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제공정부가 원전 계약 의혹에 대해 관련 "정상적인 계약"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미국식 모델 사용을 압박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면서 불공정 계약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체코·사우디 원전 수출 과정에서 미국이 수출 자율성을 침해하고 기술 종속성을 심화시키려는 듯한 양태가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원전 업계에서는 한국 정부가 다소 손해 보는 측면이 있지만, 한미 원자력 협정 등 현실적인 제약이 큰 상황인 만큼 이번 협약이 관행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시각이 더 크다.
"50년 자동 연장 종신 계약" 질타에…'현실론' 내세운 산업부
연합뉴스1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불공정 계약 논란은 지난 1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한국전력공사(한전)과 웨스팅하우스가 IP 분쟁 관련 글로벌 합의를 체결하면서부터 불거졌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자사 기술(APR1400)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6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를 위한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던 때였던 터라 한수원으로서는 뼈아픈 일격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분쟁이 빨리 종결되면서 불공정 계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들이 쏟아졌다. △50년 계약 논란 △장비·서비스 계약 △기술 독립성 검증 △수출 허가 권한 △보증 신용장 발급 등이 의혹의 주요 내용이다.
비판의 초점은 특히 향후 50년간 기술 사용·검증·수출에 대한 제한을 수용했다는 데 맞춰져 있다. 한국은 체코 원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더라도 향후 50년 동안 북미 및 EU 시장에서 신규 원전 사업 입찰에 제한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원전 업계에서는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만 원전을 수출할 수 있다는 의혹도 일찌감치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합의 직후부터 다들 그런 식(수출 제한)으로 합의한 것 아니겠냐고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계약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노예 계약'이라는 질타도 쏟아졌다.
민주당은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50년 자동 연장의 종신 계약", "쌍방이 종료에 합의하지 않으면 5년씩 자동으로 연장되는 구조되어 있어 사실상 종신계약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지난 13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유럽 시장에서 원전 시장의 교두보를 확보한 측면이 있고, 체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추가 원전 두어기에 대한 협상도 예정되어 있다"며 "그런 부분에서는 나름 값어치 있는 협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미 간 신뢰의 이슈, (한미) 원자력 협정 이슈도 있기 때문에 국익이라는 긴 호흡으로 봐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하는 등 '현실론'을 강조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은 이 협정은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사용하거나 미국 기술을 기반으로 한 원전을 수출할 때 미국의 승인이나 기술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밑진 장사일까, 업계 관행일까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내 쪽에서 바라본 고리2호기(오른쪽 두 번째) 모습. 연합뉴스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큰 틀에서 정상적인 계약"이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수출 지역을 제한한 것 외에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비·서비스 계약을 맺거나 기술 사용료를 내는 것, 기술 검증 역시 업계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앞서 한수원·한전이 원전을 수출할 때 1기당 6억 5천만달러(약 9천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을 웨스팅하우스와 맺고, 1기당 1억 7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내는 조항이 문제가 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경희대 정범진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기술 사용료는 체코 원준 수출 전체 예산의 1.8%(1기 기준)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0년 계약이라고 해도 그 기간 동안 (미국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우리 고유 노형을 개발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한국 기업이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을 독자 개발해 수출하는 경우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도 역시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유승훈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기술 자립이 안 되어 있는 게 사실이고, 그렇다면 비용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국내 기업(SK온·LG에너지솔루션) 간에도 기술을 갖다 쓴 쪽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보상을 하지 않느냐"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