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정부가 6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동결하며 두 달 넘게 같은 상한선을 유지했다. 최근 중동 전쟁이 고착화하며 변수가 적다는 판단에서다. 최고가격 적용 주기도 기존 2주에서 4주로 두 배 늘렸다.
국제유가가 높은 상태에서 유지되는 '고유가 뉴노멀'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에 대비해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3차 이후 네 번째 가격 동결…"국제유가와 물가 상황 고려"
산업통상부는 22일 0시부터 적용되는 6차 석유 최고가격을 동결했다고 전날 밝혔다. 이에 6차 최고가격은 리터당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이다.
최고가격은 지난 3차부터 네 차례 연속 동결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란 종전 협상과 미-중 정상회담에서 뚜렷한 진전이 나오지 않았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내외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5차 최고가격 지정 이후 중동 정세에 따른 국제 유가 변화도 크지 않다는 게 산업부 판단이다.
정부는 인상 요인도 적다고 봤다. 최고가격제 시행이 기름값을 제어하면서 물가 상승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9.37로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는데, 최고가격제 조치가 없었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까지 올랐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산업부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국제 유가가 누적으로 상승한 요인이 계속 남아있다"며 "국제유가도 100달러 이상에서 횡보하고 있어 물가 상황과 국제유가 등을 고려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재정부담은 커지게 됐다. 정부가 국제유가와 국내 최고가격의 차이만큼 정유사 손실을 보전해 주는 구조기 때문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4조 2천억 원 규모의 목적예비비를 편성했는데, 제도 시행 3개월 뒤면 손실 규모가 예산 범위를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양 실장은 "정유 업계에서는 주당 5천억원의 손실이 쌓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이는 3월 말부터 4월 초 때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손실 금액) 범위가 많이 줄었고, 감당 가능한 범위 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조정 주기 4주로 늘리기로…고유가 뉴노멀 장기화 대비하나
이와 함께 정부는 이번 6차 최고가격 지정 이후부터, 기존 2주 단위 조정 주기를 4주 단위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앞서 정부는 시장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2주 단위로 최고가격을 조정해 왔다. 그러나 중동전쟁이 교착 상태에 머물면서, 국제유가가 전쟁 초기와 비교할 때 적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고 산업부는 판단했다.
국내 주유소 가격은 휘발유와 경유 모두 리터당 2천원 초반대를 형성하고 있다. 주유소 사업자들의 재고관리, 일반 국민들의 생활, 생계형 운전자들의 경제활동 등에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조정주기를 늘렸다고 산업부는 밝혔다.
연합뉴스
다만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 등 중동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 조정 주기와 무관하게 탄력적으로 최고가격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는 최근 국제유가가 100달러 이상에서 횡보하는 상황에서,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한 숨고르기 차원의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일각에서는 이같은 고유가 뉴노멀 상태가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동 전쟁 여파로 향후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 사태가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고유가와 경기 둔화, 수요 절감 조치 등이 맞물리며 연료 소비 감소 현상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도 최고가격제 폐지 시점을 언급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자유로워지고, 국제유가가 100달러 아래로 내려와야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양 실장은 "호르무즈 해협이 안정을 찾아야 하지만 지금은 예단하기 곤란한 상황"이라며 "유가도 100 달러 이상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최고가격제는 (당분간) 유지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