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어암리 옥화9경 은퇴자마을에서 만난 박용숙씨 등 참여자들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안정적인 노후의 방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진유정 기자| ▶ 글 싣는 순서 |
①춘천, '도심근교형 은퇴자 마을' 미래 도시 재편… 초고령사회 대응 ②청주형 은퇴정착 모델 구축… 옥화9경에서 찾은 해답 ③"집 짓는 건 쉽다…문제는 운영" 맹성규 국회 국토위원장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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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의 인구는 2025년 11월 기준 약 88만6천 명에 이르며,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는 대표적인 성장 도시다. 이러한 인구 유입 흐름 속에서 청주시는 올해부터 은퇴자 마을조성사업에 착수,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며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청주시청에서 차로 40분 이상 시골로 이동해야 도착하는 상당구 미원면 어암리. 이곳에 조성된 '옥화 9경 은퇴자마을'은 행정안전부 '고향올래'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추진 중인 시범 사업으로 지난해 행정안전부 공모사업 우수사례로 선정돼 장관상을 받기도 했었다.
' 옥화9경' 이란 좌구산에서 발원하여 청주 미원면 옥화리, 운암리, 월용리, 금관리, 어암리, 계원리를 흐르는 달천(박대천) 주변의 청석굴, 영소, 천경대, 옥화대, 금봉, 금관숲, 가마소뿔, 신선봉 그리고 박대소 아홉 곳을 이르는 말이다. 아름다운 자연생태 마을에 은퇴자 마을을 설립, 운영 중이다.
청주시 외 지역민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이 사업은 농촌지역에 생활인구를 유입하고, 나아가 청주시 내 귀농·귀촌을 장려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총 사업비는 10억원(국비 5억원, 시비 5억원)으로, 국비 5억원은 시설 리모델링을 위한 하드웨어 사업, 시비 5억원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 사업에 투입된다. 청주시는 사업 전반을 청주시활성화재단에 위탁해 관리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참가자들은 지난 9월 전국 공개모집을 통해 선정된 총 5개 팀 6명으로, 연령대는 50~70대다. 출신 지역도 서울시, 경기도, 경남 등으로 다양하다. 선발된 참가자들은 단기체류형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해 옥화9경 거점시설에 머물며 청주시 농촌지역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는 시간을 갖는다.
옥화9경 은퇴자마을 거점시설 2층에는 2~4명이 거주할 수 있는 숙소 5개가 마련되어 있다. 진유정 기자옥화9경 은퇴자마을 거점시설 2층에는 2~4명이 거주할 수 있는 숙소 5개가 마련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식사는 숙소별로 개별 해결하도록 운영되지만, 최근 참가자들 간 친밀도가 높아지면서 1층 공용주방에서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특히 이 공용주방은 참가자들과 지역 주민이 함께 청주 농특산물을 활용해 음식을 요리하고 식사하는 교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귀농·귀촌 정보가 공유되는 장이다.
'옥화9경 은퇴자마을' 참여자들이 사과따기 체험을 하고 있다. 청주시 제공이들은 미원 쌀안문화축제, 시골밥상 체험과 바비큐 파티, 육거리시장 방문, 청주공예비엔날레 탐방 등 다양한 지역 문화 경험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일손을 돕기 위해 서리태·콩 수확, 사과 수확, 고추대 제거, 김장 담그기, 논·밭 정리 등 농촌 봉사 활동에도 참여했다.
생활인구 유입과 지역 활성화가 목표인 이 사업을 위해 청주시는 참가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45일 동안 청주시 농업정책과, 청주시활성화재단 농촌활력부, 프로그램 운영 대행사가 함께 귀농귀촌 지원제도, 지역 빈집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며 정착을 적극 홍보하고 유도하고 있다.
"도시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30~40년 동안의 긴 직장생활을 마친 참가자들의 참여 동기는 저마다 달랐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지난 9월 퇴직한 박용숙(58) 씨는 "일부러 도심과 가장 먼 지역을 찾았다. 도시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달리기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는 시간이 너무 좋다. 특히 다른 은퇴자 마을 시범사업은 참가자들이 SNS 등을 이용해 생활을 홍보해야 하는 의무적인 숙제가 있는데, 옥화9경 은퇴자마을은 온전히 나의 생활에 집중할 수 있어서 부담이 적었다"고 했다.
공무원이었던 홍모 씨(60)는 주민들과 가까워진 경험을 강조했다. 홍씨는 "마을 주민들과 많이 친해졌다. 추수 기간 일손을 돕고 마을회관에서 밥도 얻어 먹고 얘기도 나누며 무료함을 해소한다. 은퇴자 마을에 입소한 사람들에게도 작은 땅을 임대해주면 텃밭 농사도 짓고 수확을 나눠 먹는 재미도 있으면 좋겠다"며 발전 의견도 제시했다.
딸의 권유로 은퇴자 마을에 참가했다는 김모(70)씨는 "공기 좋고 시설도 깨끗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어 좋다. 다만 청주시내에서 은퇴자 마을이 멀어 병원 갈 일이 조금 걱정된다. 하지만 입소한 사람들을 관리해주는 분들이 있어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고 했다.
임동준 청주시청 농업정책과 농촌개발팀장은 "옥화9경 은퇴자마을은 농촌이 소멸을 막고 은퇴세대에게는 새로운 삶을 설계할 기회를 제공하는 모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진유정 기자임동준 청주시청 농업정책과 농촌개발팀장은 "이번 시범사업의 성과로 참가자분들 중에 여러 분이 지역 정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청주시의 이번 시도는 단순 체류가 아닌 농촌 생활 인구 전환 정책의 중요한 실험으로 평가된다. 옥화9경 은퇴자마을은 농촌이 소멸되지 않도록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전략이자, 은퇴세대에게는 새로운 삶을 설계할 기회를 제공하는 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청주 은퇴자 마을 사업에 대해 지경배 한국폴리텍Ⅲ대학 학장(전 강원연구원 기획경영실장, 선임 연구위원, 일자리·사회적경제센터장)은 "청주형 은퇴자 마을 시범사업은 도시 은퇴세대가 농촌에서 '안전하고 의미 있는 체류'를 경험하도록 한 점에서 초기 성과가 뚜렷하다. 실제로 사과 수확·농작업 참여, 지역민과의 교류, 귀농·귀촌 사전체험 기능을 확보하며 농촌 소멸 대응 모델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체류 기간이 짧고, 50~70대 중심으로 참여층이 제한되며 운영 프로그램이 농작업 체험에 편중된 점 등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운영 주체와 지역 공동체 간 역할 분담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생활·건강·여가·지역참여 등 통합형 상시프로그램 운영, 행정–마을–전문기관이 참여하는 공동 운영 거버넌스 구축, 정착 의지·지역 기여도 기반의 입주자 선정 기준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