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성평등가족부 현판식에서 정구창 차관 등 내빈들과 제막하고 있다. 연합뉴스"구조적 성(性)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의 문제다"(윤석열 전 대통령, 2022년 2월 7일 한국일보 인터뷰 중).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초대 장관, 2025년 10월 1일 현판식에서). 여야의 필리버스터 대치로 주목받은 정부조직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이달 닻을 올린 부처가 있다. 기존의 여성가족부가 확대 개편된 '성평등가족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2년 1월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가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며 '존치 논쟁'에 불을 붙인 지 약 3년 9개월 만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가부는 6·3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기까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여소야대로 현실화되지 못했을 뿐 폐지 가능성은 상수였고, 장관 사퇴 이후 '대행 체제'가 1년 7개월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개편의 의미는 간판 교체 그 이상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CBS노컷뉴스는
검찰청 폐지와 더불어 전 정부와의 최대 차별점이 된 성평등가족부(약칭 성평등부) 출범의 의의와 과제를 짚어봤다.
24년 만에 빠진 '여성'…"제 이름 되찾은 것"
'여성'을 떼어내는 대신 '성평등'을 붙인 명칭 변경은 부처의 달라진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여성부'란 이름으로 부처가 세워진 지 24년 만에 '여성'이란 단어가 아예 빠진 것이다.
성평등부 김권영 정책기획관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성별의 차별을 완화하고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기존의 명칭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을 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성별간의 차별, 기회의 불균등 등을 완화하고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구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다만 영문 명칭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로 종전과 동일하다.
여성계에서 "눈에 띄는 변화"(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라는 평가와 "원래 제자리를 찾은 것"(정현백 前여가부 장관)이라는 반응이 함께 나오고 있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초대 여가부 장관을 지낸 정현백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노동 분야 등에서의 성평등 강화가 실질적인 경제 성장, 선진국으로의 발돋움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도
"여가부란 이름 자체가 임시적인 명명이었다. (설립 당시) 한국 여성의 상황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적으로도 원래는 '성평등'이란 말이 통용돼 왔다"고 짚었다. 또 특정 성별이 명칭에 들어가다 보니, '여성만 우대한다'는 오해가 커진 것도 배경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도
△프랑스 성평등·반(反)차별부 △스웨덴 성평등·일생활부 △캐나다 여성·성평등·청소년부 등 성평등(Gender Equality) 기능 중심으로 관련 부처를 운영 중이다.
물론 포장만 바뀐 것은 아니다. 이번 개편에 따라, 성평등부는 기존 '2실 2국 3관 1대변인 27과' 체제에서
'3실 6관 1대변인 30과'로 몸집을 불렸다. 소속 정원도 277명에서 294명으로 늘었다.
당면 과제는…'임금공시제'·'미프진 도입' 등 국정과제 현실化
개편 후 '3실 6관 1대변인 30과' 체제를 갖추게 된 성평등가족부. 성평등부 제공알맹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평등정책실'의 신설이다. 해당 실(室)은 기존의 여성정책국이 바뀐 △성평등정책관 △고용평등정책관(신설) △안전인권정책관(前권익증진국)을 관할로 두고 성평등정책을 총괄, 추진하게 된다.
특히 국정 기조와 맞물려 이목이 쏠리는 대목은
고용노동부의 업무를 넘겨받은 '고용평등정책관'이다. 이재명 정부는 최근 확정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서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해 성별 임금실태를 체계적·종합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용평등정책관은
성별 임금 격차 개선에 관한 사항과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 경력단절 예방정책 등을 맡는다. 적극적 고용 개선조치 및 성별근로공시제 등도 모두 여기 딸린 업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여전히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성평등부가 가시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남녀 월평균 임금차이는 2023년 기준 29.3%로, OECD 평균인 11.3%의 약 2.6배다.
성평등부도 이같은 기대감을 인식하고 있다. 김 정책기획관은
"노동부에서 가져온 고용평등 관련 정책은 앞으로 성평등정책실에서 추진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며 "조직체계를 더 공고히 하고 세부적인 정책 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노동부와도 긴밀히 협력할 방침이다.
장관 재임시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적극 주장한 정 교수는 "여성고용이 저조한 부분에 대해 조사하고 권고할 부분이 생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부처 간 협업을 실질화하는 한편, 대통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느냐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성평등부에게 노무 감독 등을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찬가지로 국정과제인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도 숙제다. 2019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낙태죄가 비범죄화된 후 여태 진전이 전무한 탓이다. 성평등부가 미프진(임신중지 약물) 도입의 주체는 아니지만, 유관부처인 만큼 '부처 칸막이'를 넘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여당인 민주당도, 보건당국도 서로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는 상태"라며 "심지어 관련 논의를 2019년도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된 사안들은 정부가 더 과감하게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용어 논쟁 등 불씨 여전…여권은 "집행력 제고에 집중해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2020년 10월 8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천신만고 끝의 개편에도 부처를 둘러싼 논쟁의 불씨는 살아 있다. 단적으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성평등'이란 표현 자체에 지금도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다.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 소속이자 행안위 야당 간사인 서범수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부처) 명칭이 제일 문제라고 본다. 안 그래도 극단화된 사회에 그런 말(성평등)을 붙이는 것은 사회 분열을 더 조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야권과 교계에서는 성평등부 출범이 '차별금지법'을 향한 마중물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하고 있다.
반면
여권은 부처 관련 소모적 논쟁을 반복하기보다는 성평등부가 실질적 성평등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게 우선이라고 반박한다.
과거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을 지낸 조국혁신당 정춘생 정책위의장(성평등위·행안위)은 "법안 심사시
계속 강조했던 것은 '집행력 있는' 기관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여성부를 최초 창설할 때도 반대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여성정책을 본 궤도에 올리고 (권익의) 많은 신장을 이루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편 밑그림을 그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몸담았던 민주당 김남희 의원도 "예산이 조금 늘긴 했지만 (주로) 가족 지원 쪽 예산이 늘어난 것 같다"며 "최근 화두가 된 여성안전이슈 등에 대응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려면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꼭 추가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