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2일 공개한 이재명 대통령의 APEC 홍보영상 촬영 비하인드 컷. 연합뉴스이달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미국·중국·일본 정상의 참여가 예정되면서, 경주는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메가 이벤트'의 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과의 정상회의를 통해 그간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며 다소 후순위였던 한중 관계를 다지는 한편, 미국과의 관세협상 등 현안을 마무리할 기회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북미 대화에 대한 기대가 나왔지만, 예상보다 짧게 방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능성은 낮아진 상태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에서 열리는 첫 다자회의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의 성과에 대한 가늠자가 될 수 있다.
미·중·일 등 20여개국 정상 참여…우리 정부 '외교 역량 총동원'
이번 APEC 정상회의에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20여개국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공교롭게도 러시아를 제외한 한반도 주변 주요 강대국 정상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APEC 전후로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행사가 예정돼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모두 참석하는 다자회의는 올해 사실상 APEC 정상회의가 유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우리 외교 정상화를 선언한 데 이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고 한미·한중 양자회담 등을 통해 국익을 최대한 확보한다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실용 외교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이뤄질까…중국과의 대화도 주목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2019년 6월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정상회담 이후 6년만이다. 한미간 현안이 산적한 만큼 APEC 정상회의 계기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질지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우선 조지아주 한국 노동자 구금 사건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미국 비자 제도 개선에 관한 현안이 있다. 양국은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첫 워킹그룹 회의를 개최하고 논의를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500억 선불' 발언으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관세 협상의 후속조치가 APEC 정상회의 계기 양국 정상 만남을 통해 마무리될지도 관심이다. 통상 당국이 정상회의까지 남은 기간 동안 실무 및 고위급 협상에서 대미 투자 관련 이견을 얼마나 좁힐지가 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성패를 결정할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대미 투자 이견과 관련한 질문에 "현실적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이기 때문에 대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관세협상) 목표지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차기 정상회담 계기일 것"이라며 "APEC 때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동맹현대화, 전세작전통제권 전환 등 안보 협상 의제도 거론된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이나 미국산 무기체계 구매 등 한미 간 안보 분야 논의는 상당 부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일 공개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보 분야는 이미 대강의 합의가 이뤄졌다"며 APEC 정상회의 전 돌파구를 만들어 발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1년만에 방한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경우 APEC 계기 국빈 방문 형식으로 방한하기 때문에 이 기간 전후로 서울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며 한미일 동맹을 다지며 최우선 순위로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우려도 나왔지만, APEC 계기 중국과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의 관계 발전을 모색하고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신임 총리와도 양자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과거사 문제와 현안을 연계하지 않는다는 '투트랙 원칙'에 합의하고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를 논의했지만 신임 총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관세 협상' 등 두고 미중 패권주의 전쟁 최전선 되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또다른 관전포인트는 미중 정상회의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줄곧 긴장 관계를 유지해 온 미중 정상의 첫 대면이 경주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 안보는 물론이고 국제무역질서 전반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최근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간 협상 교착 상황을 설명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달 말 한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회담이 열린다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미중 정상이 나란히 한국을 찾는 것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13년만이다. 이번에는 특히 국제무역질서를 주도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미중 양국의 정상회의를 통해 통상 등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는 이슈에 대한 입장을 엿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과거의 통상 시스템은 유효하지 않다며 관세 협상으로 각국을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응해 시 주석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고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 역시 최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무역 보호주의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며 미국 견제에 한국까지 동참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만일 양국 간 갈등이 재점화할 경우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자유무역의 가치와 관세 전쟁 사이 충돌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 APEC 다수 회원국들은 어느 한쪽에 명확히 서기보다 자국의 실리를 따지는 복잡한 외교적 셈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의장국으로서의 한국의 역할은 강조된다. 한국은 미중 양측의 대립을 관리하는 동시에 APEC 정상회의의 협력과 화합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이 어떤 결론을 낼지, 이 것이 한반도 안보환경과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네트워크 구축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란 관측이 나온다.
북미 정상간 '깜짝' 만남?…트럼프 방문 일정에 달렸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회동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예상보다 짧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능성은 한층 낮아진 상태다.
일본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7~29일 일본을 방문하는 일정을 조율 중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표는 말레이시아 아세안 회의 참석 후 27일 일본을 찾고, 이후 29일 한국에 입국하는 순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아시아 순방에 많은시간을 할애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APEC 개막일인 31일까지 한국에 머무를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외교가의 시각이다.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체적인 스케쥴을 고려하면 과연 북한과의 깜짝 만남이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짧은 방한 일정 가운데 미국 입장에서 이번 APEC 참석 계기 가장 중요한 외교 일정은 중국 정상과의 회담이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지난 2019년 6월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예고 없이 한국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판문점에서 만났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이번 계기에도 이같은 깜짝 만남이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나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유엔 한국 대표부에서 이뤄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양국(북한과 미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난다면 환상적일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를 바란다. 그도 이 요청을 환영했으며 북한과의 대화 재개 의사를 밝혔다"고 전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피스메이커(Peace Maker), 페이스메이커(Pace Maker)'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올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김 위원장도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린다면'이라는 전제를 달며 "미국과의 '조건부' 대화 의사를 밝혔다. 이같은 배경이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희망에 힘을 실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하루나 이틀에 그친다면 가능성은 크게 낮다는 것이 전반적인 시각이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북미 정상이 만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비핵화에 대한 원칙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의 일정을 하루 혹은 이틀로 잡는다면 물리적으로도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