눈도 빛났다.
"저 집들을 보니 뭔가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게 있어요. 저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요. 나도 그들처럼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요. 먼저 건강부터 챙기고 다시 일도 시작하고 돈도 벌어야겠어요. 할 수만 있다면 결혼도 해야죠."
민들레 국수집 아저씨는 이날 노숙자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려 애썼다. 그리고 이들에게 비록 작은 것이라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사람대접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가톨릭 일꾼 운동의 선구자이자 환대의 사상가인 피터 모린(Peter Maurin, 1877-1949)은 이렇게 말했다.
"곤궁에 빠져 있으면서 구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곤궁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좋은 일을 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현대 사회는 거지를 게으름뱅이나 비렁뱅이라고 부르며 발가락의 때처럼 여긴다. 그러나 예전에 그리스의 사람들은 곤궁한 사람을 하느님의 대사라고 불렀다. 당신들이 게으름뱅이나 비렁뱅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사실은 하느님의 대사들이다."
※이 시리즈는 산림청 녹색사업단의 복권기금(녹색자금)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