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윤창원 기자"여러 가지 자료를 봤을 때 청약 과정 자체를 투명하게 검증하기는 좀 쉽지 않았습니다."청와대 관계자가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밝히며 한 말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절대 인사 실패가 아니고 제도의 한계로 인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 후보자가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낙마가 청와대 책임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서류 곳곳 '위장전입' 흔적
장관 인사 검증은 청와대만의 일은 아니다. 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와 언론의 몫이기도 하다. CBS도 기자 3명으로 검증팀을 꾸려 청와대가 국회에 제출한 266p에 달하는 인사청문요청안을 입수해 분석했다. 그러던 중 장남의 용산 아파트 '전세계약서'에서 특이 항목을 발견했다. '특약 사항' 아래에 적힌 문구다. '임대인은 임차인의 전세권 설정에 동의하고 설정비와 말소비는 임차인이 부담한다'고 돼 있었다.
이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전세권 설정등기를 쳤다는 얘기다. 셋방을 알아볼 때 전입 신고 가능 여부와 확정 일자부터 따져보던 경험상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전세권 설정 등기는 통상 전입 신고를 하지 못할 때 대항력을 갖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바꿔 말하면 전입 신고를 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남의 등기부등·초본 내역을 살펴봤다. 장남은 전세계약 이후에도 한참 동안 해당 집으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 어디에 전입 돼 있던걸까. 바로 이 후보자 부부와 함께였다. CBS 검증팀은 이들 가족 5명의 초본을 전부 펼쳐놓고 타임라인을 구성했다. 이를 정리해보니 다음과 같았다.

인사청문요청안과 함께 온 '재산 관련 부속서류'에는 이 후보자의 남편 김영세씨가 며느리에게 2024년 1월 18일 1억 7천만 원을 빌려줬다는 차용증도 존재한다. 장남 내외의 신혼집 전세금 절반을 장남이 댔을 뿐더러,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일부를 빌려줬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었다.
이렇듯, 장남이 부인과 공동 명의로 신혼집을 구했음에도 전입 신고는 하지 않고, 계속 부모 집에 전입해 있었다는 점은 청와대가 제출한 이 후보자 인사청문 서류 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었다.
'전세권 설정등기'가 발목
인사청문요청안에는 이 후보자가 세종에 전셋집을 구했다는 내용도 있다. 해당 전셋집의 등기부등본을 떼보니 특이하게도 이 집 역시 '전세권 설정 등기'가 돼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한 답 역시 이 후보자가 제출한 자료 안에 숨어 있었다.
이 후보자 며느리의 주민등록초본을 살펴보면 2024년 2월 27일 용산 e편한세상으로 전입했다가 2024년 7월 25일 도곡동의 한 아파트로 전입 신고를 한다. 그러더니 또다시 2024년 9월 24일 원래 있던 용산 e편한세상으로 돌아온다.
당시는 이 후보자 부부가 원펜타스 청약을 신청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당첨될 경우 사후 조사에서 문제되지 않기 위해 서류상 며느리가 잠시 다른 곳으로 전출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은 아닌지 의심됐다. 또 혹여 낙첨 되더라도 계속 청약을 신청하려면 온 가족이 한 세대를 이뤄 움직여야 한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래미안 원펜타스 전경. 연합뉴스장남만 홀로 원펜타스에서 용산으로 돌아온 시점은 2025년 4월 30일이다. 공교롭게도 국토부가 원펜타스 당첨자들에 대한 부정청약 관련 전수조사 결과 발표를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부인과 이미 세대를 구성한 장남은 2025년 11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혼인신고를 한다.
CBS 검증팀은 이 모든 행위들의 목적이 이 후보자 부부의 원펜타스 청약으로 보인다는 검증 보도를 가장 먼저 내놓았다. 청약을 위해 전입 신고 대신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해왔고, 혼인 신고를 미뤘으며, 며느리가 잠시 다른 집에 전출했다가 돌아온 것 아니냐는 가설을 잇따라 던졌다. 청와대가 제출한 서류에 있던 의문 조각들을 맞춘 것이다.
사실 퍼즐 맞추기라고도 할 것도 없다. 만약 청와대 검증팀 누구 하나라도 175억원의 자산가가 어떻게 로또 아파트에 당첨됐는지 이상하다고 의심했다면 서류에 나와있는 그런 모든 비정상적 행위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靑, 변명 어려운 '서류 검증' 실패
장남의 결혼 시점을 확인하기 위해 이 후보자가 다니는 교회 주보까지 뒤져야했던 CBS 검증팀에게 '자료로 검증하기 어려웠다'는 청와대 해명은 언어도단으로 들린다.
이번 이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검증은 실패아닌 다른 말로 규정하기 어렵다. 변명 대신 시스템 점검을 해야 앞으로 있을 또 다른 인사 검증에서 같은 실수를 막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