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호 안양시장이 지난 8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최 시장 측 제공"국가의 근간을 짓밟으려던 것 아닌가요? 피와 눈물로 지켜냈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인데…."
최대호(더불어민주당·67) 경기 안양시장이 1년 전 계엄령 포고문 첫줄을 되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지방의회, 집회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한 줄을 악몽처럼 떠올렸다.
1970~1980년대 군부의 총칼을 앞세운 독재와 탄압이 있었다면, 지난해 내란 사태는 '풀뿌리 민주의식'부터 위협하며 시작됐다는 것.
지난해 12월 3일 최 시장은 평소처럼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귀가했고, 뜬금없는 계엄 뉴스를 듣자마자 곧장 안양시청사로 달렸다. 간부들과 비상대기하던 초조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계엄령이 유지됐더라면 안양시의 모든 행정도 계엄군 군홧발 아래 놓이게 될 뻔했죠. 죽음을 무릅쓴 대다수 국회의원들, 부당한 명령에 불응한 군인들 덕분에 벗어난 겁니다." 아슬아슬했던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지켜본 최 시장은 "새벽이 그토록 깊어지고 나서야 동이 트더라"라며 당시 심정을 돌이켰다.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한 모습. 독자 제공그러나 이미 지역사회는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공포는 분노로 바뀌었고, 그는 거리로 향했다. 민주당 기초단체장협의회 대표로서 최 시장은 전국 시장·군수들과 손을 맞잡고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또 민심이 들끓는 광장으로 들어갔다.
최대호 시장은 지난 8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좌고우면 없이 지방자치 회복을 위해 총대를 멨다"며 "재계엄이 됐다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계엄의 밤'을 회고했다.
'지방 멸시 尹'과의 영원한 결별…지방재정 수호 앞장
다음은 '지우기'였다. 시장 집무실 벽에 붙어있던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목표' 액자가 눈에 거슬렸다고 한다.
최 시장은 "직접 의자를 밟고 올라가 액자를 떼어버렸다"며 "윤석열과의 영원한 결별을 선언하고 싶었고, 다른 지자체장들이 뜻을 함께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정부의 국정목표가) 모두 가식과 위선으로 느껴졌다"며 "내용 자체는 상식적인데, 정작 정부는 거꾸로 가며 국익·공정·상식·지방을 해쳤다. 국민 우롱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버려진 액자에는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살기 좋은 지방시대'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목표 액자를 철거한 모습. 최 시장 측 제공돌이켜보면 윤 정부는 줄곧 지방 멸시 기조를 유지해 왔다는 게 최 시장의 판단이다. 그런 인식이 계엄령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는 취지다.
특히 지방재정과 관련해 윤 전 대통령은 취임 후 해마다 역대급 세수 결손을 초래하면서, 나라 곳간의 재정부담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기 일쑤였다고 했다.
최 시장은 "중앙집권적이고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의식 수준이 내란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양시의 경우, 지난 정부의 지역화폐 국비지원 예산 삭감과 각종 복지성 지원비 축소 등으로 민생 사업을 추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 지방의 부담을 줄여갔는데, 윤 정부에서 방향을 틀어 지방분권 시대에 역행하게 됐다"며 "윤 정부 때 사회복지예산이 (우리 지역에서만) 2천억 원 정도가 쪼그라들었다. 보수진영이 강조하는 보훈단체 지원부터 줄었고, 아동청소년과 공공의료 예산 등도 일제히 감축됐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이) 말로는 국가적 희생에 대한 예우와 약자 보호를 앞세워 놓고, 뒤로는 지방에 줄 돈줄을 옥죄고 있었던 셈"이라며 "거짓된 정부였다"고 주장했다.
'자치 맏형' 최대호 "李정부+정청래호의 지방시대 기대↑"
최대호 안양시장이 이재명 대통령(당시 민주당 당대표) 무죄 탄원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독자 제공반면 이재명 정부 탄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지방의 변화에 방점을 찍었다. 최 시장의 '시장 동기' 출신인 이 대통령이 집권한 만큼, '지방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다.
더욱이 거대여당의 선장인 정청래 대표 역시 자치분권정책협의회 의장을 맡아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며 당내 각종 지방자치 관련 위원회에 힘을 싣는 등 최 시장과 지방자치 러닝메이트로서 주목되는 상황.
최 시장은 "당대표는 누구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지방의회법 제정에 적극 동의하고, 국토균형발전과 지방소멸 대응에도 열정을 갖고 있다"고 정 대표를 치켜세웠다.
이 같은 맥락에서 최 시장의 역할론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당내 지방자치 '리더'로서 시장·군수 대표는 물론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KDLC) 공동대표 등을 맡아 지방정부 재정위기 극복과 계엄 규탄,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가장 앞줄에 섰다.
최 시장이 당내 지자체장들과 함께 '국회의 탄핵 가결'을 촉구하며 거리에 나선 모습. 독자 제공
더불어 지난 대통령선거 국면에서는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전국적인 지역화폐 확대 발행을 견인하며 이재명표 시그니처 민생 정책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지역밀착형 정책과 선제적 행정으로 계엄 여파와 농수산물시장 폭설 등 각종 사회·자연 재난 피해들을 최소화했다"며 "그 성과로 민주당 지방자치대상을 받기도 했다"고 자부했다.
또한 "지방중심의 이재명·정청래 시대는 계엄 시대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마트행정으로 이재명‧정청래의 K-지방자치 선도"
그러면서 최 시장이 가리킨 건 'K-지방자치'다. 그간 안양에서 구현해온 '스마트행정'이 이 정부의 AI 기반 첨단산업 정책 기조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지방자치 30년을 자양분 삼아 이젠 신기술을 적극 활용해 시민들의 실생활에 실질적 편의를 극대화하면서, 안전과 환경, 복지까지 아울러 '지방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게 핵심이다.
최대호 안양시장. 최 시장 측 제공
최 시장은 "안양시는 온고개신(溫故開新)의 정신으로 스마트 기술을 결합해 교통, 안전, 환경, 복지 등 일상생활 전반에 변화를 적용하고 있다"며 "긴급상황 시 자동 신호개방이나 치매노인 탐색 시스템, 재난 감시 드론 등 시민들의 '골든타임'이 자치의 영역이 됐다"고 소개했다.
나아가 그는 "시민 의견을 실시간 데이터화해 지방행정에 녹여내는 스마트 AI 행정 서비스를 보편화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며 "직접민주주의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끝으로 최 시장은 "성남시장을 하며 정치적 역량을 쌓은 이 대통령이 직접 지방정부라는 진취적 표현을 사용했다"며 "그런 정치방향성에 맞춰 K-자치를 완성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