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커뮤니티 캡처1811년 3월 11일 밤. 영국 노팅엄셔 아놀드(Arnold)에 수십명의 직조공들이 모였다. 그들은 이 마을에 있는 양말 공장들을 습격해 양말 편직기 63대를 박살냈다. 그리고는 로빈 후드의 셔우드 숲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를 기점으로 영국 산업혁명을 이끌던 직물 산업의 거점인 노팅엄셔, 요크셔, 랭커셔에서는 기계 파괴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노동자들은 방직기를 부순 현장에 네드 러드(Ned Ludd) 장군 명의의 영수증을 남겼다. 러드는 최초로 방직기를 부순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따 이 운동은 러다이트(Luddite) 운동으로 불리게 됐다.
18세기 말 방직기의 발명으로 대량 생산 체제가 도입되자 숙련된 직조공들은 설 자리를 잃어 갔다. 공장주들은 직조공을 기계와 여성·미성년자로 대체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인건비를 줄였다. 일자리를 빼앗기며 생존 위기에 내몰린 직조공들은 사태의 원흉인 기계를 부술 수 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 발생한 기계에 대한 인간의 투쟁이었다.
그로부터 200년 넘게 지난 대한민국에서 네오(Neo.新) 러다이트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그 주인공이다.
현대차그룹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연합뉴스현대차그룹은 신년 벽두 미국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춤을 추거나 쿵푸를 하는 미국·중국의 로봇과 달리 무거운 물건을 들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산업 특화형 아틀라스에 세계는 격찬을 보냈고 현대차 관련 주가는 폭등했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아틀라스 3만대 양산체제를 구축해 단계적으로 생산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자 현대차 노조는 "단 한 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결사항전을 천명했다. 노조는 "해외 물량 이전과 신기술 도입은 노사 합의 없는 일방통행"이라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아틀라스 1대당 연간 유지비는 1400만원 수준이다. 현대차 계열사 임직원 평균 인건비 1억3000만원의 약 10% 수준이다. 원조 러다이트 선배들이 느꼈던 일자리 상실의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아놀드 마을의 직조공과 현대차의 노조원은 모두 생산에 참여하는 기술직 노동자이다. 첨단 기술에 의해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점도 동일하다. 하지만 200년 전의 노동자와 현대차의 노조원이 처한 환경에는 큰 차이가 난다.
러다이트가 일어난 산업혁명기에는 공장주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가혹한 환경에서 혹사시켰다. 또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악화된 경제 상황에서 서민들의 고통은 깊어지는데 자본가들은 오히려 배를 불리는 부조리한 구조가 갈수록 강화됐다. 첨단 방직기의 출현은 당장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존과 직결된 공포였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자본가의 편이었다, 군대를 동원해 노동자를 진압하고 '기계 파괴 방지법(Frame Breaking Act)'을 제정해 사형에 처했다.
러다이트 운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노동자들에게 법과 제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여년 후 영국의 노동자들은 차티스트 운동(Chartism) 등을 통해 보통·비밀 선거 등 참정권을 얻고 노조도 합법화됐다.
현대차 노조의 '네오 러다이트'는 생존 보다는 권익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현대차 노조는 높은 임금 및 복지 수준에다 직장 세습이나 정년 연장 등의 요구로 '귀족 노조'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현대차의 아틀라스 거부가 기득권 수호로 읽혀지는 이유이다. 또 러다이트 당시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과는 달리 민주노총이라는 강력한 보호막에다 경영상 결정에도 파업을 할 수 있는 노란봉투법까지 쥐어졌다.
아놀드 마을의 기술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망치를 들고 방직기를 부쉈다. 현대차의 기술 노동자들은 무엇을 위해 아틀라스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글로벌 생존 경쟁에서 주목 받는 스타로 등장한 아틀라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피지컬 AI 시대의 패권은 어디로 가게 될까? 궁금하기보다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