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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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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2부 문을 열었습니다. 2부에서는요, 특별한 분과 함께 또 특별한 시를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슬픔이 기쁨에게, 수선화에게, 붙이지 않은 편지 아시죠?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시들인데 우리 정호승 시인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정호승> 반갑습니다.
◆ 박성태> 안녕하세요.
◆ 정호승> 반갑습니다.
◇ 박재홍> 우리 국문학도 박성태 실장이 아주 반가워하셨습니다.
◆ 박성태> 제 학점이 너무 낮아서.
◆ 정호승> 감사합니다.
◆ 박성태> 국문학의 분위기만 알고 있지 학식은 없어요.
◇ 박재홍> 그 학식을 오늘 키우기 위해서 정호승 시인님 오셨는데 최근에 새 시집을 내셨습니다.
◆ 정호승> 그렇습니다.
◇ 박재홍> 시집 이름이 편의점에서 잠깐 제가 이거 들고 있는데 굉장히 예쁘게 나온 시집인데 편의점에서 잠깐, 이 제목이 또 시도 안에 있더군요.
◆ 정호승> 있습니다.
◇ 박재홍> 어떤 작품인지 좀 소개해 주실까요? 전반적인.
◆ 정호승> 편의점은 지금 누구나 다 공유하는 그런 공간이잖아요. 예전에 제가 어릴 때는 구멍가게, 점방, 슈퍼 이런 말로 불리다가 지금은 공통적으로 다 편의점으로 이렇게 편의점은 계산을 하는 공간이에요. 물건을 주고 팔고 그래서 제가 밤늦게 편의점에 이렇게 우유 사러 자주 다니다가 편의점에서 사랑했던 한 남녀가 사랑했으나 헤어졌던 한 남녀가 우연히 만난다면 서로 어떻게 될까 그런 시적 상상을 한 번 해본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의 어떤 사랑은 서로 계산하고 이익을 따지고 무엇이 나에게 순이익일까 이런 걸 따지는 어떤 사랑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작 계산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편의점에서는 이별한 이 상태에서 그들은 어떤 계산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 시를 한번 써봤습니다.
◇ 박재홍> 편의점에서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고, 박성태 실장님은 편의점에서.
◆ 정호승> 편의점에서도 우연히 만날 수는 있죠, 없는 거는 아닙니다.
◇ 박재홍> 저도 편의점 관련된 시도 보면 굉장히 사랑이 죽음이 되는 시간은 흘러 오늘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다시 만났으나 당신이 산 캔맥주는 당신이 계산하고 내가 산 컵라면은 내가 계산한다.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없는 불량품.
◆ 정호승> 그러니까 예전에 사랑했을 때는 누구 한 사람이 계산할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근데 이별을 했기 때문에 각자 계산하는데 그것이 굉장히 쓸쓸하죠. 쓸쓸하고 우리는 이별한 상태에서는 이별 이전에 있었던 그 사랑, 그 사랑의 가치 그것을 이별한 상태에서는 그 사랑을 후회하고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히 사랑했다, 이렇게.
◇ 박재홍> 그렇죠.
◆ 정호승>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는 지금 이별한 상태이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그 사랑은 소중하다. 소중한 가치다. 그것을 후회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이 저는 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별 이전의 사랑을 무가치하게 생각할 때 저는 그것은 당연히 그 사랑이라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이별이 이루어진 거다. 그래서 사랑은 제가 생각할 때는 이별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죽음이라는 이별도 존재하죠.
◇ 박재홍> 그렇군요. 이별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일 수도 있다.
◆ 정호승> 이별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 박재홍> 밖에 있는 스태프들이 놀라고 있어요, 지금. 이번 신작이 15번째인데요. 3년 전에는 슬픔이 택배로 왔다. 발표하신 다음에 좀 작업이 쉽지 않으셨다.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 정호승> 제가 올해가 한국 문단에 등단한 지 53년째이고 슬픔이 택배로 왔다까지가 14번째 시집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만 해도 약 1200편 정도의 시를 쓰고 발표했는데 문득 시를 내가 너무 많이 쓴 게 아닌가, 대량 생산했다. 비록 53년이라는 세월은 있었지만 시집을 너무 많이 출간한 게 아닌가. 윤동주 시인은 생전에 시집 한 권도 출간한 적이 없는데 그런 어떤 자성, 일부러 제가 자성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문득 그런 자성의 시간이 저한테 주어졌어요. 그래서 내가 너무 그 시를 많이 썼다는 사실에 조금 스스로 이제는 자제해야 된다.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보니까 시가 저로부터 그냥 도망을 가버리고 없는 거예요. 제 가슴 속에는 항상 시의 샘이 있는데 어느 날 보니까.
