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한 범죄단지의 내부 모습(왼쪽)·캄보디아 이민국 구금시설의 내부 모습. 연합뉴스캄보디아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교민 이창훈(45)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캄보디아한인회와 소상공협의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해 현지 사정에 밝은 그는 캄보디아에서 한국인들이 범죄 조직으로부터 감금당하는 사건이 연일 보도되는 것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비췄다.
이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곳에 와서 감금당하는 한국인 중 일부는 '단순 피해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면서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자신이 하게 될 일이 불법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거나 충분히 추측할 수 있으면서도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캄보디아로 넘어와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씨는 캄보디아 범죄 조직에 대해 불법 환전·불법 카지노·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 등 각종 범죄가 총체적으로 묶인 거대한 '피라미드형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조폭들도 많이 넘어와 현지에서 중국 조폭과 협력해 일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한국인들이 우리 추산으로는 2천 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기존에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중국계·한국계 범죄 집단이 단속을 피해 캄보디아 시아누크빌로 근거지를 옮겨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감금·폭행을 당하는 한국인들은 피라미드 말단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현지 범죄 조직은 실적을 낸 만큼 벌어가는 일종의 '인센티브'제다. 이씨는 "막상 일을 시작해서 잘하다가 실적을 내지 못하면 조직 내에서 감금과 폭행을 당하면서 죽어 나가는데, 이같은 문제가 생기고서야 구조 요청을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좋을 땐 가만히 있다가 실적 못 내서 위협을 당할 때만 도와달라고 연락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어쩔 때는 인간적으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복잡한 속내를 털어놨다.
상당수의 현지 교민들도 이같은 속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같은 한국 사람인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냐'는 마음으로 구금·납치된 이들의 구조를 도왔다고 한다.
"인당 200만원, 사비 털어 도와…비행기 타기 직전 잡혀가기도"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범죄 단지로 추정되는 건물 모습. 연합뉴스이씨 등 현지 교민들은 피해자들을 국내로 보내는 과정에서 적잖은 사비를 털기도 했다. 구조된 피해자들은 현지 경찰서에 가서 여권분실신고서를 접수하고 경찰 행정 비용 등 약 100$(약 14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여권이 발급돼도 비자 기간에 따라 불법체류 벌금을 내야 한다. 이때 하루에 10$ 정도가 벌금으로 나오는데, 6개월 불법체류라면 약 1800$(약 250만 원)이다. 이런 비용들을 현지 교민들이 추렴해 충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씨는 "인당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그걸 누가 낼 수 있겠냐"며 "가족과 지인들에게 연락이 되면 다행이지만, 한국에서 이미 벼랑 끝에 몰렸던 사람들은 우리 관계자들이 사비를 털어 십시일반 모아 보내준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지 교민들의 도움에도 탈출한 피해자들이 다시 감금되는 일도 있다고 했다. 한인회가 나서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지만 역부족일 때도 많다는 것이다. 경찰 영사 등의 도움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씨는 "최근에는 한 피해자가 새벽 내내 주차장 차 밑에 숨어있다가 사람들이 많을 때 한인회 사무실 앞에 나타나는 일도 있었다"며 "어디 호텔에 나오지 말고 있으라고 해도 다시 붙잡혀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한번은 공항에 인도하고 출국 수속 절차까지 다 밟았는데도 비행기에 타기 직전에 잡혀간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경찰의 범죄 단지 단속에 걸려 현지에 구금돼있는 한국인 중 상당 수는 오히려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터치 속학 캄보디아 내무부 대변인은 "이민국에 구금 중인 한국인 80여 명이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그 이유에 대해 "자기 보스가 돈 주고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2천만 원 정도만 쓰면 풀리고 그렇게 다시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 국내로 송환될 경우 경찰 조사 등 형사·사법 절차를 밟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캄보디아에 남으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범죄국가' 낙인에 관광객 취소…주재원도 본사 복귀
캄보디아행 항공편 승객들 대상으로 안전활동 벌이는 경찰. 연합뉴스이씨는 이제까지 피해자 구출을 위해 물심양면 도왔는데 '현지 교민들이 범죄에 동조하고 있다, 동포를 등지고 캄보디아를 편든다' 등 일각의 부정적 여론을 보면서 허탈했다고 한다. 이씨는 "한인회장, 구조단장들은 살해 협박까지 받으면서 우리 국민들을 돕고 있는데, '교민들도 동조하고 있다'는 댓글들을 보면 그야말로 비통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최근 '캄보디아 '범죄소굴'이라는 낙인이 생기면서 현지 교민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이씨는 "실제로 캄보디아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며 "일반 시민들이나 단순 관광객들을 상대로 납치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 만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교민들의 생계도 위태로워지고 있다. 관광객이나 기업 주재원 등 한인들을 상대로 영업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교민이 많은데, 외교부가 캄보디아에 특별 여행 주의보를 내리면서 선교사 단체나 관광객 등의 방문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어서다. 일부 대기업 주재원들에게는 본사로 복귀 준비하라는 공지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캄보디아한인회는 지난 13일 성명서를 내고 "캄보디아 전체가 '범죄와 납치, 감금이 만연된 나라'로 오인돼 교민 사회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교인과 순수 여행객은 피해 사례가 없다는 것을 꼭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에서 구금되거나 온라인 사기 조직에 연루된 한국인들을 단순한 '피해자'로 볼 것이 아니라, 불법 행위에 자의든 타의든 가담한 이 사람들을 활용해서 거대한 국제범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캄보디아 내 구금 중인 우리 국민 60여 명을 이번 주 안에 송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캄보디아 경찰과 공조 수사 관련 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