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산불로 무너져 내린 농협 농산물 공동선별장과 한옥 학교 건물(좌) 터에 임시주택 40여 채(우)가 들어섰다. 정진원 기자"많이 힘들죠. 좁아서 힘들고 모든 게 다 불편하지" 지난 16일 찾은 경북 안동시 임하면 신덕1리 마을은 곳곳에서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화재로 타 버린 집터에는 새집이 될 철근 골조가 자리 잡았다. 이미 완공돼 주민들이 마당이나 가구들을 정리하는 집들도 보였다.
1년 전 불에 녹아 휘어져 버린 철근이나 무너져 내린 벽돌들은 깨끗이 정리돼 있었지만, 여전히 까맣게 그을린 채 남아 있는 마을 뒷산에서 괴물 산불이 지나간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여름엔 덥고 힘들어"…8평 감옥
16일 찾은 경북 안동시 임하면 신덕1리의 임시주택에 거주 중인 김갑수(75) 씨가 지난해 산불로 잃어버린 집을 회상하며 눈물을 보였다. 정진원 기자
마을 한편, 화재로 쓰러진 옛 농협 농산물 공동선별장과 한옥 학교 터에는 8평 남짓한 임시주택 40여 채가 들어섰다.
이곳에서 1년 가까이 생활 중인 김갑수(75) 씨는 "거리가 멀어서 근처에 있는 교회를 다니기도 힘들고 여름에는 더워서 창문도 못 연다"고 하소연했다.
50년 넘게 살던 집을 산불로 한순간에 잃어버린 김 씨는 "700평 땅에 50평 집과 창고,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도 다 타고 억울하기를 말도 못 한다"라고 토로했다.
김 씨는 30평 정도 되는 새집을 짓는 중이지만 마음을 붙이지 못해 기쁘지 않다고 말한다.
김 씨는 "내 집이라고 마음이 안 드니까 기쁘지 않다. 불이 난 집에 있던 물건들이 자꾸 생각나고 사위가 생일이라고 사준 가전제품도 하나도 없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가을 임시주택에 입주한 남명구(90) 씨 역시 새집을 지으려고 하지만 보조금만으로는 부족해 아직까지 결정을 못하고 있다.
남 씨는 "(새집을) 지으려면 돈이 모자라다. 90 노인이 사니까 사람들이 조그마하게 지으라고 자식들한테 신신당부하더라"라고 전했다.
"자식들 와도 잘 곳 없어"…울퉁불퉁 솟은 방바닥
16일 경북 의성군 구계2리 임시주택에서 거주하는 권화순(89) 씨가 울퉁불퉁하게 솟은 방바닥을 가리키고 있다. 정진원 기자같은 날 방문한 의성군 구계2리의 상황도 비슷했다. 25채의 임시주택이 줄지어 선 이곳에서 생활하는 권화순(89) 씨 역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호소했다.
권 씨는 "불편한 건 많지만 다 말로 못 한다.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오고 바닥도 많이 운다"며 울퉁불퉁 솟은 방바닥을 가리켰다.
권 씨는 지난 설 명절에 찾아온 자녀들을 임시주택에 재울 수 없어 인근 경로당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주거 복구비를 지원받았지만, 20평 남짓한 집 한 채를 올리려 해도 당장 수천만 원의 자부담이 발생해 설계 작업에도 착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처럼 새집 마련에는 고령의 이재민들이 넘기 힘든 문턱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의 마음의 상처 역시 아물지 않고 있다.
권 씨는 "잘 때도 그날 생각이 나 잠을 못 잔다. (산불 소식이) 뉴스에 나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도내 임시주택에 거주 중인 이재민은 2236세대 3823명에 달한다. 전체 가구 중 원래의 삶터로 복귀한 가구는 295(약 11%)에 불과하다. 산불은 1년 전 꺼졌지만, 이재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회복이 더디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