◇ 박재홍> 샘이 말랐어요.
◆ 정호승> 샘물이 말라버렸더라고요. 그런데 또 어느 날 문득 시인은 항상 시를 써야 존재하는 존재다. 시인은 항상 현재성 속에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시를 쓰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상실되는 거다.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다시 메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메모가 쌓여서 이제 나중에 다시 시를 쓰게 됐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원래는 시샘이 말라서 더 쓰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또 시샘에서 물을 퍼 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씀.
◆ 정호승> 예, 샘물은 물이 한 번 고이기 시작하면 계속 고이는데 그 물을, 샘은 물을 퍼야만 또 계속 고이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 박재홍> 그러네요.
◆ 정호승> 그냥 물을 푸지 않으면 그 샘은 또 말라버리거나 썩어버리죠. 그래서 이 물이 고일 때 계속 이 시의 샘물을 내가 퍼내서 다시 시를 써야 된다. 그 결과가 125편이 실린 편의점에서 잠깐입니다.
◇ 박재홍> 125편의 시를.
◆ 박성태> 근데 저도 편의점에 이제 종종 뭘 사러 자주 가는데 편의점에서 우연히 담배를, 1명은 캔맥주를 1명은 컵라면을 사러 가서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 만났다. 이거는 편의점에 가셨을 때 그 상상을 하시는 거잖아요.
◆ 정호승> 상상을 했죠.
◆ 박성태> 그러면 제가 볼 때 일상적인 장소나 어떤 사물 이걸 보고 거기에 하나의 이야기를, 연민과 여유가 있는 이야기를 담아서 이제 시를 주로.
◆ 정호승>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편의점에서 잠깐은 약간 서사가 있는 사랑했던 한 남녀가 우연히 만나서, 우리가 지하철에서도 20년 전에 사람도 만나요. 우연히 만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사람은 죄짓고 못 산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만나는 거예요. 저도 몇 번 생각도 하지 않은 사람을 지하철이나 길 가다가도 만납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도 저는 얼마든지 우리가 만날 수 있다. 그것도 한때 진실로 사랑했던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 헤어지는지 모르겠지만 만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났을 때 서로 얼마나 난감할까. 그리고 서로 헤어진 이후, 이별 이후의 삶을 서로 위로해 줄까, 어떡할까. 이런 많은 상상을 하게 되니까 그런 시를 쓰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미 우리는 그 사랑이라는 이름의 어떤 불량품이다. 그러니까 이별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별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된다. 우리는 이별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또 폄하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별이 없으면 사랑은 존재하지도 않죠.
◇ 박재홍> 진실은 순간에 진실로 진실이 되고.
◆ 정호승> 그렇습니다.
◇ 박재홍> 또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진실은 다시 소중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의미를 말씀해 주신 건데 특별히 또 우리 작가님의 시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시선이 되게 따뜻하세요. 말씀도 굉장히 따뜻하게 해주고 계시고 이번에도 보면 실패, 노숙, 바보 이런 단어들이 많이 있거든요. 뭐랄까 낮은 자들, 시선도 낮은 자들을 향한.
◆ 정호승> 예, 저는 편의점에서 잠깐 제일 첫 번째 있는 시가 패배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그래서 한 시집에서 가장 먼저 내세우는, 첫 번째 내세우는 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패배에 대하여 이 시를 나는 이제 패배가 고맙다. 이렇게 시작되는데 글씨를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지금까지 항상 이기기 위해서 그러니까 패배의 반대말이 승리라면 항상 승리하기 위해서 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즉 성공하기 위해서 내가 현명해지기 위해서 똑똑해지기 위해서 내가 어리석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항상 소유하기 위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다 그러한 어떤 욕망을 가지고 살잖아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보니까 다 실패하고 이기지 못하고 다 지고 현명하지 못하고 다 어리석고 바보 같고 그렇게 살아온 내가 오늘의 나의 모습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승리하고 그다음에 성공하고 소유하고 현명하고 이렇게 살아가려고 그러잖아요. 너무 그렇게 노력을 해 봐도.
