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권정성 지휘자, 김무상 장로. 자료사진권정성> 울산 CBS의 찬양 회복 프로젝트 우리 함께 찬양을 2부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 시간에는요 울산 지역에서 찬양으로 은혜를 나누는 동역역자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우리들 교회를 섬기시는 김무상 장로님 모셨습니다.
장로님 어서 오십시오.
김무상> 네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권정성> 우리 청취자분들께 장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무상> 네 뭐 특별히 제가 소개해 드릴 만한 건 없는데 저는 합동교단 소속 울산 북구 천곡동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우리들 교회 시무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권정성> 장로님은 언제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하신 거예요?
김무상>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때부터요.
권정성> 어떤 계기로요?
김무상> 그때 당시에 저희 그때 시골 교회에서 성경학교가 열렸어요.
그 성경학교가 열리면 선생님들이 앞에서 북을 치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갔는데 저도 그 북소리 따라서 교회로 간 아이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권정성> 북소리 따라서 예수님을 만난 김무상 장로님을 모셨습니다.
장로님 마음에 처음 들어왔던 찬양은 어떤 찬양이 있을까요?
김무상> 저는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양이 제가 신앙생활하면서 마음에 처음으로 깊이 박힌 찬양이었습니다.
권정성> 특별히 이 찬양이 장로님 마음에 왔던 이유가 있을까요?
김무상> 네 제가 79년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받던 날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일인데요.
저는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납니다. 저희 집안이 증조모님께서 무당이셨어요.
그리고 저희 집안 곳곳에 신주 단지가 있는 아주 샤마니즘으로 가득 찬 그런 집안이었고요.
저의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보름달만 뜨면은 저보고 달 보고 빌어라 하시고 또 가끔은 굿당에 데리고 가서 그 굿당에 있는 우상들에게 절하라 하시고 하여튼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성경학교 나가면서부터 그 이후로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고 79년도에 세례를 받으면서 세례를 받던 날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막 펑펑 눈물을 쏟고 기도했는데 그날 예배 시간에 세례식 이후에 불렀던 찬양이 제가 말씀드린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이었습니다.
권정성> 장로님 말씀 들어보면 쉽게 교회를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전혀 아니었을 텐데 정말 힘드셨을 텐데 그 이야기 좀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무상> 근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희 집안이 그렇게 미신이 아주 충만한 그런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신앙생활하는 데에서는 전혀 반대를 안 하셨어요.
그게 참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긴 해요.
권정성> 굿당에도 데리고 가셨고 보름달에게 빌기도 하셨는데 교회 나가시면서 안 하셨을 거 아니에요?
김무상> 당연하죠. 그때부터 저는 성경학교 끝나는 그 주간부터 제가 교회를 갔고 그 이후로는 제가 어머니한테 단호하게 나는 교회를 갑니다.
교회 가니까 선생님이 그런 건 하면 안 된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 드렸죠. 저는 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따라서 이제 한 것 같아요.
권정성> 장로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장로님의 그 긴 신앙의 여정 중에서 가장 마음속에 남는 일 한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무상> 저는 그 유년 시절부터 산에 나무 하러 다니고요. 농사 일도 아주 많이 했습니다.
제가 69년도에 초등학교를 입학했는데 그 시절에는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특히 제가 사는 시골은 더 어려웠고요.
그중에도 저희 집은 더 가난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연세 드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제가 3학년 때까지는 무료로 빵을 학교에서 나눠 줬어요.
근데 4학년 때가 되니까 그 빵을 유료로 바꾸더라고요.
근데 유료로 바꾸면서 한 달 빵값이 180원이었는데 그 돈이 없어서 저는 빵을 먹지를 못했어요.
그때 당시에 먹을 것이 너무 없던 시절이어서 보리고개가 되면은 어머니께서 이제 고구마를 싸주셨는데 고구마 싸들고 학교 가는 게 너무 부끄러워 가지고 안 싸가지고 갔거든요.
그래 가지고 점심 때만 되면 배가 너무 고파가지고 학교 운동장에 수돗가에 가서 수돗물을 먹어서 그걸로 이제 배를 채우고 그러다가 집에 올 때쯤 되면 이제 산으로 가서 산에 풀뿌리 같은 거 이제 캐서 먹기도 하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그것도 먹기도 해보고 뭐 하여튼 어린 시절은 그런 기억밖에 없어요.
근데 뭐 제가 그렇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요. 그 어린 시절 그렇게 불우하게 컸는데도 제가 삐딱하게 나가지 않고 나름 모범생으로 자란 거는 아마 신앙생활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데 그런 과정에서 제가 저희 집안이 너무 가난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집안을 일으킬까에 대한 그런 고민을 많이 했고요.
그런 가운데서 제가 어머니에게 간곡하게 편지를 써서 예수를 믿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안이 일어설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저희 작은아버님은 예수를 믿는 집안이었고요.
작은아버지 댁에서 제가 생활하면서 보니까 그게 절실하게 느껴져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그렇게 했더니만 제 편지를 받으신 어머니께서 바로 교회로 가셔가지고 그때 당시에 여전도사님이 계셨는데 여전도사님에게 부탁을 해서 이번 주일부터 교회 나올 테니까 전도사님 우리 집에 와 가지고 신주 단지에 있는 거를 좀 처리를 해 주십사라고 부탁을 하셨대요.
