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승철, '3-2. Prototype', 캔버스 위에 아크릴, 210 x 240 cm(2025). 롯데뮤지엄 제공원본과 복제, 디지털 이미지와 실재성 사이에서 관념을 탐구해 온 작가 옥승철(37)의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이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26일까지 열린다. 첫 대규모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미지의 복제와 변형, 유통, 삭제를 주제로 한 80여 점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선보였다.
그는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를 원본 삼아 회화나 조각처럼 유일성을 지닌 전통 미술 작품을 표현한다. 디지털 이미지를 인쇄한 뒤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칠하거나 디지털 이미지를 조소 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전시명 '프로토타입'은 본래 대량 생산 전 단계에 시험 제작되는 시제품을 뜻하며 수정되거나 변형이 가능하다. 작가는 시제품을 제작하듯 비슷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호출되고 변형될 수 있는 유동적인 데이터베이스로 해석한다.
옥승철, '2-2. Mimic', 캔버스 위에 아크릴, 140 X 170 cm(2021). 롯데뮤지엄 제공디지털 이미지가 단 하나의 완성본이 아닌, 무수한 버전으로 존재하고 유통되는 오늘날의 이미지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다.
작가는 현대의 시각문화 속에서 이미지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방식에 주목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는 실체 없는 상태로 복제, 소비되며 인쇄물이나 전시 공간 같은 유통을 위한 물리적 매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전경, 롯데뮤지엄 제공작가는 이와 같은 비물질적 유통 구조에서 착안해 전시공간을 소프트웨어 유통 방식인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를 모델로 설계해 전체 전시장을 하나의 가상 공간으로 연출했다.
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전경, 롯데뮤지엄 제공3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공상과학영화 속 우주선 내부 같은 녹색 조명의 복도를 따라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각 섹션은 독립된 비선형적 동선을 구축하면서도 십자 복도를 매개로 서로 연결돼 관객이 각기 다른 경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의 섹션을 관람한 관객은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와 다음 경로로 관람을 이어나가며 이미지의 호출, 변형, 유통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디지털 환경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1섹션 첫 작품으로 높이 2.8m에 이르는 대형 조각상 '프로토타입' 세 점이 놓여 있고, 조각상 뒤로는 전면 거울이 설치돼 있다.
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전경, 롯데뮤지엄 제공'캐논' 시리즈는 고전 석고상을 연상시키는 조소를 중심으로 평면 조각과 회화, 드로잉으로 구성됐다.
'줄리앙' 흉상에서 시작해 대리석, 석고상, 회화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변형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의 이미지 소비 구조와 겹쳐지며 '원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옥승철 작가는 "점차 시리즈와 작업 방식이 다양해지는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작업을 한 번 정리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며 "대중적으로 알려진 회화 작업 외 조각 등 다양한 작업 방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전경, 롯데뮤지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