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기념관으로 변모하게 될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
1987년 1월 14일 오전 11시 서울대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실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졌습니다. 다음날 경찰은 "''탁''하고 책상을 쳤더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의 은폐 공작은 오래가지 못했고 이 사건은 신군부에 대한 전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키며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탁하니 억'', 6월 항쟁의 도화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도 민청련 의장을 맡았던 85년에 남영동 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10여 차례가 넘게 하루 대여섯 시간씩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살인적인 고문 치욕을 당했다.
최근 21년 만에 위장간첩 혐의를 벗은 함주명씨도 이곳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한 끝에 허위 자백을 해야 했다.
끌려가기만 하면 고문으로 초죽음이 되는 곳. 이처럼 80년대 민주화 인사들과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은 남영동 분실에서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고, 남영동은 반(反)인권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부패한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공포 정치에 앞장섰던 이 남영동 대공 분실이 30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다름아닌 ''인권 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경찰청은 "창설 60주년을 맞아 인권 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 인권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희생된 선인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과 인권사 전시관, 인권 체험 공간 등 인권 교육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또 인권신고센터와 상담센터 등을 입주시키고 시민들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인권 상징시설로 추진할 계획이다.
반인권의 대명사가 인권기념관으로 1976년 남영동 분실은 원래 대간첩 수사를 위해 건립됐다. 7층 짜리 본관 건물에는 박종철씨가 고문으로 숨진 509호실을 비롯해 모두 17개의 조사실이 존재했으며, 말 그대로 전부 ''고문 공장''이었다.
지금도 경찰청 보안과의 조사실로 사용되고 있지만 509호실은 ''오욕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차원에서 당시 고문에 사용됐던 욕조와 변기, 탁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고(故) 박종철 군의 부친 박정기씨는 "정권이 몇 번 바뀌고 나서야 이런 조치가 이뤄져 아쉽지만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곳이 인권기념관으로 바뀌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감격에 겨워 했다.
''고문의 상징''에서 ''인권의 메카''로 거듭날 남영동 대공분실은 ''역사는 결국 진실과 정의의 편''이라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기자의 창/CBS사회부 도성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