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소재 경기도교육청 청사. 경기도교육청 제공경기도교육청이 올해 처음 시행한 '고3 사회진출 역량개발 사업'에 대해 교육 현장 곳곳에서 "예산은 넘치는 데 쓸 시간이 없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수능을 마친 이후 운전면허 등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는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지역별 교육 여건의 편차가 크고, 촉박한 일정과 추진 과정의 혼선 등으로 투입된 예산 대비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운전면허 학원 없거나, 먼 거리 탓에…신청 저조
1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교육청은 졸업 예정인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 후 사회 진출 역량 개발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사업비 총 367억 원을 투입했다.
도내 학교 고3 학생 1인당 30만원씩 지원되며, 사업 기간은 지난 8월부터 내년 2월까지다.
특히 운전면허 취득비 지원의 경우 만 18세 미만 학생들은 신청할 수 없다는 자격 제한 논란과 경기도의 청년 면허취득 지원 사업과의 중복 지원 논란 등에도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이유로 경기도교육청이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운전면허 학원이 아예 없거나, 수가 부족해 먼 거리 통원을 해야 하는 등 교육 여건의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성남 지역 내에는 운전면허학원이 한 곳도 없다. 이에 성남교육지원청은 지난 9월 신청을 받으면서 "학원 선정 여부에 따라 경기북부 등 먼 거리로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게다가 신청 이후에는 취소도 불가능해 신청을 망설인 학생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내용은 1학기 수요조사 당시에는 공지되지 않았다.
분당의 한 고등학교는 고3 학생 250여 명 중 26명이 운전면허 지원을 신청할 정도로 저조했다.
이 학교를 다니는 한 학생은 "포천이나 동두천 등 먼 지역까지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운전면허 과정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내비쳤다.
해당 학교 한 교사도 "성남엔 학원이 없어 멀리 배정될 수 있고, 신청 이후 취소도 불가해 학생 참여가 저조한 거 같다"며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장거리를 이동하다 사고를 당하는 등 문제가 생길 경우 어떻게 대처할 지도 우려가 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초 공지했던 것과는 달리 접수를 마감한 뒤 성남교육지원청은 지역 내 고등학교가 분포한 곳을 총 6개 권역으로 나눠 운전면허학원 공개 입찰을 진행해, 용인과 광주 지역 학원 등 약 30~40분 거리의 4개 업체를 선정했다.
성남교육지원청은 "당초 공지는 장거리 배정 가능성이 있어 고지한 것"이라며 "입찰 당시 거리 기준을 평가 대상에 포함했고, 학원 모두 학생들에게 이동 편의를 위한 셔틀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학원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청의 원거리 통원 가능성에 대한 공지가 학생들의 신청률을 떨어뜨린 결과를 낳은 셈이다.
경기도 용인교육지원청 2025년 운전면허 취득 프로그램 운영 용역 제안서 평가 기준또 교육지원청 주도의 입찰로 학원이 선정되면서 가까운 곳에 학원이 있어도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용인의 한 고3 학생은 "집에서도 가깝고 학교와도 가까운 곳에 운전면허 학원이 있는데도 더 먼 곳으로 수업을 받으러 가야 한다"며 "어떤 방식으로 선정된 것인지 모르는데 변경도 안 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용인교육지원청은 지역 내 32개 학교 중 단 1곳만이 학교가 자체적으로 학원을 선택했다.
용인교육지원청은 14개 권역별로 근거리 학교 최대 3곳을 묶은 뒤 나라장터 국가종합전자조달에 학원 입찰 공고를 올려 선정했다.
평가 기준은 거리와 학원비용, 경영상태, 행정처분여부 등을 고려한 정량적 평가 30%와 제안서 내용을 보는 정성 평가 70%로 이뤄졌다.
사실상 거리 또는 학원 비용에 대한 조건은 각각 평가 기준의 10% 미만을 차지하다 보니 다양한 민원도 속출했다.
용인교육지원청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학원이 배정된 한 학생은 '다른 학원이 더 친절한데 왜 이동이 안 되냐'는 민원을 내기도 하고, 거꾸로 학원 셔틀이 가지 못 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학원 선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개인 선호도가 조금씩 달라 모두 만족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접수기간은 일주일, 수강기간도 촉박…"혼란 속 진행된 사업"
경기교사노조에서 진행한 고3 운전면허 지원 사업 관련 학교 현장 실태조사. 경기교사노조 제공일부 교육지원청은 수요조사와 신청, 추가조사 등 비슷한 절차를 여러 차례 반복해 일선 학교 현장의 혼란을 키우기도 했다.
수요조사마다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거나, 지원 사업 신청을 학부모와 학생 중 누구에게 받을 것인지 등 공지도 부족해 학교와 학생 모두 피로감이 커졌다.
또 다른 교사는 "추석 연휴 전에 '이때 안 하면 참여 못한다'고 학생들을 재촉했는데, 연휴뒤에 또 추가신청을 받으라고 요청받았다"며 "이때 학생들에게 '지금 신청 안 해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준 거 같다"고 말했다.
신청 접수가 끝난 뒤, 입찰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유찰된 일부 학교는 재입찰 과정 등이 2~3차례 이어지며 수강 일정도 늦어졌고, 일부 학교는 12월 초부터 학원 수강 안내가 이뤄졌다.
한 학생은 "수능이 11월 둘째 주에 끝났는데 한참 뒤인 12월부터 일정이 잡혔다. 학과시험(필기)부터 기능까지 지원되는데, 이를 모두 1월 말에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수능 직후 자격증 공부' 수요 적어..뮤지컬 관람 등 엉뚱한 예산 소진
경기 화성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사회진출 역량개발 지원사업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 안내문. 독자 제공운전면허 취득 등 지원 사업 자체에 대한 신청률 저조로 예산이 남으면서 곤란해진 학교들도 속출하고 있다.
운전면허 외 토익 등 자격증 취득이나 온라인 강좌를 안내하면 고3 학생들과 학부모는 "왜 수능이 끝나자마자 또 공부를 해야 하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게다가 방과 후 수업으로 프로그램을 개설해야 한다는 지침은 실효성을 더욱 떨어졌다. 이미 학교에 잘 나오지 않고 있는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내키지 않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목공·바리스타 체험 등 고3 수요와 맞지 않는 프로그램이 제안되기도 했다.
한 학교 교사는 "수능이 끝나고 고3은 등교율이 떨어지는 시기라 외부 강사를 초빙해도 방과 후 운영은 쉽지 않다"며 "온라인 자격증 강좌를 신청만 하고 실제로 듣지 않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학교는 "남은 예산으로 영화·연극 관람을 운영했다"며 "굳이 세금으로 이런 걸 해야 하나 싶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예산은 충분한데 학생들이 실효성 있게 쓸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며 "없애달라는 게 아니라, 학생 일정과 지역 상황을 반영하면 훨씬 의미 있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