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왼쪽)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연합뉴스조희대 대법원장이 자신을 겨냥한 국회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그를 향한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던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이 복잡해졌다. 석연찮은 결정을 잇따라 내놨던 사법부를 충실히 견제해야 한다고 인식하지만, 조 대법원장이 끝까지 버틸 경우 정치권이 대응할 현실적 카드가 별로 없는 탓이다.
치고 빠지려 했으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조희대 대법원장은 최근 국회에 불출석 의견서를 제출했다. 오는 30일 법사위에서 열릴 소위 '대선개입 의혹'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 의견서에는 '사법 독립'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말 조 대법원장이 불출석할 경우 탄핵을 소추해야 한다는 의견이 흘러나온다. 이미 정청래 대표가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며 탄핵을 에둘러 언급한 터다.
사실 애초 당 지도부의 전략은 '치고 빠지기'였다. 사법부를 압박해 조 대법원장 사퇴를 끌어내거나, 내란 재판의 속도를 높여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 기간 만료로 풀려날 위험을 원천 차단하자는 것. 그러다 올해 말쯤 수위를 낮출 거라는 얘기가 나왔었다.
문제는 조 대법원장이 버텼을 때다. 대법원장 탄핵 소추는 대통령과 달리 과반 의석 만으로도 충분히 의결할 수 있지만, 그다음 과정이 만만찮기 때문. 헌법재판소가 금방 가결하지 않으면 선거를 앞둔 민주당으로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로선 소추 이후 당이 어떻게 출구를 마련할 지 뚜렷한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나온다.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전략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미 크게 삐끗했는데 브레이크가 없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 저렇게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복되는 급발진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창원 기자그런데도 민주당이 '풀 악셀'을 밟은 건 사실상 '급발진'에서 비롯됐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 22일 검찰개혁 청문회 중 느닷없이 '조희대 청문회' 안건을 여당 주도로 의결했다. '완급조절' 방침이었던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는 모두 이 사실을 사전에 전달 받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손발이 맞지 않은 결과였지만 당시 김병기 원내대표는 법사위원 측에 '유기적 협력'을 당부할 뿐이었고 정청래 대표도 제동을 걸기는커녕 한술 더 떠 "새삼스러울 것 없다"며 법사위 돌출행동을 엄호했다.
앞서 '더 센 특검법' 완화를 국민의힘과 합의했다 하루 만에 파기했던 과정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강경파 정치인이나 차기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잘못하면 윤석열이 풀려날 수 있다'고 경고한 뒤 강성 지지층이 큰 소리로 흐름을 주도하면 지도부도 떠밀리듯 수용하는 모습이 반복된 것.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재명 정부 첫 정부조직법이 금융 거버넌스 개편 제외로 크게 후퇴한 것도 특검법 합의 파기로 국민의힘이 협조 의사를 철회하게 되면서 빚어진 후폭풍이었다.
특검법 합의 논란에 당시 이재명 대통령마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런 건 협치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나섰기 때문에 이제는 그 흐름에 제동을 걸 주체가 남지 않게 됐다는 걱정도 당내에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그때 당의 지도자들이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지지자들에게 상황을 잘 설명하고 넘어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 했다.
물론 대법원이 대선 직전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 심리를 이례적으로 사흘 만에 마친 뒤 유죄 취지 파기환송했던 절차와 과정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데는 민주당 내에 이견이 없다.
다만 법사위나 강경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조 대법원장이 윤 전 대통령이나 한덕수 전 총리, 국민의힘 측과 결탁해 '후보 바꿔치기' 혹은 '대선조작 쿠데타'를 감행했다는 의혹에는 의견을 유보하는 경우도 많다.
'친명계' 김영진 의원은 지난 25일 MBC 인터뷰에서 "조희대, 한덕수, 정상명, 김충식 등 4인 회동이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갖고 청문회를 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