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느껴야 ''진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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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빈민촌의 주민과 똑같이 먹고 일하고 잠들고…공정여행 ''즐거운 불편''

신영복 선생은 자신의 책 ''더불어 숲''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느 곳의,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든 그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하여 살아 왔고 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 땅의 최선이었고 그 세월의 최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존중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이 만남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을 뜻하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대로 조금은 불편하지만 겸손한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있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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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고두환(27) 씨는 20대 사회혁신 예비기업인 ''공감만세''의 대표다.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을 뜻하는 공감만세는 ''공정여행''을 주 사업 분야로 삼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필리핀 중북부의 이푸가오(Ifugao) 지역을 둘러보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푸가오의 계단식 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세계 8대 불가사의'', ''모두 이으면 지구를 반 바퀴나 돌 수 있는 길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이기심에 가득한 여행객들의 추한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은 마구잡이로 논둑을 밟기 시작했고, 허락 없이 마을 곳곳을 헤집고 돌아 다녔다.

추억을 남긴다는 이유로 아무에게나 사진기를 들이 밀었고,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이푸가오 족에겐 동전 몇 닢을 던져 주었다. 여행객들이 몰려들자 젊은이들은 그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에만 매달렸다. 자연스럽게 농업시스템은 무너졌고 농산물 가격은 폭등해 주민들은 더 가난해졌다.

"단순히 계단식 논을 보고 감탄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식의 여행은 역설적으로 이푸가오 지역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내가 받은 감동만큼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해야겠다고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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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환 씨는 자신의 생각을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국제 NGO인 시트모(SITMo, Save the Ifugao Rice Terrace Movement,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의 운영위원장인 ''말론'' 씨를 비롯해, 이푸가오의 바타드 마을 토박이이자 산장 주인인 사이먼 씨, 탐아완 예술인 마을의 ''치트'' 씨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하고, 세부적인 공정여행 프로그램도 함께 짰다.

"노인들 밖에 없는 논에서 모내기를 함께 하고 여행객들이 찾지 않는 버려진 계단식 논에 가서 보수작업을 하겠다고 설득했어요. 이푸가오 젊은이들도 한 물 갔다고 무시하는 뭄바키와 전통축제도 함께 벌이자고 제안했죠. 영어가 서투니 말이 잘 통할리가 없었죠. 하지만 반 년가량 들락거리면서 손짓발짓 다해가며 진심으로 이야기를 했고 마침내 공정여행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공감만세는 올 들어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필리핀 공정여행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모두 61명이 학생과 직장인들이 참가해 소중한 경험을 나눴다. 이들은 다국적 자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자는 돈을 아끼고,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리기 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또 짧은 기간 외국에 나와서까지 한국음식을 먹느라 비싼 돈을 치르는 대신 현지음식을 체험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낀 돈으로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 6명에게 견문을 넓히고 꿈을 가지라는 뜻에서 여행의 기회를 줬다.

"공정여행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즐거운 불편''이에요. 기존의 관광보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그 속에는 현지인과의 관계가 있고, 공정함이 있고, 배움이 있어요. 그리고 고민이 있죠. 우리의 여행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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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감만세에는 상근자 2명이 합류했다. 임일상(28·목원대 졸) 씨와 조수희(23·한밭대 4년) 씨가 각각 회계·운영과 홍보·코디네이터를 맡게 된 것이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조수희 씨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해왔는데, 회사에 들어가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뭔가 새롭고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일상 씨도 "새로운 여행문화를 통해 우리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싶었다"면서 "그동안 경영적인 측면에서 비록 시행착오는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세운 공정여행에 대한 원칙들은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고두환 씨는 종종 "공정여행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모든 사람들이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를 외칠 때, 결론은 없지만 그 안에서 고민을 이어가며 설렘 가득한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단다.

"너무 애매하지 않느냐"는 반론에는 "확실하다면 굳이 우리가 시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답을 한단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잡아야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서 잘 살 수 있다''는 프레임이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도 ''토익성적표''나 ''자격증'', ''공무원시험'', ''편입'', ''유학'' 등에 그렇게 필사적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에게 ''연애''를 제외하고 진정 가슴 설레는 일이 몇 개나 될까? 공감만세는 자유롭게 고민하고, 즐겁게 상상하며, 길 위에서 배우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지금 모색하고 있다.

그들은 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으며 가슴 설레는 꿈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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