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정동영 통일부장관. 연합뉴스, 윤창원 기자20년 묵은 자주파와 동맹파의 마찰음이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라인에서 다시 새어나오고 있다. 실용외교를 기치로 양 진영을 모두 기용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시간이 지나 엇박자로 표출되면서 엄중한 한반도 정세를 눈앞에 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자주파·동맹파 동시 기용…출범부터 아슬아슬한 동거
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취임 초기부터 인사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일었던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정을 거치며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새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인선서부터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자주파'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의 불협화음을 우려하는 시각은 컸다. 대표적인 자주파인 이종석 국정원장,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동맹파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함께 기용되면서다.
취임 초반 진보정부의 반미·친중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새 정부의 외교전략은 자연스레 동맹파를 중심으로 짜였다. 당사자들도 "지금까지 자주파도 동맹파도 아닌 실익을 따라왔다(이종석 국정원장 인사청문회)"고 반박하며 두 진영을 바라보는 우려는 기우로 그치는 듯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두고 찬반이 나뉘었지만 결국 이 대통령이 참석을 택하면서 동맹파에 힘을 실어준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 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염두에 두고 불참이 낫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END·두국가론 엇박자에 급기야 "동맹파 너무 많아" 직격
하지만 최근 교착 상태에 접어든 한미 관세협상과 북한 두 국가론을 두고 엇박자는 새어나오고 있다. 급기야 대표적인 자주파로 분류되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동맹파가 너무 많다"고 공개 저격하며 암암리에 퍼졌던 두 세력의 알력싸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논란은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발표한 'END이니셔티브'를 둘러싸고 증폭됐다.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로 구성된 END 구상을 두고 비핵화가 후순위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위 실장은 "세 요소간 우선순위나 선후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세 가지 중 맨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대화이고 교류"라며 결이 다른 발언을 내놨다. 이후에도 정 장관은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고 말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남북 두 국가론'에 대해서도 정 장관은 "남북은 사실상 두 국가"라고 말했지만, 위 실장은 "남북관계는 통일될 때까지 잠정적인 특수 관계라는 것이 기본 합의서의 입장"이라고 반박하며 부처간 엇박자 논란은 심화하고 있다.
20년 묵은 해묵은 갈등…"정부 내 대외 메시지 조율 필요"
정부의 외교안보를 이끄는 두 축인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이라크 추가파병과 용산기지 이전 등의 사안을 두고도 자주파와 동맹파는 정면충돌했다.
당시 사석에서 동맹파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들의 대미외교를 깎아내렸다가 청와대에 투서가 접수되면서, 위성락 당시 북미국장의 인사조치로 이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해묵은 갈등이 한미 관세협상과 북핵, 미중 정상회담 등 엄중한 안보현안을 앞두고 파열음으로 표출된다는 데 있다. 더구나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라는 대형 국제외교전을 안방에서 치러야 하는 정부에서 각기 다른 메시지가 나가는 데에 대한 위험의식도 상당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어느 때보다 일치된 대외 입장이 중요할 때지만 당장 튀는 발언에 대한 설명이나 수습을 어느 부처에서 맡는지도 난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BBS라디오에서 "정부 전체의 공식 입장이 나온 후에 각 부처가 그 입장에 따라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부처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면 굉장한 혼란이 온다"며 정부내 메시지 조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