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CBS는 폭발적인 AI 기술 발전으로 점차 해체되어 가는 인간의 노동 문제를 진단하고 기독교적 대안을 모색해보고 있습니다.
'AI 시대, 교회에 묻다' 두 번째 기획보도, '노동의 증발(蒸發)'.
오늘은 일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관계 단절과 외로움의 문제를 살피며 교회 공동체가 붙들어야 할 코이노니아의 가치를 짚어봅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AI와 로봇이 대부분의 생산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이 되면, 사라지는 건 '일자리'만이 아닙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며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망이 형성되는 '일터'가 사라지면, 사람을 지탱해 주던 일상의 관계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노동이 증발하는 만큼 관계와 돌봄, 연대의 기반도 약해지는 상황에서 이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가 AI 시대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엔 대화형 챗봇이 급속도로 확산했습니다. 실제로 AI와의 대화를 통해 위로를 경험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AI 의존이 길어질수록 사회성은 떨어지고, 외로움과 고립감이 심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려는 상업적 설계, 과도한 개인화와 아부성 응답은 잠시 위로를 주는 듯하지만 결국 더 깊은 중독과 고립의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김경래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AI 챗봇에게 아무리 위로를 받아도, 중독성에 빠진다 할지라도, 또 한편으로 공허하고 외로운 것은 AI는 사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존재, 내가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서 아무리 공감하는 척 말을 해봤자 실제로는 고통을 못 느끼기 때문에 그건 진정한 공감이 아닌 거죠."
연합뉴스목회자와 AI 전문가들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외로움을 덜어 줄 수는 있어도, 몸을 마주하고 얼굴을 보는 '코이노니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노동의 증발로 파편화된 개인을 다시 돌봄의 관계망 안으로 묶어내는 일은, 성육신적 사랑을 실천하는 목회자와 성도의 '현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현실의 많은 교회에서의 코이노니아는 AI가 줄 수 있는 정도의 얕은 위로나 정보 교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반성도 나오고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과 인간 소외가 거론되는 시대일수록, 교회는 이웃의 눈물과 아픔, 외로움을 함께 짊어지는 '함께 울고 웃는 존재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임영섭 목사 / 경동교회]
"교인들 개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 예를 들면 교회가 대형화되다 보면 교회 목회도 상당히 계량화 되는 그런 측면이 있고, 그래서 원래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의 친교와 사랑의 나눔에 우리가 조금 더 큰 관심을 가지면서…"
[김흡영 교수 / 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
"교회에서는 삼위일체론의 페리코레시스, '상호 내주'의 개념을 잘 교육을 시켜야 돼요. 하나님 자체가 서로 교류하고 교제(하는 분이신데), 그걸 본받는 것이 바로 신론이고 신앙인데, 그것이 설교되고 상담되고 지도돼야 한다…"'마을 교회'와 같은 지역 기반의 소규모 실존 공동체를 세워, 서로의 삶을 가까이에서 나누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옵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교회 이웃'이 실제 가족처럼 기능하는 교회상에 대한 논의와 실험이 더욱 필요하단 지적입니다.
[김경래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 체험, 그것이 특히 영적 체험일 때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요. (성찬) 현장에서 하나의 빵이 쪼개지고 그것을 나눠 먹는다는 개념은 우리가 사실 다 같이 한 몸이다, 예수님의 몸이다, 교회의 몸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거잖아요. 지역적으로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정말 한 몸 된 교제를 나누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목회자와 AI 전문가들은 "사랑과 섬김, 서로의 취약성을 함께 감당하는 영성을 공동체 차원에서 구현해 가는 방향으로, '노동 이후 시대'의 교회 패러다임을 전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영상기자 이정우 정용현] [영상편집 김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