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분명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의 주전 수비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풋살 대표팀의 주공격수다. 헛갈리는 타이틀의 주인공은 바로 김영권(19, 전주대)이다.
지난 12일 200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18년만의 8강행을 일궈내고 돌아온 김영권은 보름만인 27일 제3회 실내아시아경기대회 풋살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준비를 하고 있는 김영권을 만났다. 첫 질문은 ''풋살은 어쩌다(?)''로 시작됐다.
"풋살 대표팀, 처음이자 마지막이죠"김영권은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들 역시도 풋살 대표선수로의 변신 이유를 궁금해한다며 웃어 보였다. 지난 2월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2009 KFA 풋살리그 출전이 계기가 됐다. 전주대 축구부에서 뛰는 김영권은 이 대회에 전주대가 출전하면서 자동으로 풋살 선수가 됐다. 첫 경험이었지만 ''물 만난 고기''였다.
실내 코트에서 골키퍼를 제외한 4명의 선수가 경기를 치르는 풋살에서는 공격수, 수비수가 따로 없었다. 전원 공수에 가담해야 하는 풋살에서 김영권의 공격력은 불을 뿜었다. 결국 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전주대를 우승시킨 김영권은 풋살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고 생애 처음으로 풋살 국제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풋살은 좁은 공간에서 많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공수 전환이 빠르고 볼 컨트롤이 중요하거든요. 축구 선수인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죠"라며 풋살 예찬론을 편 김영권은 "처음 나가는 풋살 국제대회고 소집 훈련 기간은 짧았지만 준비 많이 했어요. 풋살 국가대표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뛰는 대회인 만큼 좋은 성적 내고 싶어요"라는 각오를 더했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전주대 2학년인 김영권이 최근 도쿄FC와 5년 계약을 체결, 내년부터 일본에서 뛰게 되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이 우려했던 그 케이스다.
"홍명보 감독님, 걱정마세요"
홍 감독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20세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4,5명이 일본 진출을 준비중"이라면서 "K리그에서 배워야 하는 어린 선수들인데 제도적인 장치(드래프트)로 인해 자꾸 일본에 나가는 건 올림픽 준비에 큰 도움이 안된다"며 무분별한 해외 진출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J리그에서 2군으로 밀릴 경우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먹으며 운동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을 잘 아는 홍 감독으로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김영권은 자신있단다. "대표팀 동료 조영철이 지금 니가타에서 뛰고 있는데 도쿄에는 수비 자원이 많지 않다네요"라며 경쟁력을 강조한 그는 "2군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준비 잘해온 만큼 1군에서 뛸 자신 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영권의 이 같은 자신감은 최근 이집트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 출전으로 견고해졌다. 김영권은 지난해 5월, 19세 이하 대표팀에 첫 발탁된 이래 단 한번도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밀린 적이 없다. 지난 3월 출범한 홍명보호 1기 멤버이기도 한 김영권은 20세 이하 월드컵에서도 한국의 중앙 수비수로 5경기 전 경기 풀타임을 뛰었다.
독일, 파라과이, 가나 등 대륙별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면서 자신감이 더해졌다. 더욱이 중앙 수비수 출신인 홍명보 감독에게 배우면서 자신감은 배가됐다.
김영권은 "직접 뛰셨던 포지션이라 중앙 수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계시잖아요. 작은 부분도 지나치지 않고 많이 가르쳐주셨죠"라며 한국 수비수의 대명사인 홍 감독의 ''특별한 지도''가 수비수들에게 자신감을 더했음을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해당 포지션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터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실수도 결코 넘어가는 법이 없어 힘들기도 했다고.
그러나 까다로운 홍 감독으로부터 김영권은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다. 홍 감독이 지휘한 12경기 가운데 11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그는 "홍명보 감독님은 자신이 잘하는 것도 좋지만 동료의 실수를 잘 처리해줄 수 있는 커버플레이를 항상 주문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보여준 게 아닌가 싶어요"라며 겸손해 했다.
"매 경기 두 골씩 넣을께요"
축구를 시작한 것은 전주조촌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하던 축구부 옆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다 감독에게 전격 발탁됐다. 공격수가 되고 싶었지만 큰 키 때문에 처음부터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전주공고 시절 잠시 포워드로 전향한 적도 있었지만 곧 수비수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숨겨진 공격 본능은 대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였던 2008년 19세 이하 아시아선수권대회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시리아(1-0 승)를 상대로 한국의 선제결승골을 뽑아냈고, 두 번째 국제대회였던 20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미국전(3-0 승)에서 한국 공격의 물꼬를 트는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공격력이 좋은 만큼 전주대에서 경기할 때는 상황에 따라 공격수로 변신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 풋살 대회에서도 동료들에게 매 경기 두 골씩을 약속했다는 김영권이다.
풋살 대회가 끝나면 김영권에게는 다시 올림픽 대표팀 소집이 기다리고 있다. 12월 일본 평가전을 위해 모일 23세 이하 올림픽대표팀은 홍명보 감독의 지휘 하에 20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꾸려진다. 따라서 김영권의 합류는 사실상 확정적이다.
김영권은 "감독님이 월드컵을 마치고 공항에서 헤어지기 직전에 선수들에게 주문하신 것이 있어요. 팀에 돌아가서도 게을러지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죠"라며, 알아주지 않는 풋살 대표팀이지만 어떤 자리에서든 ''국가대표'' 김영권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한편 김영권을 필두로 한 한국 풋살대표팀은 29일 베트남 호치민 푸토경기장에서 쿠웨이트와 대회 D조 1차전을 시작으로 우즈베키스탄(31일), 키르기스스탄(11월2일)과 차례로 조별리그 경기를 치른다. 4개 조로 나뉘어 치러지는 이번 대회에서 각 조 상위 두 팀만이 8강에 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