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검색
  • 댓글 0

실시간 랭킹 뉴스

가습기살균제 '소멸시효 중단' 조항 삭제…10년 전 피해자 영향은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특별법 개정안 국회 논의서 '단기소멸시효 중단' 조항 빠져

2024년 6월 대법원 '국가 책임 인정' 이후 특별법 전부 개정 추진
국회 기후환노위·법사위 논의 과정서 '부칙 6조 2항' 삭제
구제급여 청구 피해자,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권 제한 가능성
민변 "사건 조기 종결 취지일 수 있으나 피해자엔 불리"

지난해 8월 국회 의원회관 1세미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 간담회' 에 참석한 가습기살균제 중등도 피해자 민수연 씨가 산소호흡기 사용을 위한 의료용산소통을 옆에 두고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해 8월 국회 의원회관 1세미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 간담회' 에 참석한 가습기살균제 중등도 피해자 민수연 씨가 산소호흡기 사용을 위한 의료용산소통을 옆에 두고 있다. 황진환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민사 소송 권리와 관련된 특별법 개정안의 '단기 소멸시효 중단' 조항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조항이 빠지면서 일부 피해자와 유족의 경우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국회에 계류 중인 가습기살균제특별법 전부개정안을 보면, 법안 원안에 포함됐던 부칙 제6조 2항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된 채 본회의에 부의됐다.

해당 조항은 "이 법 시행 당시 구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따라 구제급여를 받은 유족 및 피해자의 경우, 과거 구제급여 청구가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중단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규정은 지난해 12월 24일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전부개정안 원안에는 포함돼 있었지만, 이후 국회 기후환경노동위원회 심사와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삭제됐다.

법무부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해당 조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예컨대 2016년 1월 2일 구제급여를 청구해 피해구제급여를 받고 있던 자의 단기 소멸시효는 2026년 1월 1일 완성돼 민법상 배상 청구가 불가능하다"며 "부칙 6조 2항을 두면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도 과거 시점으로 소멸시효가 중단된 것으로 간주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의 2025년 12월 24일 최초 제출 당시 원안. 국회 논의를 거치며 2항이 삭제된 채 수정된 대안이 본회의에 부의돼 의결을 앞두고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의 2025년 12월 24일 최초 제출 당시 원안. 국회 논의를 거치며 2항이 삭제된 채 수정된 대안이 본회의에 부의돼 의결을 앞두고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이번 전부개정안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인정하고 기존 피해구제 체계를 국가배상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가 지금까지 지급해 온 '구제급여'는 '손해배상금' 성격으로 전환된다. 정부와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및 원료물질 사업자가 함께 조성한 재원으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피해자가 이에 동의하면 재판상 화해로 간주된다.

다만 피해자나 유족이 배상심의위원회가 정한 금액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에도 소송 청구권 소멸시효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10년이 적용된다.

문제는 과거 특별법에 따라 이미 구제급여를 받은 피해자와 유족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 구제급여 수급자는 법 시행 이후 전환되는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것으로 간주되며, 6개월 안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손해배상금을 수령하면 재판상 화해로 간주돼 추가 소송은 사실상 제한된다.

반대로 손해배상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지급을 거부하고 소송을 선택할 경우에는 기존 민사상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일부 피해자의 경우 법 시행 시점과 맞물려 소송 제기 가능 기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는 배상심의 신청을 철회할 경우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보장된다는 입장이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법조계에서는 이번 부칙 삭제가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불법행위 피해자는 재판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과 합의나 제도적 보상 등을 통해 받을 수 있는 '다른 구제책' 사이에서 실익을 비교해 선택하게 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 역시 마찬가지다. 재판으로 받을 수 있는 배상금과 정부 및 가해기업이 지급하는 금액을 비교해 판단하게 되는데, 이번 특별법 개정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우선 재판을 청구할 경우 피고로 가해기업뿐 아니라 국가를 명확히 포함할 수 있게 됐다. 또 정부가 지급하는 돈의 성격도 기존의 '구제급여'에서 '손해배상금'으로 바뀌면서 일종의 합의에 가까운 성격을 띠게 됐다.

대법원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국가 책임 인정 판결을 이끌어낸 남성욱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장)는 "정부 입장에서는 특별법을 통해 사건을 일정 시점에서 마무리하려는 정책적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가 배상안을 마련해 배상 절차를 통해 사건을 빠르게 정리하려는 취지에서 부칙이 삭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부가 과거 구제급여 지급 대상으로 인정해 준 '피해'와 민사상 인정되는 '손해'는 개념이 다르다"며 "정부가 인정한 피해가 민사상 손해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민사상 인정되는 손해의 범위가 더 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칙 6조 2항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권리 구제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며 "해당 조항 삭제는 장기소멸시효의 예외를 둔 특별법 취지를 몰각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기간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단기소멸시효는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계산되며, 민법 제766조는 이를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이를 10년까지 인정하고 있다.

장기소멸시효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부터 계산된다. 민법은 10년을 인정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은 처음 제정 당시 20년으로 규정했고 이후 개정을 거쳐 30년으로 늘렸다. 이번 전부개정안에서는 장기소멸시효 자체를 폐지했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고 피해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치다.

정병욱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피해자가 많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피해 배상과 관련한 법적 해석도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소멸시효 범위를 쉽게 좁히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구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과거 '구제급여' 청구 역시 민사상 재판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이 지난달 25일 서울시 중구 소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소통 공간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간담회에서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이 지난달 25일 서울시 중구 소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소통 공간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간담회에서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애초 유족 및 피해자분들은 장·단기 소멸시효 모두를 적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부칙 6조 2항을 뒀지만, 우리 법체계가 받아들이지 않는 소급 입법 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로 다른 부처에서도 반대했고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지적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배상심의위원회 심의 결과에 동의하지 않으면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고, 이후에도 만족하지 않아 민법상 손해배상 소송으로 가려면 배상심의신청을 철회하고 그로부터 10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보장받게 된다"며 "그래서 이 경우 적용되는 소멸시효는 일정 기간 정지되는 '중지'가 아니라,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는 '중단' 방식"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안이 시행돼도 유족 및 피해자의 경우 배상금 지급 신청을 할 때까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분들은 어떻게든 구제받을 길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법 개정 취지에 대해선 "가능하면 (유족 및 피해자들이) 배상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통해 보상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라며 "피해자분들에겐 소송이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피해구제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한 8039명 가운데 5971명이 피해자(구제급여 지급 대상)로 인정됐다. 

이 가운데 이번 부칙 삭제로 권리 구제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상은 이번 개정안의 3월 통과 및 9월 시행을 전제로 10년 전 구제를 신청해 피해자로 인정된 경우로, 기후부는 해당 인원을 258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227명(사망자 102명)은 가해 기업으로부터 별도의 보상금을 받고 개별 합의를 진행한 상태다. 남은 인원은 31명으로, 이 가운데 15명은 사망했고 16명은 생존해 있는 것으로 기후부는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7년 제품이 출시돼 판매되다가 원인 미상의 폐손상 환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가 조사에 착수한 것은 2008년, 제품과 질병의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2011년이었다.

국가 책임 역시 2024년 6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야 인정됐다. 사건 발생부터 책임 인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탓에 피해자와 유족 사이에서는 국가배상 절차에 대한 불신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유족들은 "정부가 전향적인 배상을 약속하고 있지만 실제 제도 설계 과정에서 피해자 권리가 충분히 보장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