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전 11시 경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풍경. 김지현 인턴기자 최장 10일의 황금연휴인 올해 추석이 동네 자영업자들에게 달갑지만은 않다. 긴 연휴 동안 해외여행 인구가 급증하면서 '대목 없는 추석'이 고착화하면서 가게 문을 열어도 매출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7일 이상되는 짧지 않은 기간에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문을 열자니 답답하고 그렇다고 닫자니 불안한 상황인 것이다.
지난 29일, 추석 연휴 시작을 4일 앞두고 찾은 서울 광장시장에서는 연휴 기간 동안 여행을 떠난다는 대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인근 대학에 다닌다는 한 학생은 "가족과 명절을 보낸 뒤 친구와 일본으로 3박 4일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학생은 연휴 시작과 함께 유럽 가족여행을 떠난다며 "이번처럼 긴 연휴가 아니면 가족끼리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고 전했다.
명절에 가족과 해외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 25일 리서치 플랫폼 '라임'을 통해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7.4%(중복응답)가 추석 연휴 기간에 여행을 떠난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응답 비율은 16.9%로 작년보다 무려 10.5%p 상승했다. 전체 응답자의 29.3%가 이번 추석 연휴에 개인 휴가를 더해 연휴를 늘리겠다고 밝힌 만큼 긴 연휴 동안 소비가 여행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9일 오전 10시 경 오목교역 인근 상가 풍경. 김지현 인턴기자이 같은 분위기는 동네 자영업자들에게 걱정거리다. 오목교역 인근에서 치킨 가게를 운영하며 추석 당일에만 영업을 쉰다는 허모 씨는 "명절이 원래 더 힘들다"며 "이번엔 연휴가 너무 길어 손님들이 해외로 나가버려 장사가 잘 안될 것이라 각오하고 있다"고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이어 "직원들도 연휴엔 쉬고 싶어 하고, 결국은 나온다는 직원이 없어서 가족끼리 일할 수 밖에 없다"고 명절에 가게 운영이 더 힘든 상황을 토로했다.
다른 식당도 상황은 비슷했다. 샤브 전골 가게를 운영하며 추석 전후로 3일 간 가게를 쉰다는 강봉주씨는 "이번 연휴가 일주일이다 보니 그 기간 동안 가게 문을 아예 닫아버리면 매출 타격이 크게 온다"며 "장사가 잘 안될 것 같아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쉬는 날을 최소한으로 잡은 것 뿐"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라도 기분 좋게 들러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중국집을 운영하는 유모 씨도 "연휴가 길면 여행을 많이 가서 명절특수는 고사하고 기존 손님도 줄어든다"며 "그저 다른 날처럼 찾아오는 단골손님이라도 와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가게 문을 열어야 하나 고민이 깊은 자영업자도 있다. 소규모로 고깃집을 운영 중인 김모 씨는 "가게 문을 열까 말까 고민 중인데 아마 못 열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그는 "직원 1명은 가족끼리 여행 간다고 연휴 내내 못 온다하고, 아르바이트생은 당연히 추가 근무를 하기 싫어한다"며 "애초에 연휴가 길어 사람이 많이 올 것 같지도 않지만 많이 찾아와도 와이프랑 저 둘이서는 감당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닫자니 매출 타격이 클 것 같고, 열자니 부담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연휴가 다가오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29일 오전 11시 경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풍경. 김지현 인턴기자명절 준비를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해야 할 전통시장도 분위기가 예년 같지 않다. 지난 29일 낮에 찾은 서울 광장시장은 먹거리 구역만 사람으로 북적일 뿐, 떡과 명절 용품 가게가 늘어선 거리는 한산해 마치 다른 공간처럼 보일 정도였다.
좌판 위에 가지런히 떡을 올려놓은 채 인절미에 콩고물을 묻히던 한 상인은 "보통 추석 사흘 전부터 떡이 팔리기 시작해서 아직 매출이 줄었다는 체감이 되지는 않는다"면서도 "올해는 긴 연휴 탓에 여행을 간다는 사람이 많아 작년보다 수요가 줄 것 같아 만드는 양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쌀값이 올라서 사실 떡 값도 올려야하는데 또 비싸면 잘 안 나가니까 그것도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홍삼 등 명절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김모 씨는 "작년 같으면 지금쯤 분주해야 하는데 올해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오지 않는다"며 5천원, 7천원 가격의 물건도 잘 팔리지 않아 작년에 비해 매출이 20% 정도 감소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작년에 비해 시장에 명절 용품을 사러 오는 사람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릇 가게를 운영하는 B씨도 잘 들어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원래 이맘때엔 제사 그릇을 찾는 손님이 많아서 물건을 더 들여놓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며 "최근에 오히려 외국인이 한국 그릇을 사러 오는 경우가 늘었지만 정작 한국 손님은 긴 연휴로 여행을 가니 명절인데도 제사 그릇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