◇ 박재홍> 아등바등.
◆ 정호승> 인생의 어떤 그 후반기에서 막바지에 가면 저는 지금 7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70대 중반의 나이가 지나면 그것이 사실은 현명했던 게 아니고 어리석었던 거고 내가 소유했던 것이 아니고 잃은 것이고 그다음에 내가 이겼던 것이 아니고 진 것이고 또 이런 것으로 된다는 것을 일찍 깨달으면 보다 더 자기 자신의 삶이 보다 더 우리 인생이 아름답다고 했을 때 보다 더 아름답고 더 소중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박재홍> 이 패베에 대하여 이 시가 편의점에서 잠깐 이 시집에 12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12페이지를 펴서 우리 시인님께 바로 낭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 정호승> 제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 박재홍> 제가 펴겠습니다.
◆ 정호승> 예.
◇ 박재홍> 감사합니다. 준비되시면.
◆ 정호승> 제가 낭독하겠습니다. 패배에 대하여.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한때는 패배했기 때문에 분노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분노도 가을바람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무조건 항복하지는 않았다. 인생의 패배자는 없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의 시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 박재홍> 감사합니다. 우리 정호승 시인님의 음성으로 직접 들었습니다. 패배에 대하여.
◆ 박성태> 근데 처음에 쓰셨던 시가 기쁨이 슬픔에게인가요?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 박성태> 죄송합니다.
◆ 정호승> 1979년입니다.
◆ 박성태> 그것도 제가 오면서 봤는데 전반적으로 패배에 대하여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이렇게 지치고 쓰러져서 낙담하고 있는 분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야, 인생 별거 아니야. 그냥 네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거야. 그런 걸 좀 많이 느꼈거든요. 그렇게 제가 볼 때 그런 마음을 독자들에게 좀 전해주고 싶은.
◆ 정호승> 그렇습니다. 혹시 지금 자기 인생이 패배했다고 생각되시는 분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다 패배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인생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패배하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다. 이렇게 이해를 했을 때 자기 자신을 보다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너는 맨날 왜 이래? 똑똑하지도 못하고. 원래 똑똑하지 못한 것이 어떤 의미에서 진실이 아닌가.
◇ 박재홍> 당연한 거죠.
◆ 정호승> 예, 진실은 똑똑하지 못한 게 진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보 같은 것이 바보 같은 어떤 내면을 가진 사람이 사실은 진실된 사람이고 오히려 똑똑한 것이 아닐까 요즘은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듭니다.
◇ 박재홍> 박성태 실장님이 또 똑똑한 척을 안 하시기 때문에 더 멋있습니다.
◆ 박성태> 저는 뭐 다들 좀 얼빵해 보인다. 제가 보니까 우리 정호승 시인님께서 패배를 계속 안고 사셨기 때문에 패배를 인정한, 결국은 승리자예요. 일흔다섯이신데 예순 안 되는 피부를 가지고 계세요. 승리자입니다. 항상 마음을 너그럽게 넓게 가지셔서.
◇ 박재홍> 그러니까요. 선생님 책 보면 시집 중에 저도 되게 너무 좋게 읽었던 시가 있어서, 그 순댓국을 먹으며라는 시입니다. 이걸 한번 저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순댓국을 먹으며. 비 오는 날이면 순댓국을 먹는다. 겨울비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가 좋지만 봄비 오는 날에는 순댓국이 좋다. 순댓국을 먹으면 그치지 않는 눈물이 그친다. 죽은 팔다리에 새순이 돋아 봄눈 내리는 보리밭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순댓국에 소금을 조금 타서 먹으면 과거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이별이라는 과거도 아름다워진다. 순댓국은 서로 겸손하다. 순댓국은 스스로 낮아지고 가난하다. 순댓국을 먹는 사람들은 평화롭다.
◆ 정호승> 감사합니다.
◇ 박재홍> 순댓국.
