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현 국세청장, 윤창열 국무조정실장,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이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10.15 주택시장 안정화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3번째 부동산대책이 나왔다. 강도(强度)가 메가톤급이다. 6.27가계부채대책과 9.7주택공급확대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아파트값의 상승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10.15대책의 핵심은 서울 전 지역과 일부 인기 위성도시로까지 규제지역을 확대하고 고가 아파트일수록 대출액을 더 강력하게 조이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규제지역 내에서 아파트를 매입할 경우 2년 실거주의무가 부과돼 갭투자는 원천 불가능하게 됐다.
유례없이 강력한 대책을 들고 나온 것은 두 차례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지역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강력하면서도 빈틈없는 대책으로 가격상승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황진환 기자전문가들도 초강력 대책이 약발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서울 강남권과 한강 벨트의 패닉바잉 수요가 숨을 고르고 4분기 거래가 현저히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15일 "일단 불장이 일시적으로 주춤해질 수 있겠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정부대책에 민감한 공인중개사들 역시 '이번 조치로 가격이 잡히고 거래가 소강상태가 될 것이다. 특히 서울 외곽지역은 영향이 더욱 클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정부 4년에 걸쳐 쏟아내던 걸 한 방에 갈무리해 시장에 던진 이상 가격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
아파트 가격의 하향 안정화는 이후 전개될 시장상황을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출범 초부터 고강도 부동산대책을 잇따라 내놓은 이유와 이 정책의 수혜가 누구에 미칠지는 여러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고 본다.
우선, 이번 대책이 부동산 가격 잡기라면 대책을 만들고 발표한 정부에 직접적 수혜가 미칠 공산이 크다. 문재인정부 내내 대책을 내놓고도 결과적으로 부동산 상승을 막지 못해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던 게 얼마전의 일이다. 가격이 떨어질 확률이 어느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책을 보면 시장을 일거에 입맛대로 요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정부를 위한 대책이라는 것이다.
이중 삼중의 거래규제를 가하고 부동산을 사고 팔 수 있는 수단인 돈줄을 꽁꽁 묶었으니 이 상황에서 누군들 서울지역 아파트를 매입할 엄두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말로는 '실수요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부동산대책이 나올 때마다 실수요자들은 노심초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수도권을 삶의 터전으로 찜하고 수도권으로 찾아드는 사람들의 집구입과 이주실상은 이제 패턴화하는 양상이다. 좋은 교육을 받은 뒤 서울지역에 일자리를 구하지만, 당장 집은 구하지 못해 서울의 변방이나 인기 위성도시에 둥지를 튼 젊은 층들이 서울로의 진입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점은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우수 학군지로 진입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른바 한강벨트의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서울 외곽지의 집을 처분해도 추가로 10억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한데 대부분은 금융권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일으켜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나온 대책으로 인기지 주택의 경우 6억원한도에서 추가로 대출총액이 감소해 이제는 2~4억원 밖에 빌릴 수 없게 됐다. 이재명정부 초기 '인서울'을 결심한 한 부부는 인천의 아파트를 처분해 서울의 우수 학군지 아파트로 이주를 하면서 거래잔금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지만 결국 거래에 성공했다. 막차를 탄 경우였다.
서울 양천구 목동운동장 아이스링크 뒤로 목동 5단지와 6단지가 보인다. 이재기 기자 이번 대책으로 인해 이른바 '인서울 예비군들'의 서울로의 이주문은 닫혀 버린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아무리 맞벌이 부부라고 하더라도 이삼중의 대출규제가 쳐진 상황에서 10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일시에 조달하는 덴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아무리 수요를 눌러도 약발은 일시적일 뿐 수요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과거사례에서도 입증됐다.
실거주 의무가 부과된 이상 투기수요가 잡힐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덩달아 실수요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다. 때문에 10.15대책은 실수요자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서울지역의 중소형 아파트로 이주하는 실수요자들은 금융기관 이용의 문이 더 넓게 열려 있긴 하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그 수혜가 여러 계층에 골고루 미칠 때 의미가 커진다. 자금운용의 여력이 작은 시민이나 조금 더 큰 시민이나 모두가 같은 국민이다. 각각의 처지에 맞는 수준에서 의식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거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이번 대책에서는 이런 미세한 정책 디자인과 조정을 통해 각기 처지가 다른 실수요자들을 고려한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가격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포함시킨 점에서 '서울 아파트 가격을 잡으려는 의지'만 보인다.
한강벨트의 가격 상승이 풍선효과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서울 전지역도 부족해서 수도권 위성도시까지 토허제의 굴레를 씌운 탓에 내집 마련의 기회를 보고 있던 주민들은 내돈 내고 내집을 사고, 살고 싶은 곳으로 이주를 하는데도 정부·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주거정책의 본질은 모두가 자신의 처지에 맞는 집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시장의 다양한 수요와 요구는 애써 외면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시장의 수요 자체를 강하게 누르려는 의도만이 포함된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부동산 정책을 모두의 입맛에 맞게 정밀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가격 찍어누르기 식의 정책을 펴는 건 정부정책 역량의 현주소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