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광화문 일대. 권유빈 인턴기자대장동 비리 사건 1심 항소 포기를 놓고 검찰과 야당 그리고 여권이 충돌하는 지점 중 하나는 바로 핵심 증거인 정학영 회계사의 녹취록이다. 여권은 녹취를 일부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면 공소 자체가 잘못됐으며 항소 포기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입장이다.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도 검찰이 녹취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단어를 추가하거나 대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검찰은 선을 긋고 있다.
문제의 파일에는 2012년 8월부터 2021년 4월까지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기자, 남욱 변호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과의 통화 내용이 담겼다.
지난 17일, CBS 노컷뉴스 인턴기자들은 서울시 종로구, 관악구, 강남구 서초동, 강서구 등지에서 시민들에게 해당 음성파일 일부를 직접 들려주고, 문제로 지적된 단어들이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 확인하는 '길거리 듣기평가'를 진행했다. 편집된 자막이나 배경 정보를 제공받지 않은 채, 주관적 청취로 단어를 가려달라고 주문했다.
(왼쪽부터)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기자·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남욱 변호사. 연합뉴스"재창이형"이냐 "실장님"이냐… '형' 쪽이 더 많았다
우선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비서실 정무조정실장을 지칭하는 '실장님'이 나온다고 검찰이 특정한 파일에 대해선 다수 시민들이 다른 답변을 했다.
30명 중 18명이 '재창이형', '제창형', '재찬형' 등 사람 이름을 부르는 말에 가까워 보인다고 응답했다. 10명은 '실장님'으로 들린다고 답했다. 2명은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대응했다.
이윤석(32) 씨는 "형을 부르는 톤이다. 조직 직책을 부르는 말하고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최은석(31) 씨도 "저는 '제창현' 또는 '제창형'처럼 들렸다. 실명 기반 단어 같다"고 말했다. 이동희(32) 씨는 "재찬형이라고 들렸다"며 '형 호칭'을 확신했다.
하지만 고령층에서는 다른 의견도 적지 않았다. 김모(70대) 씨는 "'실장님'이 맞다. 당시 성남시의 핵심 라인이 실장들 아니었나. 실제 맥락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허모(70대) 씨는 "녹취록은 개인이 조작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라며 '실장님'이 맞을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이지은(23) 씨는 "저는 '제창형'으로 들렸다. 하지만 발음이 완전히 선명하진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유민주(25) 씨 역시 "형 쪽에 가깝긴 한데 정치에 관심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백모(30) 씨, 문모(29) 씨, 송모(54) 씨 등은 모두 "재창이형"을 답하며 검찰의 녹취록에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시 강남구 강남역 역사 내부. 양지훈 인턴기자"(김)용이하고"냐 "없는 표현"이냐…거의 반반으로 갈려
두번째 녹음파일은 역시 이 대통령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이름이 들리느냐를 놓고는 팽팽했다. 검찰 녹취록에는 '용이하고'라는 표현이 있지만, 여권은 이 부분이 들리지 않는다며 반박하고 있다.
전체 30명 중 '용이하고'가 14명, '('용이하고' 없이) 그런데'가 15명으로 거의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1명은 단어가 확실치 않다고 응답했다.
문장이 짧고 음질이 좋지 않아 단어를 정확히 식별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일부는 맥락에 따라 추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답했다. 김희원(28) 씨는 "저는 처음에 '그런데'로 들렸다"고 했고, 이윤석(32) 씨는 "저는 '그런데'가 더 가깝다"고 말했다. 최모(80) 씨, 김모(70대) 씨, 허모(70대) 씨 등 고령층은 대체로 '그런데'를 선택했다.
반면 최은석(31) 씨는 "저는 '용의하고'처럼 들렸다"고 했고, 송모(54) 씨, 백모(30) 씨, 이모(23) 씨 등도 "다시 들어봐도 '용이하고' 같다"고 응답했다. 이지은(23) 씨는 "두 단어가 번갈아 들려 애매하다. 이걸 법정에서 확정해 쓰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지연(24) 씨는 "정치적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들으니 더 혼란스럽다"며 "단어 하나가 정확히 들리지 않는 걸 근거로 삼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박모(26) 씨는 '용이하고'를, 오모(43) 씨는 '용이하고'를, 김모(32) 씨 역시 같은 답을 냈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역 인근. 양지훈 인턴기자"윗어르신"이냐 "위례신도시"냐…윗어르신이 '다수'
마지막은 '윗어르신' 이냐 '위례신도시'이냐다. 검찰 주장대로 윗어르신으로 하면 성남시 수뇌부를 지목하는 문장이 될 수 있지만, 여당 지적처럼 위례신도시면 대장동과 무관한 내용이 된다. 이 파일에 대해선 검찰 녹취록대로 '윗어르신' 쪽이 우세했다.
30명 중 17명이 '윗어르신' 또는 '웃어르신'으로 들린다고 응답했고, 13명은 '위례신도시', '위래시', '위로신' 등 지명에 가까운 단어로 들린다고 답했다. 해당 문장의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단어를 정확하게 특정하기 어려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희원(28) 씨는 "저는 '웃어르신'처럼 들렸다"며 "발음이 뭉개져 처음에는 위례신도시로 들리기도 했지만 다시 들으니 사람을 부르는 말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동희(32) 씨는 "저는 오히려 지명으로 들렸다. 말 끝이 '-신도시'처럼 끊겼다"고 했고, 이윤석(32) 씨 역시 "단어가 불명확해 '위래시?'라고 들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