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 제공미국 정부가 유럽산 자동차와 차 부품에 대한 관세를 일본산 자동차 등과 같은 수준인 15%로 낮추기로 하면서 해당 품목에 25% 고율 관세를 여전히 적용 받는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한층 더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한국산 자동차도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일본·유럽연합(EU)과 동일한 관세율(15%) 적용을 약속 받았지만, 대미 투자 방식 등 세부 각론을 둘러싸고 한미 양국이 평행선을 걷고 있어 약속 이행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는 24일(현지시간) 사전 공개 관보를 통해
유럽산 자동차와 차 부품 관세율을 현행 27.5%에서 15%로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관세율은 지난달 1일부터 소급 적용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해당 시점 이후 15%보다 더 높은 관세를 낸 기업들의 경우 환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번 관세 조정은 EU의 미국산 공산품 관세 철폐, 일부 미국산 농산물·해산물의 특혜적 시장 접근권 제공을 위한 입법안 마련 등을 조건으로 삼고 있는데, EU는 이미 지난달 관련 입법안 초안을 발표한 상태다.
관세 조정이 이뤄지면 유럽산 자동차는 미국 시장 내에서 일본산 자동차와 같은 출발 선상에 서게 된다.
앞서 미국 정부는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백지수표'를 써줬다고 평가 받는 일본에 대해서도 자동차와 차 부품 관세를 27.5%에서 15%로 인하해 지난 16일(현지시간)부터 적용 중이다.
반면 미국에서 25%의 고율 관세가 여전히 부과되고 있는 한국산 자동차는 한층 더 경쟁 열위에 놓이게 됐다.
그간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장점으로 꼽혀왔는데, 일본·유럽산 자동차와의 10%포인트의 관세 격차를 적용하면 이런 가격 경쟁력도 사실상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유럽에는 추격을 당하는 위치에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아를 포함한 현대차그룹의 미국 시장 차량 판매량은 89만 3152대로 4위를 기록했다. 143만여대의 판매량으로 1위인 미국 업체 제너럴모터스(GM) 바로 다음 순위는 일본의 도요타로, 123만 6739대를 판매했다. 폭스바겐 등 주요 유럽 자동차 제조사는 10위권 안팎으로, 한국차보다 순위가 낮다.
불리한 경쟁 환경을 감안하면 올해 2분기부터 본격화 된 미국발(發) 관세 타격이 기존 예상치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관세 영향으로 인한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 감소액은 2분기에만 1조 6142억 원에 달했다. IBK투자증권은 최근 현대차·기아의 합산 관세 부담이 한 달에 약 7천억 원일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이는 유럽산 자동차 품목 관세 인하가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관측이다.
하나증권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 관세율이 일본, 유럽과 마찬가지로 15%로 인하되더라도 현대차·기아에는 연간 6조 원 규모의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한편 한국 정부도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자동차와 차 부품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지난 7월 미국과 합의했지만, 투자금 운영 방식 등을 놓고 여전히 양국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어 자동차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