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기획사 '천세기획'의 작곡가들. 오른쪽부터 마경식, 천세민, 기세인, 윤현성과 엔지니어 김영일. (한대욱기자/노컷뉴스)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작곡가들이 모여 만든 음반기획사 ''천세기획(대표 천세민)''이 궁금해 문을 두드리자, 점잖아 보이던 4명의 작곡가는 기다렸다는 듯 현 가요계의 문제와 진단, 대안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지금의 가요계에서 음악을 이어가는 어려움은 ''해본 사람''만 안다. ''천세기획''은 천세민, 마경식, 윤현성, 기세인 등 ''해본 사람'' 8명이 "제대로 해보자"고 의기투합해 지난 2002년 만들어졌다.
각각 이효리, 싸이, 박효신, 김경호, 박화요비 등 내로라하는 인기 가수들과 작업한 실력파이지만 ''한 솥밥''을 목표로 자급자족의 기치를 올린지 3년이 됐다.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천세기획'' 녹음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빗댄 난상토론에는 천세민 대표와 마경식, 윤현성, 기세인 총 4명의 작곡가가 함께했다. 이들이 쏟아낸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 공동체적 작업 방식
이들의 작업 방식은 "자유롭다"는 말로는 다 못할 특별함을 지녔다.
"회의 따윈 안 한다"고 잘라 말하는 윤현성은 "우리의 작업은 나와 다른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에 또 다른 생각을 보태는 식"이라고 했다. 예를 들자면 마경식이 멜로디를 작업을 마친 곡에 윤현성이 리듬을 보태고 옆에 있던 기세인은 코러스를 넣는 식이다.
하지만 작곡가도 염연히 창작가. 아이디어 공유는 서로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기세인 역시 "작곡가들은 정보 공유 꺼려한다"고 했지만 하지만 "우리 안에서는 자유롭다"고 했다.
이렇다보니 회사의 수익 분배도 하나하나 따져 묻기보다 ''형제애''가 우선이다.
▷ 이들의 첫 합작품 남성듀오 ''바람''이들의 녹음실에는 최근 하유선, 춘자, 슈가, 채리나가 거쳐 갔다. 각자가 인기 가수들의 작업에 한창이지만, 이들이 모두 뭉쳐 완성한 합작품은 바로 남성 듀오 ''바람''이다. 기획부터 제작, 홍보까지 전담하는 게 목표인 이들이 만든 첫 번째 작품인 셈.
지난해 데뷔앨범을 발표한 ''바람''은 지금까지 오른 대학축제 무대만 70곳이 넘는다. 이유는 하나다. 라이브 무대에 올라야만 ''감''을 알 수 있다는 것.
''바람''의 매니저까지 맡고 있는 천세민 대표가 유독 대학공연을 고집한 이유는 좋은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욕심도 있지만, 입소문을 통한 인기가 진짜 인기라는 생각에서다.
▷ 가요계 불황, 그 ''늪''에 대해 윤현성은 가요계 불황에 두고 "체감 수요가 3분의 1로 줄었다"고 냉정히 평했다. CD에 담긴 10여곡 중 벨소리, 통화연결음 등을 통해 고작 한 두곡만 주목받고 있는 게 현실이란다.
마경식은 한 술 더 뜬다. "열심히하면 인정받았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면서 "배신감마져 든다"고 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간 가수든 작곡가든 전문 인력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디지털 음원시장의 전망 지금의 음반시장이 디지털 음원시장으로 가는 과도기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불법음원 유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이들이 입을 모은 문제는 온라인과 모바일 음원시장에서의 카운팅 시스템의 부재. 음원 대리업체가 난립하고 있지만 투명성 확보한 곳을 찾기 힘들다고 꼬집는다.
특히 윤현성의 날카로운 지적은 흘려듣기 힘들다. "대중음악의 기술적 발전에 비해 듣는 통로는 차츰 단순해진다"는 것. 즉 "mp3와 컴퓨터 스피커가 음악전달 수단이기 때문에 믹싱도 mp3버전에 맞춰야 할 지경까지 왔다"는 설명이다.
이는 곧 대중음악 시장의 전체적 하향평준화를 의미한다.
▷''천세기획''의 목표때문에 천 대표는 "우리 같은 모임이 브랜드가 되는 것, 모타운이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작곡가가 가수를 직접 기획, 제작하는 것은 물론 홍보까지 맡는 종합 매니지먼트사를 의미한다.
"우리가 만들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왔다"는 이들의 말이 곧 현장의 목소리임을 감안할 때 불황타파가 멀고도 험해도, 어디에선가 미리 준비하는 손길 역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이해리기자 dlgofl@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