◆ 박성태> 이건 정말 박재홍 앵커의 그 딱 시에 어울리는 목소리.
◇ 박재홍> 그렇습니까?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순댓국 먹고 싶구나라는 생각과 저는 이 구절 중에 순댓국은 서로 겸손하다. 이 구절을 딱 읽으면서 식당에서 다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같은 그릇을 먹으면서 다 같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는 그런 모습이 상상이 되더라고요. 맞다, 모든 사람들 다 차이가 있지만 순댓국, 서로 똑같은 그릇 앞에서 다 겸손하게 한 그릇을 딱 먹는 그 모습.
◆ 정호승> 그렇습니다. 우리가 너무 고급한 음식 앞에서는 자기 자신도 고급해져야 되는 입장이 되는데 자기 자신이 내면은 고급하지 않으면서도 외면은 고급해져야 될 어떤 압박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순댓국을 먹으면 순댓국 앞에서는 굉장히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순댓국도 맛있고요. 일단은.
◇ 박재홍> 맛있습니다.
◆ 정호승> 맛있습니다. 근데 순댓국이 마치 나한테 편안함, 평화스러움을 준다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구절 중에 순댓국을 먹으면 내가 현재 평화스럽기 때문에 과거를 변화시킬 생각이 없어진다. 저는 살면서 한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다른 분도 그렇겠지만 내 과거가 변화가 된다면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 현재 그 과거가 변화가 된다면 내 과거를 변화시키고 싶다. 그런데 과거는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의 집합체가 과거입니다. 근데 과거를 변화시키고 싶은 그 욕망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거든요.
◇ 박재홍> 그렇죠.
◆ 정호승> 그런데 순댓국을 먹으면 내가 현재 마음도 편안하고 순댓국도 맛있고 배부르고 또 그리고 비싸지도 않고 그래서 또 나처럼 순댓국 먹는 사람 보면 다 편안해 보이고 그래서 굳이 과거를 변화시킬 그런 노력은, 변화되지 않는 과거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노력 그거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더 평화스러워진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박성태> 순댓국을 먹으면 혹시 관찰에 의해서 나온 시상인가요? 아니면 경험에서 나온 시상인지, 경험과 관찰이 어우러진 건지.
◇ 박재홍> 순댓국을 드시다가 나온 시상이신가요?
◆ 정호승> 그렇죠. 순댓국, 제가 우리나라 전국을 다녀도 순댓국집 없는 데가 없습니다. 굉장히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순댓국을 즐겨서 많이 먹는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어디 지방을 가거나 식사를 그래도 해야 될 때 뭘 먹지? 이게 굉장히 큰 숙제거든요. 주변을 쭉 보면 순댓국집이 바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전국 곳곳마다 순댓국집 없는 데가 없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의 한 종류가 순댓국이다. 그래서 저는 서슴없이 순댓국집에 가서 순댓국 먹습니다. 소금을 조금 타서, 짠 거 많이 먹지 말라고 그러는데 소금을 조금 타서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 박재홍> 명심하겠습니다.
◆ 박성태> 이게 만약 관찰로 떠오른 시상이라면 혹시 그 대상이 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좀 들고 저는 사실 기분이 나쁘거나 좀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하거나 그럴 때 혼자 술을 먹어요. 술을 먹는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 혼자 순댓국을 먹습니다. 저녁에 순댓국, 특히 비 오는 날 말씀하신 대로 순댓국집 가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딱 먹으면 사실은 스트레스받거나 뭔가 우울하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사실은 그런 걸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풀고 그게 아니라 아예 그런 생각이 없고 그냥 따뜻하고 편하게 멍하니 TV를 본다든지 아니면 멍하니 스마트폰을 본다든지 그러면서 그 기분이 풀리는 시간이 있더라고요.
◇ 박재홍> 죽은 팔다리에 새순이 돋는군요.
◆ 박성태> 그런 건가요?
◇ 박재홍> 예, 여기 시에 그대로 있습니다.
◆ 박성태> 순대를 통해서 새순이 돋는, 그러니까 그게 그냥 거기에 고민해서 그거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평온한 시간으로 해소가 되는.
◆ 정호승> 맞습니다.
