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10년 만의 연극 복귀,
무대 위 '단 한 사람'의 배우로 서서 105분간 18역 연기.
그녀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105분동안 그녀는 단 일 분도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쉴새없이 일인 18역을 소화하며 관객들과 함께 내달렸다.
어린 시절의 라이오스에서부터 늙은 꼰대 시민의 걸죽한 사투리 연기까지, 애교있고 여성스러우면서도 오토바이를 몰고 질주하는 왕비 이오카스테와 젊은 왕 라이오스의 고뇌에 찬 모습까지.
"안녕하세요? 전혜진입니다."파란색의 긴 가죽코트를 입고 나타난 전혜진은 이때까지만 해도 평소 우리가 알던 모습이었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무대 위 꺼진 조명 속에서 청색의 점프수트 차림으로 다시 나타난 그녀는 이내 '팔색조'로 변신한다.
'라이오스'는 국립극단이 2년에 걸쳐 선보이는 테베 왕가 연대기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두 번째 작품으로,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창작극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의 삶을 조명하며 그 시대 테베의 모습과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교차시킨다.
광기와 폭력의 시대를 지나 왕권이 공백이 된 테베. 혼란 속의 테베 시민들은 카드모스 왕가의 마지막 생존자인, 어린 시절 숲에 버려져 간신히 살아남은 라이오스를 왕으로 세운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귀족 가문 출신의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라이오스는 "아들이 너를 죽이고 너의 아내와 결혼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예언자 피티아의 '불길한' 예언을 듣게 된다.
부부는 저주를 피해 보려 발버둥 치지만, 먼훗날 늙은 라이오스는 '흙먼지 날리는 좁은 길'에서 결국 자신이 버린 아들 오이디푸스와 거리에서 마주친다.
"길을 비켜라"
"너나 길을 비키라고"
"너는, 너는, 혹시 너는"
라이오스의 탄생과 버려진 삶, 왕으로의 귀한, 저주, 혼란, 오이디푸스와의 만남..
라이오스의 삶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이 서사로 펼쳐진다.
혼란 속에서 왕을 원하는 테베 시민들의 열망과, 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저주 속에서 불안해하는 라이오스의 모습이 전혜진 한 사람의 열연으로 꽉 채워진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신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인만큼 이름도 낯설고 내용도 쉽지만은 않다.
어느 배우도 선뜻 응하지 않았을 작품을 전혜진은 10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선택했다.
연극의 해설자와 주요 배역, 단역 등으로 작품의 안팎을 넘나들며 105분간 쉴새없이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커다란 화면에는 인물관계도가 가득 차 있고 전혜진은 또박또박 '일타강사'로 인물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무대 위 오직 한 명의 배우인 전혜진은 서사시, 대화, 독백, 지시문 낭독 등 다성적(多聲的) 텍스트를 성별과 나이, 지역 등을 넘나들며 다성적인 목소리로 전했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무대 소품인 커다란 멧돼지를 스스로 옮기고, 푸른 색을 얼굴에 칠하고, 조명이 꺼진 사이 의상을 몇 차례 갈아입고 열 계단을 쉴새없이 오르내린다.
멧돼지의 살점과 내장을 뜯어 먹은 뒤, 얼굴에 동물의 피를 덕지덕지 묻히며 살아남은 라이오스의 비극을 연기한 그녀의 표정에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라이오스의 깊은 고독과 고통이 깊게 느껴진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라이오스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무대를 누비는 이오카스테의 모습은 공연장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했다.
18역을 오가던 전혜진은 극중 전혜진으로 돌아와 관객들에게 스트레칭을 하자고 하며 함께 긴장을 풀기도 한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가 만나는 장면은 스크린은 통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전혜진이 관객을 등지고 서서 한 인물을 연기하면, 카메라에 비친 얼굴은 '다른 인물'로 보이며 아버지와 아들이 충돌하는 비극의 순간이 펼쳐진다.
전혜진은 마이크를 벗어던지고 육성을 내지르며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낸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감히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절절한 목소리는 그녀의 개인사와 겹치며 더욱 슬프게 와닿는다.
배우자 고(故) 이선균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전혜진은 슬픔을 딛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김수정 연출은 "어릴 때 극단 '차이무'에서 잠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동경해오던 배우로서 이 작품을 읽고 전혜진이 떠올랐다"며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맞는 것을 맞다고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라고 저에겐 기억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대중에게 노출된 모습 외에도 정말 다양한 모습이 있는 배우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았다"며 "특히 다양한 젠더 연기를 넘나드는 모습과 즉흥성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매력 있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극단 차이무는 송강호, 유오성, 명계남, 강신일, 이성민, 문소리 등이 거쳐 간 연기파 배우의 산실(産室)로 불린다.
105분이 지루하지 않은 전혜진의 '원맨쇼'였지만 친절한 배경 설명에도 불구하고 전작을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내용이 생소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최성문 연극평론가는 "이렇게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는 국내에서 몇되지 않는다"며 "전혜진이 아니였음 작품을 끌어가기 어려웠을 것 같다. 오히려 연극에서 훨씬 더 전혜진의 매력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공연장에는 많은 연극인들이 눈에 띄였다. 10년 만의 연극 복귀를 응원하러 온 팬들과 전혜진의 멋진 연기를 보고 배우러 온 연극인들이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와 그녀를 기다렸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2부인 '라이오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전혜진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