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여권이 대장동 일당 항소 포기 이슈의 출구전략을 찾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급발진' 행보로 스텝이 꼬였다. 이재명 대통령 해외 순방을 계기로 숨을 고르면서 야당과 국정조사 방식을 합의하려던 당초 계획이 삐걱거리게 됐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국정조사 실시에 관한 여야 합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법사위 범여권 의원들이 지난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항소 포기' 관련 집단 성명을 낸 검사장 18명에 대한 고발 방침을 밝혔던 게 결정적이었다.
그 전까지 민주당은 큰 틀에서 여야 합의 처리를 원칙으로 정해놓고 구체적인 방식에 관한 논의를 야당과 이어가고 있었다. 다만 국민의힘 측이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회의 진행이 편파적일 거라며, 법사위에서 국정조사를 진행하자는 여당 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법사위원들이 별안간 검사장들을 고발하고 나서면서 국민의힘에서는 '법사위는 편파적'이라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여당 내에서도 '협상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민주당 지도부가 법사위원들이 고발 방침을 결정할 때 사전 소통이 없었다고 거듭 강조하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그렇게 민감한 건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고, 심지어 원내 지도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법사위를 겨냥한 험한 말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조사가 일단 시작되더라도 진행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발된 검사장들이 '국정감사는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訴追)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면 안 된다'는 국감국조법 규정을 근거로 '선서'와 '증언'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 2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12∙3내란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 나와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선서를 거부했다. 이 전 장관은 국회 행정안전위원들의 질문에는 "증언하지 않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앞서 법사위는 지난 9월에도 기습적으로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을 겨눈 청문회를 의결했다. 입법부인 국회가 다른 4부 요인인 대법원장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실시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었다.
문제는 같은 시기 나왔던 이 대통령의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비교적 주목을 덜 받게 되면서 당내에서도 법사위원들의 돌출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윤창원 기자
현재도 이 대통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중동∙아프리카 4개국을 순방 중이다. 당 지도부는 그동안 여당 발 이슈로 대통령의 외교 성과가 가려진 점을 의식하고, 자당 의원들에게 이 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 '로키'(Low key) 행보를 강조했다.
이런 방침에도 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지난 19일 여당 법사위원들은 검사장들을 고발한 것이다. 이에 여러 법사위 관계자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당내에선 "지방선거에 출마를 위해 관심을 끌려는 법사위원들의 욕심이 팀 전체엔 해를 끼치고 있다(수도권 재선 의원)"는 볼멘소리가 흘러 나온다.
이런 가운데 20일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7대 사법개혁안' 가운데 하나인 '법왜곡죄 신설법'을 당장 처리하지 않고 야당과의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김 원내대표의 공개 저격으로 여당 위원들이 일단 몸을 낮춘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 소속 여당 의원은 CBS노컷뉴스에 "가급적 (야당과) 싸우지 않고 서로 의견만 피력했다"고 전했다. 전현희 수석최고위원은 이번 고발 건을 당의 입장과 구분해 달라며 "법사위 범여권, 무소속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한 의정활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