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철강업계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정부가 설비규모 조정과 불공정 수입재 단속 강화 등을 핵심으로 한 대책을 내놨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책에 대해 대체로 당장 필요한 내용들이 두루 담겨있다는 호평이 나오는 한편, 더 강력한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4천억 금융 패키지…고부가·저탄소 전환 지원에 일단 '호평'
정부는 5일 △설비구조 조정 △수출·통상 대응 △고부가·저탄소 전환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한 철강 대책을 발표했다. 공급 과잉 품목에 대해선 설비를 줄이고, 전망이 좋은 품목에는 투자를 지원한다. 중국산 저가 수입재에는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참고 기사: '50% 관세' 갇힌 철강…정부, 반덤핑 강화하고 설비 줄인다)
아울러 57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방안도 이번 대책에 담겼다. 4천억원 규모의 '수출공급망 강화보증상품'을 신설했다. 해당 상품을 통해 수출 기업들은 최대 2%포인트 인하된 금리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고, 보증 금액 한도 확대, 보증 기간 연장(1년→3년), 보증료 할인(1%→0.7%) 등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철강·알루미늄·구리·파생상품(철강·알루미늄 함유 제품) 관세로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해 1500억원 규모로 원자재 구입과 시설투자 관련 이자부담도 덜어준다. 한국무역협회가 미국의 철강 관세 피해 기업에 지원하는 긴급 융자자금 200억원까지 더해진다.
업계에서는 "수없이 많은 협의를 한 결과라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나온 패키지 대책", "업계와 소통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도출한 것 같다"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특히
중국산 철강에 대한 단속 조치에 대해 반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미국과 EU 등 주요 수출국에서 수입산 철강 관세 인상·무관세 할당량 축소 등 새로운 관세할당(TRQ)을 도입한 데 대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맞지만, 철강업계는 중국산 저가 철강이 공급되는 것과 관련한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 대책은 중국산 저가 철강에 대한 무역 구제 조치를 진행하겠다는 뜻"이라며 "관세청, 철강협회와 협력체계를 구축해 원산지 회피 행위 등을 다 잡아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모든 철강 품목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건 아닌데, 이제부터는 불공적 무역 행위에 대해선 무역위원회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얘기"라고 부연했다.
국내 철강업체가 중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부 산하 무역위원회에 반덤핑 조사를 신청하면 관세 부과 등 적극적인 조치까지 염두에 둔 것 같다는 뜻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중국산 후판에 최대 38.02%의 잠정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같은 조치에 따라 중국산 후판의 수입 물량은 일부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같은 방식을 다른 철강 품목에도 좀더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읽힌다.
또 미래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특수탄소강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하고, 저탄소 철강 공정 전환에도 후한 점수를 주는 분위기다.
원산지 세탁 원천 방지할 수 있는데…우려도 여전
제철소. 연합뉴스
비상 대책은 나왔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중국산 등 저가 철강에 대한 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없지 않다. 이같은 시각엔 철강업계 내에서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중국에서 물량 공세를 하면 버틸 방법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가뜩이나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서 철강은 인하 혜택을 받지 못했는데, 중국산 철강에 대해서 최대한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서방 선진국처럼
'멜트 앤 푸어(melt and pour)'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조심스레 나온다.
'멜트 앤 푸어'란 철강 제품의 조강 단계에서의 원산지를 기준으로 어느 국가에서 처음 철강을 녹였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중국산 철강이 베트남이나 태국 등 제3국을 통해 우회 수입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사용된다.
다만 이 방식은 저가 덤핑 철강의 유입을 막는 것에 효과적이지만 무역 장벽으로도 인식될 수 있어 또다른 무역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또 국내에서는 '멜팅 앤 푸어'를 도입하기 위한 조강 단계에서의 데이터 수집 및 검증 절차도 없다.
이에 대해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EU에서는 이미 도입된 제도"라며 "용광로나 전기로를 갖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계속 주장해 온 제도다. 중국산 배추로 김장하면 그게 한국 김치가 되냐"고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