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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 딸' 채용절차법 위반 사건이 보여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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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은 위법이었다'…노동부가 날린 경고
채용절차법 11년, 공공부문조차 감수성 여전히 부족한 현실 드러내

심우정 전 검찰총장. 류영주 기자심우정 전 검찰총장. 류영주 기자
고용노동부가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딸이 채용된 과정에서 국립외교원이 '채용절차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서, 정부 기관조차 채용 공정성에 둔감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혜성 시비'에 대해서는 앞으로 수사가 진행돼야 알 수 있겠지만, 이번 노동부의 판단만으로도 공공기관 채용 절차의 공정성 원칙과 제도적 보완 필요성이 다시 조명받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당국은 지난달 심 전 총장의 딸이 국립외교원에 채용되는 절차에 법 위반이 있다고 판단하고, 법무부에 과태료 처분 가능 여부를 문의한 상태다.

지난해 국립외교원은 심 전 총장 딸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공고도 없이 '석사 학위 예정자'가 응시할 수 있도록 자격을 완화했다. 노동부는 이 부분이 채용절차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채용절차법은 채용광고 내용이나 자격요건을 정당한 사유 없이 변경하거나,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노동부는 "최종합격자 발표 이후의 채용일을 기준으로 한 자격요건 적용은 전형 단계 취지와 구직자의 채용 절차에 대한 신뢰성 및 예측 가능성 등에 반하게 되는 등 자의적 기준을 설정한 것"이라며 "채용광고 변경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격요건의 확장·적용으로 인해 일부 구직자에게는 이익이 되나, 기존 자격요건을 충족한 구직자 입장에서는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심씨가 합격해 절차적·결과적 불이익이 발생한 것"이라며 "구직자 상호 간 이·불리에 따른 이익이 충돌한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이에 대해 외교부는 과거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국립외교원 해당 부서는 기간제 연구원 채용이 시작된 2021년부터 응시생들이 채용 전 학위 취득 예정임을 공식증명서로 증빙하면 자격요건을 갖추는 것으로 인정해 왔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관행이니 괜찮다'는 논리였다. 노동부가 국립외교원의 관행이 불법임을 이번에 인증한 셈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그러한 내부 관행이 있었다면 공고에 명시했어야 했다"며 "관행이라 하더라도 위법은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서 관련 문제를 다뤄온 홍석빈 노무사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안에 대해 "공공 부문에서조차 채용 절차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다른 기관의 절차를 그대로 따르거나, 외주 업체에 위임하는 관행 속에서 공정성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심우정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심우정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국립외교원은 이번조사 결과에 대해 "결과를 존중하며, 절차적으로 미흡했던 부분에 대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노동부 조사는 채용절차법의 실효성 한계도 함께 드러냈다. 국립외교원에 이어 올해 심 전 총장 딸이 지원한 외교부 채용에 있어서는 제대로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면접위원 3명 중 2명이 심 전 총장 딸에게 만점을 부여했지만, 노동부는 이 2명의 연락처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조사를 마무리했다. 이들이 조사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근로감독관에게 강제 수사권이 없어, 응하지 않으면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는 해당 면접위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단도 없는 상황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접수된 신고는 총 382건에 달했지만, 이 중 실질적으로 과태료나 시정명령 등의 제재가 이뤄진 건은 63건뿐이었다. 형사처벌까지 이어진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제대로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니,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회에서도 근로감독관에게 관련 수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꾸준히 발의되고 있기도 하다.

홍 노무사 역시 "이런 식의 허술한 조사가 반복될 경우, 법이 있어도 제대로 된 실효성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거짓 채용공고나 조건 위반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여전히 약하다"고 지적했다. 또 "개인정보 보호 등 여러 현실적 문제는 있지만, 공공기관 면접 기준이나 외부 위원 자격 등의 세부 규정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한편으로 이번 사안은 '공공영역도 채용 절차에 대한 공정 인식이 아직 부족한데, 민간 영역은 어떻게느냐'는 불신으로 이어진다.  

직장갑질119와 글로벌리서치가 지난 6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35.3%가 실제 노동 조건이 채용 공고와 다른 '채용사기'를 당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과 비정규직 근로자 사이에서 그 비율이 더욱 높게 나타났다.

이번 사건에 적용된 채용절차 공정화법은 지난 2014년 시행에 들어가 거짓 채용 광고 금지, 채용서류 반환 등 공정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를 규정했다. 그 이후 채용 청탁을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해 개정했다. 최초 시행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에서는 채용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게 현실인 셈이다.

심 전 총장의 사건은 특혜 여부의 수사와는 별개로, 우리 사회가  채용이 얼마나 절차적으로 허술하게 운영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일 수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된 절차가 실제로는 법 위반일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홍 노무사는 "이 사건은 드러났기에 논란이 됐지만, 드러나지 않은 비슷한 사례도 많을 것"이라며 "특정 사건을 넘어서 채용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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