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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없는 고향 생각에 사무쳐"…탈북민 100명의 이른 설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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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다른 탈북민 180명 '한가족' 된 사연
탈북민 취약계층 돕는 탈북난민인권협회
"명절이 되면 두고 온 가족 더욱 그리워"
설 연휴 전 모여 북한 명절 음식 나눠

12일 서울 강동구 길동의 탈북난민인권협회 사무실에서 탈북민 회원 100여 명이 모여 북한 음식을 함께 먹고 있다. 이원석 기자12일 서울 강동구 길동의 탈북난민인권협회 사무실에서 탈북민 회원 100여 명이 모여 북한 음식을 함께 먹고 있다. 이원석 기자
"명절은 없었으면 하는 날이에요. 고향에 가족을 두고 와서 찾을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탈북난민인권협회(인권협회) 김용화(73) 회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설 명절을 앞둔 지난 12일 새벽 6시 서울 강동구 길동에 위치한 인권협회를 찾았다. 삼삼오오 모인 탈북민 자원봉사자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100인분이 넘는 명절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직 어둑어둑했던 밖과 달리 사무실 안은 빛과 온기로 가득했다.

송편을 빚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이원석 기자송편을 빚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이원석 기자
한쪽 테이블에선 봉사자들이 만두 형태의 북한식 송편을 빚었다. 누군가 "북한에선 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던데 여기엔 그럴 사람 한 명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하자 일동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주방장 역할을 맡아 분주히 움직이던 박모(78)씨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주저도 없이 "힘들 이유가 어딨나. 다들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면 보람차고 기쁘기만 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2005년 설립된 인권협회는 남한 정착과 생활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을 돕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단체다. 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 위주로 회원을 180명 안팎 받아 지원, 관리하고 있다. 단체는 탈북민 구출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지난해만 38명을 구출했고, 20년간 6천명 넘는 탈북민을 구출해 왔다고 한다.

예배 중 합창단이 태극기를 흔들며 특송하고 있다. 이원석 기자예배 중 합창단이 태극기를 흔들며 특송하고 있다. 이원석 기자
김 회장은 1988년 탈북했지만 정식 한국 국적을 얻기까지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김 회장은 "간첩으로 오해받고 10년 넘게 떠돌이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탈북민은 일자리와 언어, 사기 피해 등 많은 곤경에 노출된다"라면서 "탈북민을 무조건 돕고 가족이 되어주려는 것이 우리 단체의 목표"라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은 전혀 없다고 한다.

회원들은 명절뿐 아니라 매달 두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고 모임을 하며 북한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이날은 특별히 설 명절을 맞아 떡만둣국과 고사리, 수육 등 이북식 명절 음식과 찹쌀, 핸드크림, 사과, 봉사자들이 직접 만든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 등 푸짐한 선물까지 준비됐다.

회원들이 북한식 명절 음식을 함께 먹고 있다. 이원석 기자이날 메뉴는 북한식 명절 음식이었다. 이원석 기자
시간이 되자 하나둘 사무실에 도착한 탈북민들은 서로 이름이나 "언니"하며 편하게 호칭을 부르며 반갑게 안부를 나눴다. 한 탈북민은 "누가 언제 감기 걸렸는지 그런 사소한 것도 서로 잘 안다"며 끈끈한 분위기를 전했다.

마냥 밝던 분위기가 북에 남겨진 가족 얘기에 다소 가라앉았다. 단체의 최고령 회원인 김모(91)씨는 군 장교로 근무하다 1974년 수 킬로미터(㎞)를 헤엄쳐 남한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명절 때만 아니라 매일 가족이 그립다. 나 때문에 천대받으며 살고 있을 가족들 생각하면 괴롭다"며 "'괜히 넘어왔다' 싶을 정도로 힘들 때 꼭 오고 싶은 곳이 여기(인권협회)"라고 말했다.

양강도 해산에서 거주하다 8년 전 탈북했다는 이모(58)씨는 북에 남겨둔 아들을 생각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나는 따뜻한 방에서 지내지만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울며 지낸다"라며 "그래도 친정집 같은 협회가 있어 지금도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 형제"라고 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라는 정모(64)씨도 "명절 때만 되면 부모, 형제, 친척, 친구가 더 그리운데 이렇게 함께 모일 수 있어서 위로가 된다"고 했다.

식사를 마친 뒤 떠나는 회원들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있다. 이원석 기자식사를 마친 뒤 떠나는 회원들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있다. 이원석 기자
어느덧 100여명의 회원이 사무실을 가득 메웠고, 이어진 예배와 모임에선 협회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구출된 이들의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각종 사기 피해 등에 노출되기 쉬운 탈북민들을 위한 경찰관의 특강도 이어졌다.

회원들은 함께 둘러앉아 고향 음식을 나누며 이른 명절을 맞이했다. 식탁마다 건강과 안부 등을 물으며 웃음꽃이 피었다. 식사가 끝나고 바퀴 달린 수레가방에 이런 저런 명절 선물을 채워 떠나는 회원들의 표정은 마치 고향을 다녀가는 듯 편안해 보였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누적 북한이탈주민수는 총 3만4천여명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는 어느 때보다 힘든 해였고, 설을 맞아 고향을 그리는 탈북민들이 많다"며 "많은 사람들이 탈북민에 대한 관심을 더 가져준다면 여러 변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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