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사업주체로 건설한 아파트에 치명적 보안 결함이 있는 스마트우편함을 설치한 사실이 CBS취재 결과 드러난 가운데([단독] LH행복주택의 수십억 '스마트우편함', 보안 숭숭 뚫렸다),
문제의 스마트우편함이 LH의 시방서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LH는 그럼에도 해당 제품이 LH 기준을 충족시킨다고 국회에 보고해 은폐 의혹마저 제기되고고 있다. LH 자체 시방서 기준 미달 제품 80%나 채택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실에 따르면 LH는 '국회 보고자료'를 통해 스마트우편함과 관련한 자체 '전문 시방서'를 제출했다. 시방서는 공사의 표준안, 규정을 설명한 문서다. 시공의 정확성과 품질 확보를 위한 기준으로 활용된다.
LH는 전문시방서 2.3.8 '성능' 항목에서
"일반 택배기사가 전자식우편함 사용시 해당 세대의 허락을 득하거나 사용인증을 받은 경우에만 사용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LH가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에게 제출한 시방서 비교 자료. 민홍철 의원실 제공 이 항목은 스마트우편함의 필수기능을 규정하는 항목이다. 하지만 CBS 취재결과 위례의 한 LH행복주택 아파트에 설치된
A사 스마트우편함은 해당 세대의 어떤 허락 없이도 우편함 사용이 가능했다. 집배원이나 택배기사가 아닌 일반인도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만 하면 승인번호를 얻어 마음대로 우편함을 여닫을 수 있다. A사의 치명적 보안 결함은 LH의 전문시방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LH 기준에 따르면 A사 제품을 스마트우편함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LH가 시행하는 모든 주택사업장에는 스마트우편함이 의무적으로 설치돼야 한다. 스마트우편함 업체들에게 LH는 큰 고객이고 LH 사업장에 채택되기 위해서는 시방서 조건을 반드시 충족시켜야 한다.
시방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경쟁 입찰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사 제품은
시방서 기준과 배치되는 치명적 결함에도 아무 제약 없이 51개 단지에 설치됐다. LH 분양주택 전체 중 79.59%, 금액으로 55억여원(2024년3월 기준)에 이르는 규모다.
심지어 LH는 국회 보고자료에서 A사의 결함을 철저히 함구했다. 지난해 두 차례 실시한 'LH 기술기준 미준수 납품의혹 관련한 현장조사 실시' 항목에서 "(점검결과) LH 시방기준, 관련법령 미준수사항 없음"이라고 명시했다. 적극적 은폐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시방서에서 빠진 특수 기능…특정 업체 위한 허들 낮추기?
LH 시방서에 '바코드 리더기' 기능이 빠진 것도 석연치 않다. 스마트우편함 사업을 최초 추진한 우정사업본부의 특기시방서는 스마트우편함 권장기능에서 "바코드 리더기를 장착하여 해당세대 우편물(택배)의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LH는 시방서에서 바코드 리더기 항목을 제외했다.
우정사업본부의 특기시방서에는 '바코드 리더기' 기능을 권장기능으로 적시하고 있지만 유독 LH 시방서에는 해당 내용이 빠졌다. 민홍철 의원실 제공 바코드 리더기 기능은 등기우편 비대면 배달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집배원이 등기우편물에 붙은 바코드를 스마트우편함의 바코드 리더기에 읽히면 해당 등기우편 정보가 수취인의 휴대전화에 뜨게 되고, 수취인이 수취에 동의하면 배달완료로 간주된다. 바코드 리더기가 등기우편 대면 배달 과정 가운데 수취인 서명을 대신하는 셈이다. 권장사항이라고는 하지만 LH 시방서에서 바코드 리더기 항목이 아예 빠졌다. 우정사업본부 시방서에 적시된 다른 권장 항목이 별로 중요치 않아도 대부분 포함된 것과 대조적이다.
바코드 리더기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권장사항에서조차 제외될 경우 보안 기능에 투자한 업체가 가격 경쟁력 면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LH가 기술력이 떨어지는 업체들을 스마트우편함 경쟁 입찰에 참여시키기 위해 일부러 기준을 낮춰준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온다. 실제로 LH 분양주택 가운데 바코드 리더기 기능이 없는 A사가 8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한 반면 바코드 리더기 기능을 탑재한 B사의 점유율은 14.7%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