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서울시장 선거의 공수가 뒤바뀐 모습이다.
도전자인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는 쟁점 확산을 경계하는 '관리형' 행보를 보이는 반면, 현역인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양자토론 요구와 부동산 문제, 정 후보 관련 의혹까지 꺼내 들며 판을 흔들고 있다.
통상적인 선거 문법대로라면 현직 시장인 오 후보가 그간의 시정에 대한 평가를 방어하고 도전자인 정 후보가 그 허점을 파고들어야 하지만, 구도 자체가 '현직 대 도전자'보다 '추격자 대 선두주자'에 가까워 지고 있다.
정원오, 도전자임에도 여론조사 선두에 '관리형' 모드
정 후보는 11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서 오 후보의 '양자토론 회피' 공격에 대해 "오 시장이 불과 한 달 전에 윤희숙 후보나 이런 분들이 토론하자고 할 때 뭐라고 얘기했는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고 응수했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선 오 후보가 일정 문제 등을 내세우며 양자 토론에 회피했던 점을 꼬집은 것이다. 당시는 오 후보가 당내 선두 주자였다. 정 후보는 이를 언급하며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면 신뢰를 잃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정 후보는 오 후보의 양자토론 제안엔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정책 검증'이 아닌 '정쟁의 장'이 될 수 있단 이유다. 그는 "지방 정부는 민생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서울시도, 서울시장도 늘 시민의 삶을 중심에 둬야지 정쟁에 몰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정 후보가 이같은 '관리형 선거'를 택한 배경에는 중앙 정치 등판 이후 줄곧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안팎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점이 꼽힌다. 토론과 난타전은 추격자에게는 반전의 기회지만, 선두주자에겐 실언 등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정 후보의 딜레마가 나타난다. 인지도 측면에서 다소 열세인 데다가, 도전자인 입장에서 좀 더 존재감을 보여야 하지만 높은 지지율에 공세적으로 나서기 어려워진 셈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선두 후보로서 안정적인 선거운동은 합리적 선택으로 보이지만, 자칫 회피로 비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세훈, 양자토론 압박·네거티브 공세 '도전자' 모드
황진환 기자오 후보는 정 후보의 이같은 딜레마적 상황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모양새다. 프레임을 '현직 대 도전자'에서 '추격자 대 선두주자'로 전환하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내고 있다.
이날 오 후보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 직후 백브리핑에서도 정 후보에게 양자토론을 거듭 요구했다. 그는 "다자 토론은 이미 한 두 차례 예정돼 있다. 그래서 양자 토론을 제안한다"며 "그래야 둘의 생각이나 장단점이 잘 드러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정 후보가) 이를 자꾸 싸움이라고 개념 정리를 하면서 '나는 싸움하지 않는다' 이렇게 피하는데, 서울 시민들 입장에선 실망스러운 모습"이라며 "다시 한 번 간곡하게 요청드린다. 언제 어떤 형식으로든 양자 토론에 응해주면 어디라도 달려가겠다"고 압박했다.
또 정 후보의 이른바 '외유성 출장 의혹'이나 '아기씨당 의혹' 등도 재차 거론했다. 오 후보는 토론회에서 이같은 의혹 등을 언급하면서 "서울시 공무원이었다면 파면감"이라며 "도덕성 문제가 있다"고 날을 세웠다.
오 후보는 본인을 "미래 트렌드를 읽는 개척자적 비전 설정형 리더십"으로 정의한 반면, 정 후보에 대해선 "민원에 잘 반응하는 민원 응대형 리더십"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수성해야 할 입장이지만 오히려 도전자처럼 공세를 펴는 모양새다.
뒤바뀐 공수에 후보 모두 '딜레마'
오 후보 또한 공세를 높일수록 딜레마적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공격할수록 "그동안 시장이 누구였나"란 질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민심의 행방을 가르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선 현직으로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 후보가 최근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닥치고 공급'을 강조하며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방안을 내놓자 정 후보는 "지난 5년 동안 서울시장은 오 후보 아니었나"라고 되받았다. 정 후보는 "책임져야 될 분이 집권한 지 1년 밖에 안 된 정부에 오히려 책임을 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자토론 요구나 네거티브가 이어질수록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인지도에서 앞서는 오 후보가 강하게 밀어붙일수록 '열세를 자인하는 것 아니냐'란 인상만 짙어진다. 뒤처진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서다.
한 중진 야당 의원은 "오 후보가 인지도 면에서 훨씬 앞서는데도 여론조사만 보고 초조해하는 것 같다"며 "현직 시장으로서 이뤄낸 성과를 제대로 설명하는 방향으로 캠페인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