그래서 금요일 날 전도사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집 안 곳곳에 들어 있는 그 신주 딴지를 마당에 다 끄집어내가지고 깨뜨리고 불살라 버리고 그주부터 바로 교회를 어머니가 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권정성> 이건 성령님의 인도하심인데요.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아들의 편지 한 장으로 그 마음이 움직여지고 그 움직여지는 마음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손댈 수 없는 그 신주 딴지를 없애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가 우리 장로님의 가정에 이렇게 부어지는 그런 순간이 그 편지에서부터 시작이 된 거네요.
김무상>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어린 저를 먼저 콜링을 하셨고 또 그로 인해서 어머니도 이제 교회를 가시게 됐고 결국에는 권사 임직까지 하시고 35년 동안 신앙생활하다 돌아가셨고 제 막내 동생을 비롯해서 동생들이 이제 교회에 갔고요.
제 막내 동생은 이제 지금 대전에 있는데 그 대전에 있는 모 교회장로로 시무하고 있고
아버님은 좀 힘들었어요. 제가 교회를 가셔야 된다라고 말씀드리니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교회를 안 간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3년 전쯤부터 교회를 가셨어요.
권정성> 그럼 지금은 이제 천국에서 또 행복한 시간을 지내시겠네요. 장로님 아까 305장 찬양 좋아하신다고 그러셨는데 그 찬양 말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라는 찬양이 있으시면 한 곡 더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무상> 301장 찬송 지금 우리 쓰는 찬송가 301장인데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라는 찬송입니다.
권정성> 그러면요. 우리 김무상 장로님 좋아하시는 찬양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이 찬양 여수 시립 합창단의 연주로 한번 같이 하시죠.
M1 지금까지 지내온 것
권정성>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함께 들으셨는데요.
장로님 이 찬송이 장로님 마음에 꽂힌 이유가 뭘까요?
김무상> 네 제가 28살에 결혼을 했어요. 중매로 결혼을 했는데 저희 이모님께서 중매를 해 주셔 가지고 제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서 제가 생각을 해보니까 너무나도 제가 보잘것없는 사람이었고 특히 뭐 저희 집안 같은 경우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주 미신이 아주 충만한 가정이었는데 저희 아내의 가정은 대구의 선교 초기부터 예수를 믿은 집안이었어요.
그래서 아주 믿음이 신실한 집안의 따님이랑 제가 결혼을 하면서 아 정말 나 같은 이런 사람도 이런 과정과 또 이렇게 만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니까 너무나 감사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혼여행을 갔다 와 가지고요.
처갓집 교회를 간 거예요. 대구 감삼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갔는데 목사님께서 신혼부부가 왔으니까 특송해라 이러시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그때 제가 이 찬양을 불렀어요.
그 하나님의 은혜가 말할 수 없이 크신 은혜가 제가 살아온 그 여정 가운데 함께하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이 찬양이 마음에 왔습니다.
권정성> 장로님 장로님께서 마음에 두고 깊이 기도하시는 제목이 있으실까요?
김무상> 저는 지금 뭐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물론 필요한 때에 따라서 이렇게 기도를 하기는 했지만은 저는 그냥 하나님의 이끄심 대로 가겠다라는 그 마음으로 늘 기도를 했고요.
제 삶의 목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저는 기도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기도가 제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삶을 살게 해 주세요라고 저는 늘 기도하거든요.
그래서 그게 제 삶에 있어서 가장 뭐 중요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권정성>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이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끄시면 나는 그대로 가겠습니다라고 생각하시게 된 그런 신앙에 영향을 미치신 분은 누구일까요?
김무상> 제가 아까 말씀 중에 잠깐 나왔었지만 저희 작은아버지시거든요.
장로님이셨는데 제가 어린 소년 청소년 시절을 작은아버지 댁에서 일하면서 공부하고 이렇게 지내면서 작은아버지에게서 모든 신앙 교육이라든지 이런 거를 다 받았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중에도 지금도 기억나는 게 성도는 특히 중직자는 그 지역을 떠나거나 뭐 그렇지 않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절대 교회를 옮기지 마라 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뭐 그 말씀을 늘 지키려고 애는 쓰는데 이제 상황에 따라서 조금은 또 변하기도 하더라고요.
근데 요즘 이게 그 성도들의 어떤 교회의 수평 이동하는 이런 부분들을 이렇게 보면은 저는 작은아버지의 그 말씀이 늘 또 마음에 이렇게 맺히더라고요.
권정성> 작은 아버님의 신앙의 인도가 오늘의 장로님을 이렇게 굳건히 세우게 만들어 주셨네요.
장로님 이제 우리 만남의 시간을 이제 맺어야 되는 시간이 됐는데요.
장로님께서 우리 청취자들께 이렇게 같이 이 찬송은 꼭 나누고 싶습니다 하는 찬양이 있을까요?
김무상> 아 네 제가 이제 울산에서 우리 CBS 합창단에서 잠시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뭐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함께하지를 못하는데요.
그때 합창단으로 제가 활동할 때 우리 교수님의 지휘로 저도 함께했던 우리 CBS 합창단이 불렀던 찬양이 더그 홀크 곡의 승천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저는 그 찬양을 하면서도 참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요.
그 이후에도 우리가 찬양했던 그 곡을 늘 들으면서 너무 은혜를 많이 받고 있어요.
그 가사 중에 보면 마태복음 28장에 나오는 말씀이 그 가사로 나오는데요.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로다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 말씀이 우리 CBS 애청자 여러분에게도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시기를 축복하면서 이 찬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권정성> 장로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김무상> 네 감사합니다.
권정성> 더그 홀크의 곡입니다. 승천 함께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찬양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M2 승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