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방대원이 방호복과 20kg 상당의 장비를 착용한 채 100층에 도착한 모습. 김혜민 기자 '숨 넘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24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중동 엘시티(LCT) 비상계단에는 방화복이 스치는 '휙휙'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뜨거운 숨이 쏟아져 나왔다. 방화복 안으로 팔 끝까지 땀이 줄줄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날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LCT에서는 부산소방재난본부 주최 '전국 소방공무원 계단오르기 대회'가 열렸다. 모두 1층에서 101층까지로, 높이는 411m에 달한다. 이번 대회 참가자는 모두 970명으로, 전국에서 온 소방관뿐만 아니라 한국공항공사·부산항만공사 등 긴급구조지원기관 관계자도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방화복·간소복 착용 상태의 개인전과 단체전 등 경쟁부문 3종목과 비경쟁 부문 1종목으로 나눠 진행했다. 기자는 방화복과 화재 진압장비를 모두 착용하는 '방화복' 경쟁 부문에 참가해 소방관들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층수가 높아질수록 어깨에 멘 20kg 상당의 장비는 점점 더 뒤로 몸을 잡아당겼다. 70층을 넘기면서부터는 제대로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걸음을 멈추면 산소통이 몸 전체를 더 옥죄어오는 것 같았다. 옆으로는 소방관들이 2~3칸씩 계단을 오르며 휙 지나쳐가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목에서는 쓴 침만 나왔다. 고개를 들 기력도 없어서 앞서간 소방관들의 땀자국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80층, 90층을 향할수록 축 처진 몸은 물을 머금은 듯 더욱 무거워졌다. '그래도 다 왔다'는 감각을 느끼며 사력을 다하다 보니 이윽고 골인 지점이 보였다.
계단오르기 대회에 참여한 한 소방관이 완주 기념 메달을 받고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김혜민 기자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폭우를 맞은 듯 땀을 흘리면서도 힘들지만 보람차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고층 건물 출동에도 잘 대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반응도 보였다.
부산 해운대소방서 최원일 소방교(29·남)는 "구조대상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마음으로 오르니 고비는 없었다"며 "실제로 고층 건물에 불이 났을 때 계단을 이용해 구조하는 게 원칙이다. LCT는 부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만큼 어떤 초고층 건물에 출동을 나가더라도 힘들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라며 미소 지었다.
경남 거제소방서 강대영 소방경(46·남)은 "평소 등산도 하고 이번 대회를 위해 고층 아파트에서 연습도 해봤다. 연습할 때는 40층까지 크게 힘들지 않았는데 이날은 막상 15층부터 고비가 왔다"며 "하지만 다 오르고 나서는 정말 뿌듯했다. 사실 경남에는 고층 아파트가 많이 없지만 다른 지역에서 실제로 불이 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한 발 한 발 올랐다"라고 말했다.
올해 처음으로 대회에 참여한 한국공항공사 소속 이서영(41·남)씨는 "한국공항공사에서 소방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시 소방본부에 계신 분들이 시민들을 구할 때 얼마나 고될지, 누군가를 구출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방화복 분야 가장 빠른 기록은 21분 53초(경남본부 거제소방서 박효근), 간소복 분야 가장 빠른 기록은 14분 12초(경기북부 일산소방서 변정원)로 집계됐다.
이 대회는 초고층 건물 재난 대응과 연계해 2022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실제로 고층 건물에서 불이 날 경우 사다리차가 닿지 않는 구간부터는 소방관들이 직접 장비를 메고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현재 화재 현장에서 운용되는 굴절 사다리차는 아파트 23층(70m)까지만 도달한다. 400m 이상 높이까지 물을 뿌릴 수 있는 고성능 펌프차는 부산에서 단 1대만 운용되고 있다.
김조일 부산소방재난본부장은 "이번 대회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전국 소방공무원의 체력과 정신력을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라며 "소방조직 간 단합을 다지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