◆ 박성태> 저도 왜 제가 그런 날 순댓국집을 갔는지 몰랐는데 지금 시를 들으니까 저도 그래서 제가 가는구나 알게 됐습니다.
◇ 박재홍>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부자나 가난한 자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순댓국. 또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어머니.
◆ 정호승> 어머니.

◇ 박재홍>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또 어머니는 또 작가로서 어떤 의미이실까요? 어머니.
◆ 정호승> 모든 작가의 어머니들은 그분들의 작품의 어떤 본질을 형성하는 존재가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가 그걸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는가, 구체적으로. 저는 그게 굉장히 궁금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에는, 신의 사랑에는 모성적 측면이 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신의 사랑은 모성과 닮았다는 거죠, 어머니의 사랑과 닮았다. 맞아, 내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굉장히 쉽게 이해가 됐어요, 저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저는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저한테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인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시는 항상 슬플 때 쓰는 거다. 그런 말씀을 저한테 하셨어요.
◇ 박재홍> 슬플 때.
◆ 정호승> 그래서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어떻게 시의 어떤 그런 본질 이런 것을 알고 계실까, 그러고 보니까 제가 슬프지 않을 때 쓴 시가 없는 거예요. 다 제 마음속에 슬픔이 어떤 비극적 요소가 가득할 때 시를 쓴 거예요. 그래서 시는 어디 있느냐? 우리 삶에 비극에서 시는 쓰여진다. 모든 예술은 비극에서부터, 인간의 비극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머니가 시는 슬플 때 쓰는 거다. 그러시면서 저를 위로해 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남기신 그 시에 대한 한 말씀이 제 인생에 아주 중요한 말씀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 박재홍> 요즘은 근데 옛날에 보면 시집 선물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좀 그런 경우는 좀 드문 것 같기도 하고 시를 좀 가까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정호승> 요즘은 시의 시대는, 시의 시대는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시집이 판매가 많이 되던 시대는 사라졌습니다.
◇ 박재홍> 그런가요?
◆ 정호승> 그래서 80년대 90년대에는 시집이 10만 부도 나가고 20만 부도 나가고 어떤 시인의 시는 100만 부도 나가고 그런 시대가 80~90년대에 있었는데 지금은 1만 부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를 얼마든지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 게시된 게시자들이 올린 시대의 원문은 거의 제가 판단할 때는 80% 이상은 원문이 훼손되거나 파괴돼서 게시되고 요즘은 또 AI 시대라 예를 들어서 가을비에 관한 시 한 편 들려줘 하면 AI가 시를 생성해서 들려줍니다.
그런데 AI가 잘못하는 게 뭐냐 하면 제 이름을, 예를 들어서 정호승 하고 이름을 붙여서 AI가 생성한 시를 요청자한테 들려주는 거예요. 그럼 요청자는 이게 제가 쓴 시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AI가 생성해서 준 시를 제 이름을 달아서 준 시를 제가 쓴 시로 착각하고 그것을 믿고 신뢰해서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는 거예요, 또 페이스북이나 이런 데. 그래서 엉터리 시가 요즘은, 제 경우에는 하루에 한 5편 정도 생성돼서 확산되는 경우입니다.
◇ 박재홍> 선생님이 쓰지 않았는데 AI가 선생님 이름을.
◆ 정호승> 그렇습니다. AI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AI한테 물어봤어요. 이런 경우에 누구의 잘못이고 누구의 책임이냐 그랬더니 게시자의 책임. AI는 발을 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인터넷과 AI 시대에 시는 망했다. 저는 한국 현대 시는 망했다. 그런데 시를 사랑하신다면 반드시 시의 원문을 시집에서 찾아서 향유하시는 게 가장 시를 사랑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올바른 태도다. 그런 이야기를 제가 해야 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선생님의 시집 편의점에서 잠깐, AI 보지 마시고 꼭 책을 사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 우리 선생님 시가 나온 거 알고 계시죠?
◆ 정호승> 알고 있습니다. 근데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 박재홍> 그러세요? 46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또 TV에도 나오는 작품에 인용되는 모습, 굉장히 뿌듯하실 것 같습니다. 오늘 시란 무엇인가 시의 세계에 흠뻑 젖었던 그런 시간이었어요. 우리 정호승 시인님, 고맙습니다.
◆ 정호승>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