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너지공사에 마련된 '제주 분산에너지 지원센터'가 올해 2월 문을 열었다. 제주도 제공지난 5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36차 에너지위원회를 열어 제주도 전역을 비롯한 전국 4곳을 분산에너지특화지역(분산특구)으로 지정했다.
분산특구는 원거리 송전망을 이용하는 대신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까지 하는 지산지소형 시스템으로 조성된다.
전기사업법은 '발전·판매 겸업'을 금지하고 있지만 분산특구는 예외로 둬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간 전력 직접거래를 허용하고 규제특례를 적용해 다양한 요금제를 도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발전사업자가 LNG와 풍력 등의 발전소를 운영해 전기를 생산하면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전력을 구입해 가정이나 공장에 전기를 공급하고, 소비자는 사용량에 따라 한전에 전기요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전력거래소는 각 시간대별로 필요한 전력수요를 채우기 위해 비용이 저렴한 발전소부터 차례차례 전력을 생산하도록 제어 지시를 한다.
분산특구인 제주는 이같은 전력 운영체계가 아닌 직접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며 소비와 거래까지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통해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있게 된다.
지난 9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분산에너지 포럼. 제주도 제공제주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와 실시간 시장 같은 혁신적 제도를 갖춰 분산에너지 시스템 실험의 최적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제주에선 세가지 분산특구 실증 사업이 추진된다.
전기차를 활용해 전력거래 실증을 하는 'V2G'는 전력거래 육성과 제주지역 출력제어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이고, 전기저장장치를 활용한 전력거래 실증사업 'ESS'도 보급확대를 통한 출력제어 완화와 계통안정화가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히트펌프를 활용해 신사업을 육성하는 'P2H'는 난방설비 전기화를 통한 저탄소 전환과 출력제어 완화를 목표로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발전된 전기를 송전망이 수용하지 못해 출력 제한 발생 비율이 높은데 분산특구 실증사업을 통해 이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주도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20%로 전국 1위이지만 2023년 한 해에만 181차례, 35.6GWh의 출력제어가 발생했고 재생에너지가 만든 전기를 계통이 감당하지 못해 버려야 했다.
지난 9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분산에너지 포럼. 제주도 제공제주지역 실증사업은 태양광과 풍력, ESS, 전기차 등 유연성 자원들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관리하는 통합형 발전소(VPP)를 기반으로 한다.
실시간으로 전력의 공급과 수요 정보를 교환하고 발전량 예측과 소비량 조절 등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소규모 에너지 발전자원을 연결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통합·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제주도는 VPP를 기반으로 한 세가지 모델을 실증하면 모두 153MW의 유연성 자원을 확보해 전력계통 안정성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보급도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산특구가 활성화되면 출력제어로 발전사업 허가가 잠정 보류되던 현행 체계가 앞으로는 전력계통 안정화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고, 신산업 경쟁력 확보로 해외 에너지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된다고 제주도는 기대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제주도가 목표로 하는 2035 탄소중립 실현에도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고, 국가 탄소중립 목표도 견인할 수 있다.
분산특구를 통한 새로운 보상체계도 마련해 비선로 증설대안, 전력-열 전환 전용 요금제, 전력수요 관리 요금제 등을 도입한다.
제주도는 분산특구로 신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기업유치도 확대되면 2032년까지 1971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고 새로운 민간투자 규모도 2913억 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주도는 올해 3월 도청 탐라홀에서 한국전력공사 제주본부 등 14개 제주 소재 국가 공공기관(참고)과 '제주형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제주도 제공분산에너지 사업에 참여하는 도민들에게도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VPP 등 신성장 사업자와 함께하는 플랫폼을 이용해 에너지 사용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전기차를 소유한 도민은 낮에 충전했다가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에는 전력망으로 다시 전기를 보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민주주의가 실현될 때 분산특구의 진정한 성과가 완성된다고 말한다.
에너지 소비자였던 제주도민이 생산자로도 함께 하면서 에너지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도정 정책 방향 설계에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한마디로 에너지 민주주의는 생산과 이용, 이익 배분의 모든 과정에서 도민이 권리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 민주주의는 주민이 정책 설계와 운영에 참여해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환경 경관 갈등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발전 수익을 장학금과 복지기금, 마을 시설 개선 등에 환원해 지역 경제가 자생적으로 순환하게 되고 참여와 이익 공유로 정책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지난 9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세계지식포럼' 제주세션에서 오영훈 지사가 분산에너지특구 비전을 소개했다. 제주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