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억원 딴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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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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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의 달인·프로기사 차민수

 

아직도 내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뜨면 ''에이 똥 밟았다''고 수군거리는 갬블러들이 있을 정도랍니다."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 차민수(60)씨는 한때 세계 최정상급 프로 도박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프로 바둑기사로서 한국바둑리그 한게임 감독, 카지노 인터내셔널 그룹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종대학교 관광대학원의 겸임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한다.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사무실을 찾아 갔더니 온라인으로 아이디가 ''대니 얀''이란 젊은 중국 기사와 대국 중이었다.

"갬블러로 잘 나갈 때는 보통 하루 6억원, 많게는 12억원까지 딴 적도 있어요. 프로는 승률로 먹고 살거든요. 승률이 80% 정도면 그럭저럭 먹고 살고, 그 이상 90% 가까이 가면 돈을 벌 수 있어요. 제 전성기 때 승률이 92%였으니 잘 나갔죠. 11번 포커판을 벌려서 10번 이기고, 딱 한번 졌어요."

미국 네바다주의 ''관광과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프로 도박사 수입 1위를 기록한 1997년에는 ''포커의 신(Porker of God)''이란 닉네임으로 알려진 돌 브론슨, 세계 최고수로 인정받던 칩 위즈, 포커 세계 챔피언을 3번이나 차지했던 스트위 헝거 등 월드 클래스 플레이어들과 7개월 동안 맞붙어 총 63승2패를 기록했다. 깜짝 놀랄 기록이었다.

프로 도박사에겐 스폰서가 없다. 순전히 자기 돈으로 포커든, 블랙 잭이든 판이 벌어진 곳에 끼어 승부를 펼친다. 포커판에서 2등은 죽음이다. 일등 아니면 모두 꼴찌다. 1등을 할 때는 돈을 최대한 쓸어 모아야 하고, 1등이 아니면 나가는 돈을 최소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차민수도 파산의 쓰디 쓴 경험이 있다. 1984년 집도 없고, 주머니엔 딱 18달러만 있었다. 다른 사업 등으로 재기하기 위해선 5,000달러 정도가 필요했지만 손 벌릴 곳이 없었다. 당시 LA 봉제협회 회장과 한 판에 20달러짜리 내기 바둑을 뒀다. 상대는 아마 5단의 실력파로 만만치 않았다. 첫 판을 지며 모든 것이 끝이었다. 배수의 진을 치고 대국을 펼친 끝에 힘겹게 이겼다. 상대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두 판, 세 판, 네 판, 다섯 판. 모두 이겼다. 그렇게 만든 100달러가 종자돈이 돼 다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찾았고, 3년 만에 백만장자가 됐다.

"처음엔 제 포커 실력이 수준 이하였어요. 대학 시절 친구들과 즐기며 익힌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미국으로 이민간 뒤 우연한 기회에 포커를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세계적인 고수들과 포커판을 벌일 때는 늘 도전 의욕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꼭 이겨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집중하고, 승리를 따내는 과정에서 도전 자체가 기쁨이란 걸 알았어요."

차민수는 1976년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치프 존슨이란 갬블러에게 체계적으로 ''놀음''을 배운 뒤 2005년까지 어언 30년을 프로 도박사로 생활했지만 지금은 손을 딱 끊었다. 도박 중독자가 아닌 ''프로''였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따거나 잃어도 ''게임''이니까 그날로 잊어 버리는 습관이 몸에 밴 결과였다.

"나는 도박사 존슨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존슨은 한국기원의 프로기사인 나에게 포커를 지도했어요. 프로기사가 되려면 ''기재''를 타고 나야 하듯이, 프로 도박사에겐 ''카드 센스''라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머리 속에서 순식간에 패를 읽고 확률을 계산하는 카드 독해력을 지니고 자기 만의 룰을 만들어야 승률 높은 진짜 도박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명절이면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나 때론 친구들끼리, 경노당의 노인네들이 심심풀이로 치는 ''화투'' 역시 ''카드 센스''가 있으면 ''고수'' 소릴 들을 수 있다.

" 도박판에는 어디나 프로가 있기 마련입니다. 카지노 역시 똑같아요. 연예인들의 도박이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데다 ''공인''이란 기준에 맞춰 엄하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도박 중독은 병입니다. 도박 중독자는 스스로 환자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지막 기회를 한번 잡아 보겠다고 마음 먹는 도박꾼이 있다면 그게 바로 중독이 오고 있는 징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정환씨도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차민수에 따르면 ''모든 카지노는 2.5~4.5%에서 자기들이 유리하도록 모든 게임을 디자인해 놓는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절대 딸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저 즐겨야지 빠져들면 폐인이 될 수 밖에 없단다.

연예인이나 보통 사람이나 처음 카지노를 찾아갔을 때 돈을 좀 따면 쉽게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러다 액수가 커지고, 평소에 벌 수 없었던 많은 돈을 손에 잡아보면 평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방송인 신정환뿐 아니라 공무원들이 근무 시간 중에 카지노를 들락거렸던 것도 이런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처럼 스스로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암이나 다른 질병처럼 주변에서 함께 이해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단시간에 고칠 수도 없습니다."

도박에 빠져들면 먼저 거짓말을 일삼는다. 주변의 따가운 눈길을 피하면서 자기를 보호하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신정환의 ''뎅기열''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도박은 일상 생활을 무너뜨린다. 공무원이 출장을 핑계로 카지노에 드나들거나, 신정환이 방송을 펑크 낸 일이 대표적이다.

100원짜리 고스톱보다 만원짜리 고스톱이 흥미진진하고, 누구에게나 묘한 흥분을 자극한다. 처음에는 소량의 항생제로 잘 낫던 병이 어느 순간 많은 양을 써도 소용없듯이 도박 중독도 시나브로 진행된다.

우리 사회는 ''사행 산업''에 대한 규제가 많고, 인식이 부정적이다 보니 ''도박''은 지하로 숨어들어 음성화되고 있다.

"도박은 매춘과 함께 인류의 가장 오랜 직업 중 하나일 것입니다. 카지노 등 도박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역기능을 최소화하면서 순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인된 가장 큰 도박이 ''주식''아닙니까. 카지노나 경마, 경륜 역시 같은 맥락이지만 홍보와 계몽이 부족하고 규제 조항과 원칙 적용의 간극이 크다 보니 우리는 마카오나 싱가포르에게 뒤진 도박 산업 후진국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차민수는 서울 영등포 경흥극장을 운영하던 부유한 집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운동, 음악, 바둑 등 다양한 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잡기''에 능하다. 지금도 밤무대에 서서 기타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

바둑을 통해 승부사 기질을 익혔다.

"처음 바둑을 가르쳐 주신 사범님께서 사탕 내기를 하셨어요. 스무개 정도 저에게 주신 뒤 접바둑을 두면 지면 하나씩 빼앗아 갔어요. 어린 마음에 사탕을 빼앗기기 싫었고, 그래서 악착같이 이기려고 노력했어요. 그 기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1973년 프로기사로 입문한 차민수는 한국바둑리그에서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친 한게임 선수들에게 강한 정신력을 강조한다.

"상대가 강하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약하다고 깔보지 마라. 승부는 평생 하는 것이다. 길게 봐라. 좋은 바둑을 두는 것이 희망이다."

승부사의 세계나, 보통 사람들의 사회나 똑같다.

한국일보 이창호 기자 /노컷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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