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위원. 연합뉴스뉴스를 검색하다보니 두 개의 뉴스가 공교롭게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유병호 감사위원이 감사원장 퇴임식에서 "영혼없는 것들아"라고 소리치며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를 크게 틀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이 은퇴 계기로 썼다는 '마지막 주주서한'이다. 신문은 버핏의 마지막 레슨이라며 "변덕스러운 주가에 절망 말라"고 자본 입장에서 제목을 뽑았다. 그러나 '돈' 얘기보다 버핏의 '인생지침'에 관심이 더 쏠렸다. "자신의 부고장에 어떤 삶이 기록되기를 바라는지 정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Decide what you want your obituary to say — and live the life that earns it.)"는 조언이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명한 이야기다. 노벨의 형이 죽었을 때 한 언론은 노벨이 사망했다며 "죽음의 상인"이라고 지칭했다. 노벨은 헤드라인을 본 뒤 충격을 받고 그의 인생관을 바꿨다는 것이다. 버핏은 자기 스스로가 '인생의 나침반'을 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병호와 버핏의 인생을 비교하는 건 천부당만부당하다. 또 세계관이 이 두 가지로 꼭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두 스토리를 떠올린 건 대장동 사건 항소포기에 따른 후폭풍 때문이다. 항소포기를 놓고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항소 포기를 한 건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재명 대통령 입장에서 항소 포기로 인한 실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막을 이유도 항소를 추동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법무부와 검찰 지도부 둘다 서로의 복심을 어떻게 의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빈곤하기 짝이 없는 정무적 감각이다.
대장동 사건은 수사의 객관적 논리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정치이념화'된 것이 본질이다. 문재인 정부 말기, 대선을 앞두고 검찰은 1차수사를 벌였다. 수사팀은 '650억+알파'를 축으로 한 배임혐의로 김만배.유동규 일당을 기소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윤석열 특수부는 몸통을 유동규에서 이재명 대통령으로 범죄 스킴(scheme)을 짜고 공소장을 변경했다. 배임액수도 4895억원으로 1차 수사보다 8배를 올렸다. 항소 포기로 윤석열 수사검사들이 "7800억원의 부당이득 청구가 날아갔다"는 주장하는 논거의 배경이다.
그렇다면 1심 법원의 판결 결과는 어떠한가. 결론적으로 검찰 1차 수사팀의 손을 들어줬고, 윤석열 검찰의 수사는 파묘시켰다. 민간유착의 부패범죄요. 유동규.김만배가 몸통이고, 배임액수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특경법상 배임혐의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 재판의 결론이다. 몸통이 이 대통령이라거나 배임액이 4800억이라는 핵심 혐의를 다 기각했다. 오히려 1차 수사결과에 준하는 결과를 지지한다.
배임액수는 이 사건 수사의 핵심이다. 배임액이 50억이 넘으면 특경법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특경법이 인정됐다면 몰수의 기회도 훨씬 높아진다. 하지만 재판부는 "배임액수를 특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당연한 결론이다. 배임액 특정은 일당이 범죄 스킴을 짤 당시(2013년말이나 2014년초)로 특정을 해야하는데 지금은 그 산정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범죄 일당을 두둔하려는게 아니고 현실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윤석열 검찰은 지난 4년 간 긴 재판에서 배임액을 특정하지 못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최근 검찰이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과천=류영주 기자그런데 항소포기 후 그들은 "항소심에서 배임액수를 특정할 수 있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또 눈속임하려는 것이다. 되물어보자. 4년 동안 특정하지 못한 액수를 어떻게 특정하겠다는 것인가. 이러니 '정적'을 죽이기 위한 정치수사였다고 비판받는다. '수사'하는 검사가 아니고 '정치'하는 '검사'라고 낙인을 받는 것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손실액수에 대한 판단도 보자. 윤석열 검찰은 범죄 일당이 780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전액 추징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검찰이 주장한 7800억원이 아니라 일당의 실질적 부당이익은 1128억원으로 결정했다. 대장동 택지 배당액 5900억원에서 성남 도개공이 절반인 2900억 상당의 배당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 1100억 상당을 못받아 일당에게 이익을 몰아줬다는 것이다.(도개공은 1800억 상당만 배당으로 받음)
나머지 중요한 쟁점은 환수에 관한 것이다. 아쉽게도 항소를 했다면 이 논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항소 포기에도 얼마를 환수할지 알 수 없으나 '기회'가 완전히 닫힌 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살인 미수사건에서 검찰이 항소를 안 했는데 항소심 심리에서 살인이 맞다고 판단됐다면 '살인죄'가 인정될 수 있다. 재판부의 직권에 관한 것이다. 다만 형량은 1심 선고 이상으로 변경할 수 없다. 불이익 변경원칙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항소를 안했더라도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직권으로 1심과 다른 판단을 할 여지가 있다. 다만 유동규.김만배 일당에 대한 형량을 높일 수 없는 제약은 바뀌지 않는다.
법무부나 검찰.용산의 민정수석실이 항소 포기 후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장동 사건은 '정적 죽이기'가 수사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억울하든 아니든, 그것이 해소될때까지 이 대통령은 정쟁의 늪에 존재하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맬 이유가 없다. 항소하든 말든 이 대통령에게 별 실익과 손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고위공직자들의 자세다.
유병호는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왜 비난했을까. 자기딴에는 아부했던 감사원 공무원들이 등을 돌리는걸 보며 나온 '발작'이라고 짐작된다. 윤석열 정치검찰이 마치 관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한바탕 난리를 피는 이유는 뭘까. 1심 법원에서 자신들의 논리가 궤멸되자 본능적으로 책임이 돌아올 것이라는 '불길함'을 귀신처럼 알아챘기 때문일 것이다. 대장동 사건은 수사는 수사의 논리로 철저하게 재단됐어야 했다.
윤석열 검찰은 정치수사로 대장동 사건을 정치쟁점화했다. 그것이 원죄이다. 원인이 그러하니 결과 또한 그러하다. 워린 버핏의 말을 곱씹어보자. 고위공직자들이 성공에만 눈이 멀어 갈대처럼 요지경으로 살다보니 벌어진 광경들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인생의 나침반'을 그려보고 꿈꾸었다면 이런 소모적 정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괴랄하고 웃프지만 유병호의 "영혼없는 것들아"라는 욕은 고위공직자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돌직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