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KT 이사회가 최근 대표이사의 부문장급 인사 및 주요 조직개편 시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자체 권한을 확대한 것을 두고 각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T 경영이 정치권과 같은 외부 압력에 흔들릴 수 있게 빗장이 열린 게 아니냐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개정이 초유의 사태라며, 향후 독립성 훼손과 전문성 부족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위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사회 자체 권한 확대…전문가 "이사회는 견제와 감독이 주 역할"
18일 KT 등에 따르면, KT 이사회는 4일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가 인사 및 조직 개편을 할 때 이사회의 사전 심의 및 의결을 받도록 이사회 규정을 개정했다. (관련기사 : [단독]KT이사회, '경영 개입' 안건 기습 의결…"독립성 침해") 구체적으로
부문장급 경영임원 및 법무실장에 대한 임명·면직과 주요 조직의 설치, 변경, 폐지 등 조직개편 권한을 이사회가 흡수한 것이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당 개정이 통상의 이사회 권한을 넘어선다고 보고 있다. 상법 제393조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표이사 등의 직무 집행을 감독한다고 돼 있다. 경영진에 대한 감시나 견제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밖에
구체적인 인사 조치나 조직개편은 대표이사의 관할이라는 게 경영계의 중론이다. KT 정관 제29조에도 대표이사의 직무에 대해 "업무 전반을 총괄한다"고 돼 있다.
이사회 승인 권한이 '부문장급 경영임원 및 법무실장'에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후속 인사까지 고려하면 인사 영역의 상당히 넓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또한 이번 개정에 포함된 '주요 조직개편' 문구도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어디까지를 '주요' 조직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 주관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KT 이사회 측은 이사회가 회사의 주요 업무집행을 결의한다고 돼 있는 상법 제393조를 이번 개정의 근거로 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조항은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를 이사회 권한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회사의 외부 업무에 한한다는 게 전문가 해석이다.
과거 KT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했던 고려대학교 조명현 경영대학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사회의 주요 역할은 직접 경영을 하는 게 아니라 감독과 전략설정, 성과 평가다"라며 "외부인의 시선으로 정확하게 판단하는 게 이사회의 주요 업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사회의 권한 확대가 최근 국제적 흐름이라는 이사회 입장에 대해서도 반박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법 전문 변호사는 통화에서 "외국에서도 이사회는 대표이사나 대표집행임원을 선임하는 데서 역할이 끝난다"며 "이후에는 대표이사나 집행임원이 자기 조직을 꾸리는 절차를 밟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해당 개정으로 경영의 독립성 훼손과 전문성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외이사 입김에 따라 주요 간부가 임명되거나 특정 조직이 개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이사회만 하더라도 사외이사 8명 중 윤석열 정권에서 임명된 이사가 7명을 차지한다. 주로 법조계·학계 인사가 많은 사외이사들이 인공지능(AI) 등을 염두에 둔 전문성 있는 인사·조직개편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주주총회 거쳐야 하는 정관 개정 사안"…상법 위반 지적도
류영주 기자해당 개정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인사와 조직개편의 경우 주주총회를 통한 정관 개정 사항으로 봐야 하기 하는데, 이사회가 이사회 규정으로 권한을 확대하는 것을 월권이라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상법 제209조를 들어 이번 개정이 정관 개정 사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조항에는 대표이사의 권한에 대해 '회사의 영업에 관해 재판상·재판 외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사와 조직개편은 영업과 관련한 대표이사의 권한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직 KT 임원 출신 단체인 'K-비즈니스연구포럼' 한영도 의장(상명대 전 글로벌경영학과 교수)은 통화에서 "KT 이사회가 규정 개정을 통해 대표이사의 고유한 권한을 침탈했다고 봐야 한다"며 "이사회가 상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실제로 이사회가 개정을 추진할 당시 경영진 내부에서는 사전 법률 검토 결과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반대하는 기류가 우세했지만 일부 강성 이사의 주도로 안건이 의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KT 안팎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현모 전 KT 대표는 14일 'KT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대표이사 공모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최근) 이사회가 내린 여러 결정들은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했다"며 "이런 이사회에서 다시 심사를 받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직격했다.
KT새노조도 성명을 통해 "(이사회의 개정은) 표면적으로는 낙하산을 차단하겠다는 명분처럼 보일 수 있으나 반대로 새 CEO가 낙하산 인사를 정리하려 할 때 이사회가 이를 제어하거나 보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며 "이미 내부에서는 '알 박기 인사'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