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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삼성전자 노사, 생태계를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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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은 6월만 있지 않았다.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6월 항쟁' 직후 '789 노대투(노동자 대투쟁)'가 이어졌다. 그해 7월~9월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임금 및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1986년 2천 여 개에 불과했던 노조 숫자는 87년에는 4천여 개로, 그 이듬해에는 7천여 개로 폭증했다. 6월 항쟁이 노동자 대투쟁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경제적 배경을 따지면 '3저 호황'이 있었다.
 
3저 호황은 1986년~1988년 유가와 금리, 환율이 동시에 낮아져 한국 경제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린 것을 말한다. 당시 배럴 당 30달러 대였던 유가는 10달러 대로 떨어졌고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가 3년 사이 두 배로 절상되자 원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여기에 국제 금리도 낮게 유지됐다. 이 시기 한국 경제는 급성장했다. 매년 적자이던 경상수지가 1987년 건국 이래 처음으로 46억 달러 흑자로 전환됐고, 이듬해에는 98억 달러 흑자로 늘었다.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2%였던 반면 물가는 2~3%로 안정됐다. 실업률도 2%대로 떨어져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같은 '잉여'는 '분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낳는다. 수출이 늘고 영업이익이 폭증하자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우리 몫을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쟁의 행위가 이어졌다. 상당수 기업이 그동안 불온시해 오던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고 노동자들과 교섭에 나서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3저 호황과 789 노대투는 직장 내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중산층도 두껍게 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협상이 다시 결렬됐다. 지난 11일과 12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사후 중재에도 양측이 합의를 보지 못했다. 노조는 올해 영업이익의 15%를 반도체 부문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연봉의 50%로 제한된 성과급 상한도 완전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영업이익의 10% 정도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되 상한 폐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협상 결렬로 오는 20일로 예고된 노조의 파업은 그 가능성이 한층 더 커졌다.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도 불사하고 성과급을 요구하는 이유는 막대한 '잉여' 때문이다.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무려 250조 원~300조 원으로 예상된다. 노조 요구대로 15%를 계산하면 37조 5천억 원에서 45조 원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것이다. 노조원 한 사람당 5~6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노동자와 노조가 회사 이익의 일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회사도 이에 적극 응해야 한다.
 
하지만 몫의 크기가 항상 문제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1억 5천만 원을 넘어섰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고액 연봉자들인 셈이다. 이런 이들이 중소기업 노동자 평균 연봉의 10년 치와 맞먹는 돈을 일시 성과급으로 요구하니 비판적 여론이 더 강한 듯하다. 기계적 형평이나 배 아파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수준은 '생존권' 투쟁을 하던 789 노동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789 노대투는 중산층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지만 이번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는 '부의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삼성전자 과반노조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삼성전자 과반노조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
탐욕은 늘 자신의 몫만 챙긴다. 다른 사람이 덜 가져갈수록 자신이 더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욕에는 '연대'가 없다. 삼성전자 노조는 다른 사업 부문에 대한 배려가 희박하다. 그래서 반도체 이외 부문 노조원들의 탈퇴가 이어지고 2대 노조나 3대 노조도 반발하고 있다. 사내 하청 노동자에 대해서는 배려가 아예 없다.
 
삼성전자 노조 최승호 위원장은 지난달 CBS 방송에 출연해 '임금을 올려야 이공계 우수 인재들이 의대 대신 반도체 분야로 몰려들 것'이라며 자신들의 성과급 요구와 파업이 반도체 산업 활성화 차원이라고도 주장했다. 과도한 탐욕 추구라는 부정 여론에 맞서 '대의명분'을 내세운 것인데,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의 호황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만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많은 협력업체가 반도체 불황기에도 생산 능력을 유지하고 연구개발에 힘썼던 헌신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적극 지원도 막대한 영업이익에 기여했다. 이른바 'K칩스법'이니 '반도체특별법'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 세금을 크게 깎아주었고 앞으로는 더 많이 감면해 준다. 삼성전자에는 전기도 우선 공급하고 있고 부족하면 근처에 발전소도 지어줄 방침이다. 용수도 싸게 주고 있다. 다 국민 세금이요 국민 부담이다. 공장 신설이나 확장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신속하게 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한 기업의 임금이 올라서 사람이 몰리면 해당 분야가 덩달아 발전하리라는 생각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산업의 생태계가 활성화돼야 비로소 산업 전체가 발전한다. 메모리 분야 반도체만 해도 8단계의 생산 공정을 거친다. 삼성전자에는 1차 협력업체만 1천 곳이 넘고 2, 3차 협력업체도 7백 곳에 육박한다. 이들 협력업체에게 삼성전자 노조의 억대 성과급 잔치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원청의 비용 상승이 하청업체에게는 납품가 인하 요구로 돌아오는 게 한국의 전반적 산업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청업체의 인력 감축이나 연구개발 여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임금을 올려주면 우수 인재가 '일시적'으로 몰릴 수는 있다. 하지만 산업 생태계가 뒷받침되지 않는 인재 유치는 고액 연봉만 추구하는 '메뚜기'를 양산할 수 있다. 장기적인 연구개발이나 혁신은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의 사다리도 끊어진다.
 
삼성전자도 막대한 영업이익을 쥐고만 있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익을 사내 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재원으로 써왔다는 의혹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역대급 실적에 걸맞게 직원들과 주주들에게 과감히 분배하려는 모습이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삼성전자 노사는 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노력해야 한다. 반도체 생태계 발전에 기여한 자사 직원은 물론 협력업체와 그 직원들, 지역 사회 등에 기여해야 한다. 또한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에도 여전히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 분야와도 적극 상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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