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금 산정 때 지연손해금(이자)은 불법행위 발생 시점이 아니라 배상금 산정 시점인 사실심 변론종결일로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손해배상금에 대한 이자를 불법행위가 발생한 당시가 아닌 현재의 통화가치에 맞춰야 한다는 판결로 배상액이 대폭 줄어드는 것은 물론 향후 비슷한 국가배상판결 위자료 액수 산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13일 ''민족일보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조용수 사장의 유족 등 10명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정부는 위자료와 이자로 99억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깨고 배상액을 29억원으로 확정했다.
재판부는 "국가 불법행위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위자료에 따른 이자는 채무성립과 동시에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며 "불법행위 시점부터 이자를 계산한 원심은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제기돼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조용수 사장의 유족 등에게 지급되는 손해배상액은 1, 2심에서 산정된 위자료(29억5,000만원)와 47년간의 이자(69억8,000만원) 합계인 99억3,000만원에서 이자가 크게 줄면서 총 액수는 29억7,000만원으로 확정됐다.
같은 재판부는 역시 신군부 집권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박모씨 등 ''아람회'' 사건 피해자 유족 3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배상액 이자계산 시점을 비슷한 취지로 해석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유죄판결이 확정된 지난 1982∼1983년을 기준으로 한 국가 배상액 이자 계산을 2심 변론종결일인 지난해 2월 시점에 맞춰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씨 등이 실제로 받을 금액은 2심의 206억원보다 116억원이 줄어든 90억여원으로 확정됐다.
또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8년간 복역한 김용준(76)씨와 가족이 낸 소송에서도 "국가는 위자료와 이자로 6억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깨고 배상액을 재산정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당초 항소심에서는 위자료 2억3,000만원과 이자 3억8,000만원 등 손해배상금은 총 6억1,000만원이 책정됐지만 이자가 대폭 줄어 손해배상액에도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국가의 불법행위 발생시점과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 시차가 30∼40년씩 되는 과거 시국사건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근 대법원 공보관은 "국가의 불법행위 시점과 재판시점이 몇 년 차이가 나지 않는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몇십년씩 시차가 있는 시국사건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단은 군사정권 시절 간첩단으로 몰려 처벌된 대표적 사례인 민청학련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 피해자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의 불법행위로 수십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이 대법원의 이날 결정에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보여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